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의 오랜 논란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 실내 버튼이 스크린 터치 방식인가, 물리 버튼 방식인가를 두고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럽 자동차 안전 평가 프로그램 및 기관인 유로 NCAP이 2026년부터 안전등급에서 방향 지시등, 비상등, 경적, 와이퍼 및 비상 SOS 버튼이 터치스크린을 통해 구현된다면 100% 점수를 받지 못하도록 개정하기로 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유로 NCAP에서 반드시 100% 점수를 받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구매자들이 유로NCAP을 참고하기 때문에 이 부문을 등한시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유로 NCAP은 이 내용을 발표하면서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차량 제어에 집중할 것이며 향후 몇 년 동안 이에 대한 가중치를 높일 수 있다”라고 말하며 쐐기를 박았다. 차량 내 터치스크린 확산에 정확히 대척점을 설정한 것이다.
자동차 실내 버튼을 터치스크린 방식인가 물리버튼 방식인가에 논란은 그 역사가 상당히 길다. 터치스크린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6년 뷰익 리비에라부터다. 공조기와 라디오 그리고 연비와 트립 컴퓨터 등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능들을 담았다. 그리고 2012년 테슬라 모델S가 무려 17인치 모니터를 대시보드 가운데 도입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테슬라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다.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2012년, BMW가 2017년, 메르세데스 벤츠가 2018년 터치스크린을 연이어 따라 도입하면서 사실상 테슬라 혁신을 인정한 꼴이 됐다.
자동차 디자이너 입장에서 물리 버튼은 터치스크린 버튼 조작 방식에 비해 구식으로 보였다. 게다가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약간만 시간이 지나도 누더기처럼 변하는 물리버튼보다 매끈하게 떨어지는 터치스크린 버튼 조작 방식은 제작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 변화를 주저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심지어 터치스크린은 주행 간 조작할 경우 상대적으로 전방주시에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루한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을 터.
터치스크린의 발전은 그야말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정점은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하이퍼 스크린이다. 56인치 터치스크린으로 대시보드 전체를 바꿔 버렸다. BMW도 신형 7시리즈를 통해 31인치 와이드스크린을 뒷좌석에 배치하고 5.5인치 터치 콘트롤러를 뒷좌석 팔걸이에 뒀다. 그야말로 스크린 풍년이다. 이젠 고급차에는 거의 모든 좌석에 스크린을 둔다.
그런데 터치스크린 방식은 운전자 입장에서 주행간 주의 집중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매년 자동차 보험사들은 자동차 주행 도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습관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율을 발표하며 이 분야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물론 범칙금도 부과한다.
물리버튼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터치스크린 조작 방식이 보기에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완전한 자율주행차에나 어울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자율주행차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그전까지는 물리버튼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이번 유로 NCAP의 안전등급 규정 변화는 물리버튼 옹호론자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