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두 가지 상반되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하나는 ‘전 모델이 전기차로 전환되면 EQ 브랜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 뉴스는 ‘2030년까지 전체 라인업을 전기차 모델로 완성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즉, 전자는 전 모델의 전기차화는 당연한 목표이지만 그 속도는 늦추겠다는 것. 다소 혼란스럽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렇게 혼란스러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메시지는 모두 투자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 브랜드는 시대를 리드하는 선명한 이미지는 지키면서 동시에 수익성은 더욱 향상시키겠다’는 뜻이다. 즉, 새로운 투자자를 유인하는 브랜드의 혁신성과 기존 투자자를 만족시키는 수익성을 모두 챙기겠단 말이다.
요즘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넘쳐난다. 적지 않은 브랜드들이 전동화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심지어는 전기차라는 제품의 컨셉과 접근법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지금의 상황이 전기차의 근본적인 위기 혹은 패착이라기 보다는 앞으로의 전기차가 나아갈 길을 보다 정확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이다. 요컨대, 지금까지 우리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사용하던 방법을 그대로 전기차에 적용했던 것이고 그것이 현재 봉착한 전기차의 문제점을 가져온 커다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일단 부각된 전기차 시장의 위기 요소를 살펴보자. 첫번째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최근 미국의 한파에 전기차들이 충전기 앞에서 방치된 모습이었다. 즉, 시장의 심리와 제품에 대한 신뢰도 양측에서 회의가 느껴질 수 있는 국면인 것이다.
첫번째는 전기차의 판매 둔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의 둔화’다. 즉, 전기차의 판매량은 여전히 증가중이다. 2023년 글로벌 순수전기차와 PHEV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대략 30% 정도 증가하였다. 다만 2022년의 60%에 비하여 증가율이 반토막이 났을 뿐이다.
물론 부정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상황의 대부분은 합리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전기차 최대 시장인 중국은 작년 순수 전기차의 판매 성장세가 15%에 불과했다. 그것은 작년부터 사라진 전기차 보조금, 그리고 이제는 PHEV와 FCEV를 BEV와 묶어서 NEV(New Energy Vehicle)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서 관리한 결과 상대적으로 PHEV 시장의 성장세가 늘어난 점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미 30%에 육박한 전기차 시장이 현재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포화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23년 유럽의 BEV 시장은 전년 대비 37% 성장하였다. 친환경 탄소중립에 대한 견고한 정책 태도와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력 등이 유럽 전기차 시장의 근본적 성장 동력이다. 게다가 PHEV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이 BEV 시장으로의 전환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EV 시장 성장세가 예상을 하회한 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심리와 경제 침체라는 거시적 영향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구체적 이유로는 지금까지의 전기차 라인업이 유럽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 큰 C 세그먼트 이상에 집중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50% 수준의 BEV 시장 성장세를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새로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한 테슬라 보조금 – 정확하게는 세금 인센티브 – 의 지급 재개 등의 영향, 미국 시장에 어울리는 대형 전기 픽업과 SUV의 연이은 출시 등이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산 모델 등 상대적으로 작고 가격이 저렴한 모델들이 IRA에 의하여 인센티브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전기차 시장의 저변 확대에는 오히려 한계가 발생하였다.
지역적으로는 위와 같이 전기차 시장 상황을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를 둔화시킨 공통적인 이유는 없을까? 있다. 그것은 바로 ‘가격’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이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르게 된 데에는 매우 저렴한 전기차들의 적극적인 보급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나라에서도 기사로 유명했던 홍광 미니EV다. 즉, 도시형 커뮤터로서 정확하게 기획된 전기차다.
