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전공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것저것 모으는 걸 좋아하고, 자주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다. 물론 ‘책방 주인’은 아니다. 그분들은 따로 있다. 켜켜이 쌓인 책 위에 똬리를 틀고 앉은 고양이 하동과 하로. 늘 ‘쟤는 대체 뭐하는 놈이지?’라며 쳐다보지만, 그래도 믿을 구석은 저 인간밖에 없다는 듯 내게 거의 모든 걸 맡기고 허락한다. 하동과 하로는 연남동에서 작업하던 시절에 만났다. 2014년 여름, 작업실에 딸린 허름한 창고에서 밤새 들려오던 울음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구조한 하로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반포기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했는데, 고맙게도 금세 건강을 되찾아 함께 지내게 됐다. 하로는 약 2년 뒤, 연희동 부근에서 구조된 동생 하동이를 맞았다. 하로는 얌전한 반면 하동이는 완전 ‘악동’이다. 서로 정반대 성격이지만, 큰 다툼 없이 건강히 지내고 있는 게 다행이랄까. 지금의 성북동으로 옮겨온 작업실이 자연스럽게 책방으로 바뀌면서 하동과 하로는 사장님으로, 나는 책방지기로 지낸 지 4년째다. 겁 없이 ‘책보냥’의 문을 열었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작업 공간을 옮긴 지 1년 됐을 무렵이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나도 무기력의 늪에 처참히 빠졌다. 외주 디자인 일도 예전 같지 않았고….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전부터 상상했던 ‘고양이 책방’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하동과 하로는 고민에 벌벌 떠는 내게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때 이상하리만큼 용기가 샘솟았다. ‘오케이! 해보자.’ 겁 없이 고양이들과 꿈을 펼치기로 한 나는 어디서 책을 들여와야 하는지, 어떻게 서점을 꾸려가야 하는지, 무엇으로 수익을 내는지 아무런 정보나 준비가 없었다. 그저 ‘고양이 책과 그림, 사진과 굿즈가 공간에 가득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했을 뿐. 그것이 가능했던 건 내가 오래전부터 믿었던 것 때문이다. ‘냥 테라피’. 의미 그대로 의사 면허는 없지만 고양이는 마음의 진료와 치유, 처방까지 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 말이다. 나는 맹신했다. 어쩌면 ‘냥 테라피’ 책방의 최대 수혜자는 내가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책보냥은 상권 좋고 접근성 좋은 대로변 상가에 있지도 않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미지도 않았다. 기껏 골목길을 헤매다 찾아내면 굳게 닫힌 한옥 대문 앞에 ‘마당에 고양이가 있으니 초인종을 눌러주세요’라는 무심한 말만 적혀 있다. 천장에 서까래가 있는 오래된 한옥 공간에 잉크 냄새 풍기는 종이 책이라니. 그래도 이곳이 특별한 건 한옥과 잉크 냄새와 꽤 잘 어울리는 고양이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고양이 책, 고양이 그림, 사진, 굿즈 그리고 고양이 사장님 하로와 하동이까지. 머물다 보면 신기하게 기분이 좋아져서 나가는 마법을 느낄 수 있는 공간(그 증거는 나갈 때 손님들의 표정과 여섯 권이나 모인 방명록!)이 됐다. 고양이를 닮아 적당히 게으른 책방지기가 나름 분주하게 꾸려가는 이곳에는 고양이에게 읽어주는 책, 길고양이들의 권법 사진집,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 고양이 마사지 책, 고양이 가발 만드는 작가가 집필한 가발 쓴 고양이 사진책 등 고양이가 주인공인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 시와 그림, 사진이 대부분이다. 기쁜 일은 고양이로 시작한 책들이 반려동물, 나아가 비건과 환경, 지구 사랑으로 그 영역이 조금씩 넓어져간다는 점이다. ‘고양이 자랑 존’도 있다. 찾아오는 분의 절반 이상이 집사들인데,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열에 아홉은 사진첩을 열어 자기 고양이를 자랑한다. 그때 표정은 모두 한결같다. “책방에 오는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사진을 인화해서 책방에 남겨놓고 가는 건 어때요?”라는 말에 응답한 고양이 사진이 100장이 넘는다. 일본의 자매 고양이 책방 ‘네코야 북스’에서도 ‘고양이 자랑 존’을 시작했는데, 얼마 전 일본 집사들의 고양이 자랑 사진을 모아 ‘고양이의 날’ 전후로 전시도 했다.
