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이 끝나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각종 TV와 유튜브, SNS 피드를 점령했던 시기. 메달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들이 흘린 땀방울과 고된 훈련의 시간이 예능 콘텐츠 포맷에 희석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즈음, 〈라디오스타〉에 나온 사격 국가대표 김예지 선수의 한 마디가 막 채널을 돌리려던 내 손가락에 제동을 걸었다. “저는 말의 힘을 믿기에 부정적인 말을 자신에게 하지 않습니다.”
고백하건대 회사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나와 동료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 탓일까. 밥 먹는 시간에도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회사생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 ‘내가 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느라 이 즐거운 식사 시간을 허비해야 하지? 내가 왜 이 소중한 시간에 남이 하는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며 에너지를 소진해야 하지?’ 싶었던 것. 타인의 부정적인 말에 전염돼 내 마음까지 부정에너지로 채울 바에야, 내 부정적 생각을 쏟아내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상대방을 내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대할 바에야 차라리 회사 근처를 산책하거나 혼자 카페에 앉아 조용히 멍때리는 편을 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만의 누에고치로 점점 숨어 들어갈 즈음, 김예지 선수의 촌철살인을 들은 것이다. 2024년 〈엘르〉 독일 4월호도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속에서 수시로 자신과 나누는 대화는 우리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일을 하기도 한다. 비판하고, 압력을 가하고, 실체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것. 이처럼 자기대화(Self-Talk),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서적인 삶의 결을 만든다. “자기대화는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생활을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상담학자인 이선 크로스(Ethan Kross) 박사의 설명이다. 저서 〈채터: 당신 안의 훼방꾼 Chatter: The Voice in Our Head, Why It Matters, and How to Harness It〉에서 그는 부정적인 자기대화의 늪에 빠지면 옳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방해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가 만성화된다고 적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를 타인과 소통하려는 욕구가 큰데, 친밀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문제 ‘자체’만 논의하는 길로 빠지는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공동반추(Co-Rumination) 현상이라 일컫는다. 다시 말해 해결책을 찾아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다 같이 비관적으로 빠져든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전염된다’고 표현한 것이 이에 해당하는 현상이요, 앞서 에디터가 점점 타인과 ‘부정적’ 대화를 기피하려 했던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궁극적으로 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부정적 생각을 제공하는 원인 요소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운을 떼는 크로스 박사. 부정적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를 긍정적으로 돌리기 위한 솔루션은 무엇일까? 우선 스스로를 2인칭 혹은 3인칭으로 칭하며 거리를 둔 채 자기대화를 이어갈 것. 그래야 상황을 좀 더 객관적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뇌의 정서적·감정적 활동을 둔화시켜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너 한 발짝 물러서야 돼. 일단 진정해’ 혹은 ‘아무개 씨, 당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처럼 자기대화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효과적인 기술은 정신적 시간 여행. 즉 현재 나를 분노케 하고 부정적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10년 뒤에 보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질지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 10년 후에 자신이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 보세요. 이는 스트레스를 주는 경험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희망의 이유를 제공할 테니까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부정적 생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더욱더 바닥으로 끌고 내려갈 친구 대신 넓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누군가’를 찾아 도움을 청하라고도 조언한다. 주변을 정리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질서와 통제감을 주거나, 자연을 감상함으로써 내 문제가 광활한 자연 앞에서 얼마나 티끌만 한지 깨닫는 것도 이선 크로스 박사가 전하는 방법. 식물에게 물을 주거나, 그저 창밖의 나무나 햇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소통〉의 저자이자 에디터의 ‘최애’ 유튜브 채널이기도 한 ‘김주환의 내면소통’을 통해 종교나 신비주의가 아니라 뇌과학에 기반한 명상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는 김주환 교수. 그가 강조하는 자기확언(Self-Affirmation) 역시 ‘긍정적인 내면의 목소리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돼준다. 앞서 이선 크로스 박사가 설명했듯 자기대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이걸 알기 위해서는 ‘자기(Self)’라는 단어의 정확한 개념부터 알아야 하는데, 김주환 교수는 이에 대해 ‘내가 나한테 습관적으로 하는 이야기 덩어리’가 곧 ‘셀프’라고 설명한다. 인지하려고 해본 적 없어서 모를 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자기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에 자기대화의 습관을 바꾸면 분명 나를 변화시킬 수 있고, 긍정확언을 의식적으로 꾸준히 했을 때 내 가치관은 물론 행동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쉽지 않다. “나는 강해”라고 이야기해도 내심 ‘나는 실제로 그리 강하진 않지…’라는 생각부터 떠올리기 때문이다. 김주환 교수는 다음과 같은 팁을 전한다. ‘나는 무언가를 할 것이다’라는 행위(Doing)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존재(Being)에 방점을 둔 긍정확언을 할 것. 다시 말해 ‘나는 1000억을 벌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1000억을 벌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속으로 생각하거나 발화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로 노트에 적어보라고 조언한다. 어릴 적 숙제처럼 썼던 일기가 그날 있었던 일상의 나열과 짧은 감상에 가까웠다면, 성인이 돼 긍정적 자기대화를 위한 일기엔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왜 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에 옮긴 것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 이를 다시 읽어봐야 긍정적 자기확언이 스스로에게 불러일으킨 변화를 깨달을 수 있어 자기확언의 힘을 믿을 수 있다고 한다. 여전히 긍정적 자기확언에 대해 못 미덥고 회의적인가? 우선 노트와 펜을 준비하자. 딱 일주일만 ‘진심’을 다해 일기를 써보자. 부정적 생각을 입 밖으로 시원하게 내뱉었을 때의 개운함이 그저 찰나였음을 점점 깨닫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