앞서 말했듯이 유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에도 유럽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인 B 세그먼트 이하에서 전기차 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반대로 북미 시장에서는 대형 픽업트럭 및 SUV를 중심으로 전기차 신규 시장이 성장했으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로 시장 성장에 제약이 걸린 상황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준중형 모델조차도 5천만원대 이상인 고가 전기차 모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미 높았던 전기차 모델들의 가격이 2023년부터 갑자기 전기차 성장세 둔화의 요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는 얼리어답터 등 고관여 고객층의 소진이다. 즉, 비싸지만 그래도 전기차를 살 의향이 있는 고관여 고객층은 거의 다 전기차를 샀다는 뜻이다. 그 다음 단계로 저관여 고객층이 유입되어야만 주류 시장의 상품으로 대중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정체된 것이다. 그것은 두 번째 이유인 세계적 경제 불안이다. 그래서 지출이 작은 내연기관 모델, 그리고 상대적으로 비용 지출이 작은 친환경 모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판매로 회귀한 것이다.
여기에 자동차 업계의 내부 사정도 크게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투자와 수익성이라는 기업 본연의 문제다. 사실 작년의 자동차 업계는 수익성이 상당히 좋았다. 현대차그룹의 기록적인 매출과 수익률이 대표적 예다. 그런데 이 뒷면에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함정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적 경제 블록화 및 미중 마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공급선 문제에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일으켰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대표적 예. 그래서 원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하여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에게는 참으로 행운이 따랐다. 자동차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회복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하자 고객들이 대기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 즉,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은 높은 가격에도 떠날 줄을 몰랐고, 기다리는 고객들에게 할인 등 프로모션을 제공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게다가 치솟았던 리톰이나 코발트 등의 원자재 가격은 빠르게 제자리를 되찾았고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도 상당부분 안정되었다. 즉, 가격에 반영하였던 위기 요소들이 오히려 고스란히 수익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지금의 가격이나 수익성을 유지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테슬라는 자신이 시작했던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에서 4분기 수익 악화로 어닝 쇼크를 가져왔고 그 결과 주가 폭락이라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세히 분석해 보자면 조금은 다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전기차의 리더인 테슬라도 수익을 자신할 수 없는 시장 상황이 된 것처럼 보였다.
자동차 제작사들은 수익성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수익성이 좋은 내연 기관 모델들을 퇴출시키고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것을 대 전제로 중장기 계획을 세웠던 자동차 제작사들이 미래에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유연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여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폭발적으로 판매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따라서 속도, 즉 선점의 효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글 머리에 예를 들었던 메르세데스 벤츠는 전동화 모델 출시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이미 거의 모든 세그먼트에 전기차 모델을 갖고 있는 유일한 레거시 브랜드가 메르세데스 벤츠다. 이전에는 엔지니어들이 주류였던 독일 자동차 제작사의 최고 경영진들도 요즘은 경제통 경영 전문가로 많이 바뀌었다.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 그룹의 회장 및 CEO인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이 대표적 예. 따라서 전기차 모델 라인업 완성에 그가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것은 제품이나 기술적 업적보다는 시장 선점에 의한 미래차 시장에서의 경쟁력 및 수익성 극대화가 최우선 목표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해석이다.
그랬던 그가 이끄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메시지는 지키되 숨은 고르면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수정을 가져가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자동차 제작사들이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내연기관 라인업을 유지 혹은 오히려 확대하는 것과 목적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의 ‘빈 카운터(bean counter)’ 전문 경영인들의 경영 목표인 당기 순익 극대화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작년에도 칼럼을 통하여 말했듯이 2023년은 미래차 전환기의 1단계가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의 성패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자동차 제작사들은 그 동안의 투자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마침 전기차 시장의 둔화를 이끄는 상황이 겹쳤다. 따라서 수익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여 전기차 판매 목표의 속도 조절과 하이브리드 등 현실적 선택지의 확대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전기차에 여전히 공격적인 대표적 브랜드가 현대차그룹이다. CES에서도 PBV와 AAM 등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기에 가장 열심이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도 최근 제네시스에 하이브리드 라인업 추가를 계획하는 등 현실적인 전략 수정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누가 이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기업은 수익을 위한 존재다. 그런데 그 수익을 착실한 당기 수익의 형태로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변화를 읽는 과감한 도전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차의 시대적 전환기다. 전환기.
그래서 미래는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완착은 필패’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