LG에너지솔루션, 르노 전기차 ‘LFP 배터리’ 첫 수주… “제품 다변화로 캐즘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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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암페어 전기차 라인업르노 암페어 전기차 라인업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주에 성공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캐즘)가 이어져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성사된 대규모 계약이다. 특히 이번 계약은 새롭게 내놓은 중저가 제품의 첫 번째 실적이면서 중국 배터리 업체가 장악해온 시장에 국내 업체가 처음 진입한 것으로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전기차 캐즘 돌파구로 활용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전략과 기술 역량, 빠른 시장 대응도 눈길을 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일(현지시간) 프랑스 완성차기업 ‘르노(Renault)와’ 전기차 약 59만대 규모 파우치형 LFP 배터리 공급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2일 밝혔다. 프랑스 파리 소재 르노 본사에서 진행된 계약식에는 서원준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배터리사업부장 부사장과 최승돈 자동차개발센터장 부사장, 프랑스아 프로보(Francois Provost) 르노 최고제품책임자(CPO) 부사장, 질 르보르네(Gilles Le Borgne) 최고기술책임자(CTO) 부사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르노가 1일 프랑스 파리 르노 본사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질 르 보르네(Gille Le Borgne) 르노 CTO 부사장, 최승돈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개발센터장 부사장, 프랑스아 프로보(Francois Provost) 르노 CPO 부사장, 서원준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배터리사업부장 부사장, 필립 브루네(Philippe Brunet) 르노 파워트레인·EV 엔지니어링사업부 전무, 조셉 마리아 르카젠(Josep Maria Recasens) CSOLG에너지솔루션과 르노가 1일 프랑스 파리 르노 본사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질 르 보르네(Gille Le Borgne) 르노 CTO 부사장, 최승돈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개발센터장 부사장, 프랑스아 프로보(Francois Provost) 르노 CPO 부사장, 서원준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배터리사업부장 부사장, 필립 브루네(Philippe Brunet) 르노 파워트레인·EV 엔지니어링사업부 전무, 조셉 마리아 르카젠(Josep Maria Recasens) CSO

이번에 LG에너지솔루션과 계약한 업체는 르노 산하 전기차사업부인 ‘암페어(Ampere)’다. 공급 규모는 약 39기가와트시(GWh), 공급계약 기간은 내년 말부터 오는 2030년까지다. 수주금액 규모는 이번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4조~5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암페어는 르노가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설립한 전기차 전문 사업부다. 르노에서 분사했기 때문에 르노의 중저가 전기차 브랜드로 이해하면 된다. 중국 저가 전기차 공세에 맞서 전기차 개발비용과 생산비용 절감에 초점을 둔 브랜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암페어는 오는 2026년부터 새로운 소형 전기차 판매를 시작하고 2030년까지 총 6개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첫 모델은 르노 트윙고 전기차 버전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체결한 배터리 공급계약 기간을 보면 앞서 암페어가 발표한 첫 번째 신차 출시 일정과 맞아떨어진다. LG에너지솔루션이 LFP 배터리를 2025년 말부터 공급하고 이 배터리가 장착된 암페어 소형 전기차가 2026년 출시되는 흐름이다.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셀투팩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셀투팩
파우치형 셀투팩 배터리 솔루션 첫선… 중국산 각형 셀투팩보다 밀도·효율↑

르노 암페어에 적용되는 배터리 기술도 눈여겨 볼만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암페어와 협력해 파우치형 LFP 배터리 최초로 셀투팩(CTP, Cell To Pack) 공정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셀투팩 기술은 배터리 셀부터 모듈, 팩으로 이어지는 배터리 패키징 과정에서 모듈공정을 제외한 개념이다. 제거된 모듈 패키지 공간에 배터리 셀을 추가로 넣어 무게를 줄이면서 전기차 배터리 밀도와 용량을 늘릴 수 있다. LFP 배터리 단점으로 꼽히는 에너지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인 셈이다. 셀투팩은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주목받는 첨단 팩 디자인 기술이기도 하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한 파우치 셀투팩은 중국 CATL의 각형 셀투팩보다 무게당 에너지밀도를 약 5% 높게 설계할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한다. LFP 배터리는 안전성이 장점으로 꼽히는데 LG에너지솔루션은 여기에 검증된 열 전이 방지기술을 적용해 전반적인 안전성을 더욱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팩을 구성하는 부품을 줄이고 공정을 단순화해 제조원가도 절감했다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형 LFP 배터리 셀에 들어가는 양극재는 중국 업체로부터 공급받아 가격 경쟁력을 더욱 높였다. 르노 암페어에 공급하는 LFP 배터리 셀은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서원준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배터리사업부장 부사장은 “유럽 대표 완성차 업체인 르노에 압도적인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아 프로보 르노 CPO 부사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 손잡고 유럽 시장 통합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파트너십을 통해 기술과 경쟁력 측면에서 특별한 솔루션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
유럽도 원하는 LG에너지솔루션 ‘신상’ LFP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수주는 글로벌 자동차 3대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에서 중국 기업 주력 제품군을 뚫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장은 그동안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장악해왔다. 국내에 판매 중인 테슬라 모델Y 후륜구동 모델도 중국산 LFP 배터리를 채용해 가격 경쟁력을 높였고 국산차인 기아 레이EV에도 중국산 LFP 배터리가 탑재됐다.

LFP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철과 인산을 사용하고 안정적인 화학구조 덕분에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최근 중저가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완성차 업체들이 LFP 배터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LFP 배터리를 장착해 가격을 낮춘 전기차를 앞세워 유럽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려왔다. 중국 전기차의 시장 장악을 우려한 유럽연합은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지난달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이달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관세 10%에 17.4~38.1%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예고했다. 아직 배터리 제품 자체에 대한 규제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저렴한 중국산 LFP 배터리로부터 촉발된 관세장벽인 만큼 유럽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업체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유일한 대안으로 한국산 배터리가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국 배터리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독점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CATL은 독일에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오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유럽 두 번째 공장을 헝가리에 짓고 있다.

르노 트윙고 레전드 콘셉트르노 트윙고 레전드 콘셉트
르노 5 전기차 프로토타입르노 5 전기차 프로토타입

르노그룹 역시 이번에 암페어가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지만 르노와 알핀 브랜드 배터리 공급망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CATL도 포함돼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르노 암페어의 계약이 단순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유럽의 규제 때문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유럽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계약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과 품질 경쟁력은 물론 가격 경쟁력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롱셀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롱셀 배터리
‘중저가부터 프리미엄까지’ 제품 다변화 전략 성과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계약을 통해 파우치형 배터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라인업을 확보했다. 하이니켈 NCMA 등 프리미엄 배터리 제품부터 고전압 미드니켈(Mid-Ni) NCM과 LFP 배터리 등 중저가 배터리까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다양한 종류와 가격대의 전기차 개발과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계약은 LG에너지솔루션의 시장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는 “유럽의 가장 오래된 고객사인 르노와 이번 계약으로 독보적인 제품 경쟁력과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며 “치열한 격전지인 유럽 공략을 필두로 글로벌 LFP 배터리 수주를 본격화하고 검증된 현지 공급능력과 독보적인 제품 포트폴리오를 통해 최고 수준 고객가치를 지속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범 동아닷컴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