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월, 새로운 ‘포르쉐 마칸’이 공개됐다. 신형 마칸은 2세대 모델로, 1세대 마칸이 2013년 11월에 출시되었으니 사실상 10년 6개월 만의 새로운 모델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신형 마칸은 배터리 전기차(BEV)다. 같은 폭스바겐 그룹 내 BEV 전용 플랫폼인 PPE(프리미엄 플랫폼 일렉트릭)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추후 내연기관을 탑재한 마칸이 등장할 가능성은 이제 없다.
신형 마칸이 BEV 전용 모델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정해진 내용이었지만, 막상 실차가 공개되자 포르쉐 팬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큰 듯 하다. 어쨌든 마칸은 포르쉐에서도 손꼽히는 효자 모델이다. 지난 2023년에도 전 세계 시장에서 8만 7000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포르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카이엔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카이엔과의 차이는 수백 대에 불과하다. 순위를 나누기 어려울 만큼의 근소한 차이를 기록한 마칸이지만, 순수 전기차로 변화된 만큼 향후 판매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BEV의 보급은 지역과 국가별로 온도차가 크다.
하지만 포르쉐는 2030년까지 신차의 80% 이상을 BEV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 목표는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로서는 평균적인 수준이지만, 그간 고성능 내연기관 차량을 주력으로 했던 제조사로서는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이다. 참고로, 포르쉐에서 마지막까지 내연기관 엔진을 탑재하는 차량은 스포츠카인 ‘911’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목표 속에 포르쉐는 속도를 높여 타이칸에 이어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포르쉐는 전기차로 전환하기 쉬운 모델부터 차근차근 선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로 전환하기 쉬운 모델은 비교적 컴팩트한 모델이 우선이다. 포르쉐의 기존 라인업 가운데에는 이 기준에 맞는 차량으로 마칸과 718 박스터/케이맨이 있다. 실제로 포르쉐는 마칸에 이어 향후 3년 이내 박스터/케이맨의 순수전기차도 선보일 예정이다.
포르쉐 마칸은 초기부터 ‘아우디 Q5’와 플랫폼을 공유했다. 신형 PPE 플랫폼도 기본적인 디자인 개발은 아우디가 주도하고 있다. 아우디는 포르쉐보다 전동화 전환에 에 적극적이며, 마칸이 타이칸에 이어 순수전기차로 선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신형과 구형을 함께 판매하는 전략
이번 마칸의 BEV 전환에 대해 포르쉐도 어느 정도 ‘완충지대’를 마련하고 있다. 2세대 마칸은 분명 전기차 전용 차량이지만, 모든 마칸이 갑자기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다소 혼동을 줄 수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포르쉐는 내연기관을 탑재한 기존 마칸도 계속 생산해 당분간1세대와 2세대 모델을 함께 판매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는 2019년 마칸의 전기차 전환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함께 논의된 내용으로, 당시 포르쉐 CEO 올리버 블루메도 “2세대 마칸 출시 후 2~3년 동안은 내연기관을 탑재한 마칸이 함께 판매될 계획이다. 기존 마칸을 유럽연합의 최신 배출가스 규제에 맞춰 판매를 지속할 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마칸 출시 전까지 결정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EU 지역 내 마칸은 기존 모델과 병행 판매되지 않고, 완전히 신형으로 ‘풀 모델 체인지’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예상과 달리 그 가장 큰 이유는 배출가스 규제가 아니라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사이버 보안 규제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이후 EU에서 판매되는 차량은 출시 시기에 상관없이 해킹 방지 대책이 의무화되는데, 2013년 출시된 1세대 마칸에는 이런 종류의 대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는 업그레이드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기존 마칸의 남은 판매 기간을 고려해도, 유럽에서는 이 규제에 대한 대응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로의 전환에 대한 압박이 강한 EU지만, EU에서도 마칸은 2023년에 2만대 이상 판매될 정도로 프리미엄 D세그먼트 SUV 시장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마칸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2024년에는 EU에서 포르쉐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포르쉐의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는 현재로서는 사이버 보안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으며, 그 외 글로벌 시장에서 1,2세대의 마칸을 함께 판매한다는 계획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보안 규제 의무화에 대해서 국내 자동차 산업도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맞춰 변화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당분간은 신형 마칸은 이전 세대모델과 함께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SUV 마칸에 대해 아쉬움을 가졌던 분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