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ST1은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비즈니스 모빌리티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즉 SDV로서의 면모가 있었다.
솔직히 나는 ST1이 과도기적인 제품에 그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왜냐 하면 현대차는 PV 시리즈로 이미 PBV의 구체적인 적용 방향을 선보인 기아에 비하여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기아 PV 시리즈와 공유하겠지만 현대차는 차세대 PBV 플랫폼인 eS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제품 컨셉을 아직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는 보다 현실적이며 과도기적인 PBV를 출시함으로써 본격적인 PBV의 컨셉 구상에서는 기아에 뒤떨어졌던 것을 단숨에 역전시키겠다는 시도를 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기존 스타리아의 플랫폼과 부품의 대폭 공유, 샤시 캡이라는 특장 상용에서는 이미 익숙한 형태의 접근, 그리고 풍부한 전기 동력과 소프트웨어를 통한 새로운 서비스의 구현이다.
이런 현실에 기반을 ST1의 접근법은 실제 신사업 추진에도 효과적일 수 있기는 하다. 왜냐 하면 본격적인 PBV는 소비자에게는 지나치게 막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PBV는 일종의 스케이드 보드 플랫폼 위에 목적에 따라 캐빈 등의 하드웨어를 올리고 이에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 탑재하는 대단히 개방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즉, 백지 위에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오히려 기아 PV1 부터 PV7 처럼 약간 규격화 된 샘플을 제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일종의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기존의 자동차를 선택할 때와는 달리 어떤 형태가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모빌리티 솔루션인지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PBV 제작사는 고객들을 ‘가르치면서’ 영업을 해야 한다. 이것은 최소한 초기 단계에서는 상당히 수고와 시간을 필요로하는 비효율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면에서 ST1은 하드웨어 관점에서는 이미 상용차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샤시 캡이라는 형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고객들은 물론 자동차 제작사, 그리고 기존의 중간 애프터마켓 영역인 특장 전문 업체들 모두에게 안심감을 줄 수 있다. 즉, 초기 시장 진출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ST1은 그 다음 단계부터는 PBV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특장 전문 업체들과의 공존을 위한 생태계, 즉 표준화 플랫폼이 돋보인다. 첫번째는 하드웨어 표준화다. 즉, 샤시에 특장 장비를 부착하기 위한 표준 브라켓, 그리고 CAN 버스 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신호와 전원을 공급하는 플러그&플레이 표준형 커넥터 등이 이에 포함된다. 즉, 특장 전문 업체들은 ST1용 특장 장비를 개발할 때 이미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를 바탕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연결성과 안정성 등의 품질, 그리고 사후 애프터서비스 관련 귀착 사유에 대한 부담감에서 대폭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개방형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일단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하여 차량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차량 시스템과 인테그레이션할 수 있도록 오픈 데이터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차량 인포테인먼트(IVI, In-vehicle infotainment)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ST1이 CAN 버스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놀랍다. 솔직히 말하자면 CAN 버스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애프터마켓 업자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자동차 제작사가 외부 업체들을 위하여 CAN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는 것 – 물론 자유롭게 양방향 CAN 통신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지만 – 자체가 ST1을 개방된 생태계로 만들려는 현대차의 의지가 강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현대차가 ST1 특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앞서 PBV의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형태의 제품은 고객이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아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ST1처럼 고객사의 필요와 요구 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맞춤형 제품, 즉 PBV의 경우에는 전문 상담자가 체계화된 질문을 통하여 고객사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단계이다. 그것을 이미 현대차는 ST1 기획 단계에서 포함시켰다. 즉, PBV 사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에 완제품으로 발표된 일반 탑차와 냉동 탑차에서도 현대차가 가망 고객들의의견을 집중해서 청취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택배 서비스 현장에서 느끼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불편을 고려하여 ‘스마트 드라이브 레디’나 ‘스마트 워크 어웨이’, 그리고 탑 후면 상단의 충돌 경고 기능 등 특화 기능들이 적용되었던 것. 그리고 다수의 차량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하여 필요한 플릿 매니지먼트 시스템(FMS), 냉동 탑차에게는 법적 강제 장비인 온도 기록계 등을 차량에 소프트웨어적으로 내장시키는 등 비용과 운용 효율적인 측면도 고려되었다.
컨설팅 서비스의 대상은 단지 최종 고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프터마켓 특장 전문 업체에게도 컨설팅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다. 특장 전문 업체는 최종 고객사에게는 필요한 모빌리티 솔루션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제작사이기도 하지만, 현대차에게는 ST1의 완성도와 경쟁력을 높여주고 ST1 생태계를 확장시켜주는 파트너이지만 ST1을 바탕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특장 업체는 또 하나의 고객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장 업체가 ST1용 특수 장비를 보다 우수한 성능과 안정성, 그리고 가격 경쟁력을 갖고 출시할 수 있도록 전문 기술 및 법률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현대차와 ST1이 성공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가 ST1에 갖고 있는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ST1이 단순한 과도기 모델이 아니라는 마지막 증거였다. 나는 공식 기자는 아니기 때문에 공식 미디어 세션이 아닌 인플루언서 대상 세션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인플루언서 대상으로도 부사장급이 직접 나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신차 발표회 행사장도 그랜저 론칭 이후로 가장 큰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언베일 무대 뒤에는 십여 대의 ST1이 다양한 형태로 커스터마이징되어 넓은 확장 영역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무대는 미디어 행사 다음날 유력 고객사들을 초청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었다. 이 무대는 현대차 준비한 ST1 전용 컨설팅 서비스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치밀했다. ST1은 겉모습은 스타리아를 닮았지만 그것은 고객에게 친숙한 얼굴로 접근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실제 ST1은 엄연한 PBV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스타리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ST1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유연성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의 유연성이 ST1의 성패를 좌우할 주 무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SDV다. ST1은 현대차가 선보이는 본격적인 최초의 SDV인 것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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