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책의 기본 원칙이 없다 – 전기차 보조금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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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책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하지만 그 원칙이 실종된 정책이 의외로 많다. 2024년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이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일단 이번 전기차 보조금 개편의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승용차를 기준으로 중앙 정부 보조금이 최대 690만원으로 100만원 줄었으며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차량 가격이 57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그리고 OBD2와 충전 속도 관련 등 성능과 안전 관련 규정이 신설되었다. 정비 네트워크 관련 요건도 강화되어 사용자 편의성 관련을 더 반영하였다.
 
하지만 가장 주목받는 변경 사항은 배터리 관련 사항이다. ‘배터리 효율계수’와 ‘배터리 환경계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각각 배터리의 부피 당 에너지 밀도, 그리고 자원 재활용시 가치가 높은 고가 원료의 함유량을 뜻한다. 즉, 에너지 밀도가 높고 리튬과 코발트 등 고가 원료가 많이 포함된 다원계 배터리를 우대하는 정책이다. 다시 한 번 풀어서 말하자면 현재 중국산이 전부인 LFP 배터리에 비하여 국산이 대부분인 다원계 배터리에게 보조금을 더 주겠다는 뜻이다.
 
자, 다시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자.
 
법에는 법 정신 혹은 입법 취지가 있듯이 정책에도 철학 혹은 취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첫번째 원칙이다. 정책은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갖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기차에게 보조금을 주는 이유, 즉 정책의 취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기차를 더 보급하기 위한 것이다. 전기차를 더 보급하는 이유는 운송 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오염 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이 기본 취지가 지켜지고 있는 부분은 보조금 100% 수령을 위한 전기차 가격의 상한선을 꾸준히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 뿐이다. 즉, 이를 통하여 자동차 제작사들이 전기차의 가격을 일반 대중 고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낮추도록 유도하며 동시에 한정된 보조금 예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의 대수는 늘린다는 것이다. 요컨대 가격 인하를 통한 시장 자생력과 정부 보조를 통한 촉진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전기차의 보급 대수가 환경 개선에 유의미한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시장의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브랜드들이 새로운 기준선인 5500만원을 맞추기 위하여 차량 가격을 200만원 낮추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원계 배터리에게 유리하도록 변경된 이번 개편안은 전기차 시장 확대라는 정책의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 당연히 다원계 배터리는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부터 국내 제작사들이 LFP 배터리를 사용한 가성비 전기차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전기차 시장 대중화를 위한 방향성과 어긋하는 것이다. 
 
물론 최소한 국내 시장이라도 국산 배터리를 대표하는 다원계 배터리를 중국산 LFP 배터리로부터 지키겠다는 목적은 이해한다. 보호무역주의가 전기차 시장 정책을 두고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공공연하게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전기차 시장 보호책은 북미와 유럽과는 달라야 한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 가장 큰 강점은 시장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경쟁력은 산업 자체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배터리 관련 보조금 정책은 현재의 고성능 하이니켈 다원계 배터리의 경쟁력은 유지하되 중국산 LFP 배터리와 경쟁할 수 있는 가성비 배터리 기술의 개발을 촉진하는 방향성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것이 전기차 시장의 대중화라는 정책의 기본 취지와 함께 국내 전기차 관련 산업의 국제적 기술 및 제품 경쟁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일관성을 갖춘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성비 다원계 배터리이든 한국형 LFP 배터리이든은 중요하지 않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책의 두 번째 기본 원칙이 이번 보조금 개선안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첫번째 원칙인 철학과 취지가 명료하게 반영된 방향성이 또렷한 시행 원칙이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안의 발표와 함께 난처한 입장에 처한 자동차 제작사가 있다. 바로 KGM이다. 위기에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여 기사회생하여 새로운 활로를 열려는 KGM은 정부의 공공연한 다원계 배터리 우대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 또한 LFP 배터리의 자체 생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배터리 제작사 및 자동차 제작사들도 있는데 이들은 향후 방향성에 혼선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만일 정부가 배터리 등 전기차 산업의 육성에 대한 또렷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면 전기차 보조금의 중장기 전략에 이것을 반영하여 예고할 수 있다. 그러면 산업계는 예고의 방향성에 따라 향후 사업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미래에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 반대로 말한다면 구입했다가 정책 변화에 낭패를 겪지 않는 – 안삼할 수 있는 소비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도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나라의 전기차 보조금 체계는 해마다 너무 자주 바뀐다. 이전에는 V2L과 같은 특정 기능을 ‘신기술’이라는 명목으로 우대하는가 하면, 금년에는 갑자기 배터리 관련 항목을 늘렸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항목이 등장할까 전전긍긍해야 할 판이다. 이래서는 지속성을 갖고 개발 방향을 정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전기차 보조금이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금년에는 앞서 말했듯 배터리 안전 보조금이라는 OBD-II 조항, 충전 속도 조항 등 배터리 기술 개발 촉진(이라고 쓰고 국내 산업 보호라고 읽는다)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차상위 이하 계층의 전기차 구매시 추가 보조금 상향과 함께 이 중 청년 생애 첫 전기차 구매시에는 추가 보조금을 주는 정책도 추가되었다. 이것은 보조금 축소와 고성능 배터리 권장에 따른 전기차의 실질 가격 인상 효과를 부분적으로 상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FP 배터리에게 불리한 개편안에서 경차는 예외를 적용한다. 
 
뭔가 디테일이 대단히 많고, 특별 적용 항목, 그리고 예외도 많다. 복잡하다. 바로 여기에서 정책의 세번째 원칙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간결할 것’이다.
 
가장 좋은 정책은 누가 봐도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깔끔하게 구현된 심플한 정책안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제는 개인이 내가 관심이 있는 모델의 보조금을 어림짐작하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항목도 많고 계산식도 복잡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예외와 특별 조항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가 경차의 LFP 배터리 관련 조항 예외다. 물론 이것을 ‘경차만큼은 저렴한 가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 EV는 외톨이가 될 전망이다.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또 하나의 경형 EV가 될 예정이었던 캐스퍼 일렉트릭이 다원계 배터리와 더 커진 차체로 더 이상 경형이 아닌 소형 EV가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레이 EV는 존재 자체가 ‘예외’인 모델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한 전기차의 보급의 기본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전기차 보급을 통한 대기 환경 개선은 과밀한 대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경차는 도시형 교통 수단으로 태어난 존재이다. 따라서 경형 EV는 최적의 솔루션이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다원계 배터리 보호 정책으로 시작하자마자 ‘예외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책의 일관성,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발생된 혼선이다.
 
요약하자면 이번 개편안을 통하여 잃어버린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가성비 전기차의 출현 가능성 위축. 두번째, 일부 브랜드 혹은 모델의 갑작스러운 전기차 전략의 경쟁력 및 지속 가능성 악화. 세번째, 복잡한 보조금 계산 방식에 의한 소비자들의 정책 이해도 악화. 결과적으로 전기차 시장에 대한 불안감 고조.
 
물론 정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허술한 점이 발견되면 보완하는 것이 통례다. 하지만 기본 취지마저 희미해진, 그리고 이미 누더기처럼 복잡해진 정책이라면 보완은 더 이상 유효한 방법이 아니다.
 
전기차 보급 원칙의 중장기적 취지를 담은, 그리고 명료한 새로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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