책보냥 고양이들의 일과는 어떨까? 오후 1시 오픈이라 오전에는 함께 오픈 준비를 하고 대문에 푯말을 걸고 나면 7시까지는 ‘꼼짝 마라’다. 하로와 하동이는 마당을 포함한 실내외 공간에서 24시간 지내는데, 아침에 출근해 문을 열면 마당으로 뛰쳐나와 바깥바람을 쐬고, 햇살 드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대문이 잘 보이는 곳에서 누가 들어오는지 일일이 체크하고, 낯가림이 없는 편이어서 누가 오든 살갑게 맞아준다. 책방 손님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자신을 혹여 만지기라도 하면 ‘날 만졌으니 이 책 사라’는 듯 책 위에 앉아 영업 활동도 한다. 마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고양이들도 책을 좀 아는 것 같다. 하로와 하동이는 책을 읽을거리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약재로 느끼고 처방해 주는 것 같다. A에게는 어떤 책을, B에게는 또 다른 책을…. 결국 나는 그저 고양이들의 처방에 따라 전달해 주는 역할만 한다. 고양이가 있는 서점은 꽤 많지만 그들은 대부분 영업사원인 데 반해 책보냥에는 고양이가 사장이다. 고양이 보호 차원에서 영업장임에도 대문이 닫혀 있고,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올 수 있다. 마당에서는 고양이가 ‘어서 와’ 라며 눈인사를 하고, 나갈 때는 배웅해 준다. 그 순간부터 이곳에 들어온 모두의 경계가 풀린 채 진짜 친구가 된 것처럼 이런저런 마음을 연 대화를 할 수 있다. 책방에는 강아지 손님들도 오고, 가끔 지붕 위로 동네 길고양이들이 힐끔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한다. 평소 강아지들이 오면 하로와 하동이는 하악질을 하며 엄청 경계하는데, 한번은 어떤 강아지에게 하악질이나 경계를 하지 않길래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 강아지는 파양을 여러 번 당한 상처가 있다고 했다. 그때 하동과 하로는 역시 모든 걸 알고 있구나 생각하며 내 ‘맹신’을 더욱 굳건히 했다. 두 고양이는 내게도 그때그때 다른 존재다. 어떤 날은 가족이자 친구이며, 어떤 날은 연인이다. 대부분은 오너이자 어르신이며, 뮤즈이자 자식이기도 하다. 어쩌면 하동과 하로는 내가 원하고 느끼는 모든 역할에 맞춰주는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법 아지트, 책보냥과 고양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10월 마지막 날을 목표로 책방 공간에 미니 갤러리를 준비 중이다. 365일 고양이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는 공간인데, 아직 짐 정리가 더디다. 책방을 시작하며 또 다른 일을 벌였는데, 책방이 안정되면 고양이 책방이니까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를 위해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세상(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움의 손길에 당당히 고양이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자, 고양이가 인간을 구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싶었다. 그래서 고양이를 위한 도움에는 책방지기의 이름으로 기부하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움에 당당히 책보냥의 친구들 혹은 하로와 하동이의 이름으로 정기 기부와 단편 기부를 시작했다. 책방의 동전 저금통을 시작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나씩,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나와 책방을 바꿔가는 고양이들. 나는 ‘묵힌다’는 단어를 좋아한다. 마치 고양이처럼 조바심 내지 않고,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잠깐하고 말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할 거라면 일단 시작하자. 묵히자. 결국 깊은 맛을 낼 테니까. 우리의 책방, 고양이들과 함께 추억의 깊은 맛을 내는 공간으로 계속 변해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