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가에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꽃게에 밀려 이름조차 낯선 ‘한국 식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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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게는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밥상에 자주 오르던 단골 재료다. 꽃게가 주인공 자리를 꿰차기 전, 참게는 가장 귀한 게로 꼽혔다. ‘게장’이라는 단어조차 참게에서 출발했다. 밥도둑이라는 수식어 역시 원래 참게에 붙었던 표현이다.

조선 시대 임금 수라상에 오를 만큼 진귀하게 여겨졌고, 한겨울을 넘기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값어치가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참게는 민물게지만 바다에서 태어난다. 봄이면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와 민물에서 긴 여름을 보낸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참게의 한 해가 시작된다. 봄은 참게의 생애주기에서 출발점이다.

봄, 참게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는 겨울 동안 강바닥 깊숙한 진흙 속에 파묻혀 지낸다. 초봄이 되면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수온이 오르고 물살이 따뜻해지면 참게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이 시기에 참게는 바다에서 민물로 이동을 시작하며, 산란을 위한 성장 단계로 접어든다.

봄의 참게는 살이 차오르기 전이다. 등딱지 안이 텅 빈 경우도 많고 내장도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맛으로 평가하면 가을에 비해 아쉽다. 그러나 봄은 참게의 생태적 전환점이다. 강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는 이 움직임은, 몇 달 뒤 가을 참게의 풍미를 약속한다.

전북 수산기술연구소는 해마다 3월부터 실내 수조에서 부화시킨 어린 참게를 관리하고 방류한다. 지난해 5월, 만경강과 금강, 원평천 등지에 참게 20만 마리가 방류됐다.

방류된 어린 참게는 길이 약 0.7cm, 부화 후 40일 이상 성장시킨 건강한 개체들이다. 이들이 자라서 내년 가을 무렵이면 어획이 가능해진다. 봄은 단순한 생장 주기가 아니라 다음 해 수확을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참게가 전국 강과 개울가 어디에서나 쉽게 잡히던 때가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를 제외한 7도 71개 고을에서 참게가 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봄이면 참게를 잡기 위한 어구 점검, 강 주변 정비 같은 작업이 이뤄졌고, 수문 근처에서는 올해 어획을 위한 관찰이 시작됐다. 참게 어민에게 봄은 본격적인 준비의 계절이었다.

밥상엔 오르지 않지만, 봄 참게의 자리

참게장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장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탕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탕 참고사진. / 위키푸디

봄 참게는 밥상 위에서 화려한 존재감은 없다. 내장도 덜 찼고, 살집도 얇다. 그러나 이 시기의 참게는 국물 요리의 은은한 재료로 쓰이곤 했다. 강원, 충청 일부 지역에선 참게 한두 마리를 넣은 된장국이나 맑은탕을 끓였다. 겨울의 무거운 국물과 달리, 은은하고 가벼운 풍미를 선호하는 봄철 입맛에 맞췄다.

참게를 갈아넣은 전통 가리장국도 봄철에는 약간 다르게 응용됐다. 내장이 덜 찬 참게는 완전히 갈지 않고, 껍질과 다리만 우려내는 방식으로 국물 맛을 뽑아냈다. 이런 방식은 봄 참게의 한계 속에서도 활용법을 찾으려는 생활의 지혜였다.

임진강, 섬진강, 금강 등에서 어민들은 봄이 되면 게살망을 손질한다. 게살망은 가을에 참게가 하류로 내려올 때 효과적인 어구다. 하지만 이른 봄부터 장비를 점검하고 수로 상태를 살피는 작업은 꾸준히 이어진다.

참게의 귀환, 봄부터 시작된다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 참고사진. / 위키푸디

참게는 1970년대 이전까지 파주 임진강 일대에서 연간 수십 톤이 잡혔다. 그러나 디스토마 감염 문제로 어획이 제한됐고, 공업화로 강이 오염되면서 서식지 자체가 줄었다. 농약 사용도 참게의 개체 수를 급감시켰다. 그렇게 참게는 시장에서 꽃게에 자리를 내줬다.

정부와 지자체는 2000년대 들어 참게 자원 회복 사업을 시작했다. 인공 부화와 방류가 반복되면서 조금씩 개체 수가 늘고 있다. 파주어촌계에 따르면 임진강 참게 어획량은 연평균 10t 내외다.

그중 상당수는 지역에서 바로 소비된다. 참게는 신선도가 중요해 유통이 어렵다. 참게를 원하는 소비자는 전화 주문 후 택배로 받는 방식으로 구매해야 한다.

봄은 참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다. 겨우내 숨어 있던 몸을 일으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름 동안 몸을 키우고, 가을이면 살과 내장을 채운다. 지금은 잡아먹기엔 이르지만, 어민은 이때부터 움직인다.

가을에 참게를 제대로 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맛있는 참게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봄부터 이어지는 이 과정이 가을 밥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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