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발이 늦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새벽에 출발해 여유롭게 태백산 국립공원 산행을 마치고 주변 관광도 좀 하고 소도 야영장에서의 솔로캠핑을 여유롭게 즐겨야 하건만 아침 출발이 늦으니 모든 일정이 차례대로 다 늦어지게 됐다.
태백산 정상석과 천제단.
산행을 마치고 주변 관광은 포기한 상태로 이곳 태백 캠핑장에 들어와 체크인을 하고 곧바로 세팅을 시작한다.
태백 캠핑장에서의 첫 캠핑인데 너무 불성실한 캠퍼란 생각이 든다. 미리 와서 둘러봐야 하거늘…
태백산국립공원 소도야영장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천제단길 181
이 텐트 역시 여기 소도 야영장에서 첫 캠핑을 맞이하는 장비인데 흔히 원터치 텐트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편리함은 좋은데 바람에 약하다는 평판이 있고 무엇보다 똑떨어지는 핏이 없다. 헐렁거리는 느낌.
저녁이 되며 서서히 불어대는 바람이 심상치 않아 스톰가드 핫라인을 당겨놓았다. 버텨 줄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솔로캠핑이니 혹시라도 무너지면 차에서 자면 되니까.
그리고 저녁 식사를 위해 버너를 찾는데…
이것저것 잘 빠뜨리고 다니기에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평소 사용하지 않아도 가지고 다니던 로켓 버너마저도 없는걸 확인하고 그만 맨붕에 빠진다.
https://tv.naver.com/v/41758564
포기를 하고 아래 당골광장의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다 먹자 생각하던 차에 문득 생각해 낸 방법이 맥스 히터를 자빠뜨리는 것이다. 혹시 모를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가져온 맥스 히터다. 그 히터를 버너처럼 사용하겠다는 생각.
일단 시도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도했는데 다행히 된다. 다만, 음식이 다 익을 때까지 절대 손을 떼면 안 된다. 솔로캠핑이니 망정이지 아내랑 함께 한 캠핑이면 창피해서 우짜나.
그렇게 일정 시간이 흐르면 끓을 건 끓고 익을 건 다 익는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는 사실.
맥스 히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참조하시면 되겠다.
https://blog.naver.com/kooni/223202907660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러 코인 샤워장 입실.
코인 샤워장은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
저녁엔 20시까지.
500원 동전 2개 넣고 6분이고 버튼을 누르면 1분 멈춤 기능 1회 가능하니 2분 정도 물을 묻히고 비누칠(바디워시) 샴푸 등으로 세정을 한 뒤 자동으로 나오는 물에 온몸을 맡기면 샤워가 끝난다.
물이 부족한 분은 끝나기 전에 500원을 더 투입하면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000원이면 완벽히 끝날 듯.
몸이 많이 피곤했던가 보다.
샤워 후 잠깐 책을 보다가 샤워하고 자야겠다 생각하고는 그 잠깐이 지금 이 시간까지 이어져 버렸다.
현재 시각 06시 09분. 다음 날이 된 것이다.
백패킹 가서도 소금 양치질을 했었는데 이날은 피곤함에 찌들어서인지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당연하게 입안의 텁텁함이 장난 아닌 데다 퀴퀴한 입 냄새까지 작렬하니 이건 도저히 견딜만한 상황이 아니다.
코인 샤워장이 아니었다면 어젯밤 샤워를 하며 양치질을 했을 텐데 6분이란 시간 동안 샤워를 마쳐야 하므로 양치질할 시간이 없었다.
텐트 입구를 살짝 열고 밖을 보니…
아직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일단 양치질이라도 하고 와야겠단 생각에 겸사겸사 화장실을 다녀온다.
어제에 이어 아침식사로 라면 끓이기 신공.
맥스 히터는 훌륭하게 라면을 끓여준다.
언제나 아침은 라면?
솔로캠핑에서나 가능한 논리다.
다용도로 사용되는 맥스 히터.
태백 캠핑장에서의 첫 캠핑에 궁색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
식사를 마치고 만사가 귀찮아 다시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웠다.
지난 밤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자다가 네 번이나 잠에서 깼다. 덕분에 지금 온몸으로 느끼는 건 피곤함.
잠을 청해 보려는데 ‘사르륵’ 거리는 소리.
설마 눈이 오나 싶어 밖을 내다보니 싸라기눈.
일단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하려면 커피 한 잔이 필요할 듯.
아내가 준비해 준 드립 커피 장착하고 맥스 히터로 주전자를 달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팔팔팔 ~ 끓는 물.
아무리 생각해도 대견하다.
히터를 이렇게 사용하다니.
여기 태백 캠핑장에서의 첫 캠핑은 이것저것 기억에 남는 추억을 꽤 만들어가는 것 같다. 우선 솔로캠핑이라는 것을 태백산 국립공원 소도 야영장이란 곳에서 한다는 사실도 그렇고 버너 없이 와서는 히터로 조리했다는 사실.
오랜만의 태백산행도 멋진 추억이고 똥바람 덕분에 자다 말고 네 번이나 잠에서 깼다는 것도 추억이 되는 중이다.
으음 ~ 좋다. 커피 향!
첫 잔은 지금 이곳에서 마실 커피.
두 번째 드립은 운전을 하며 마실 커피.
생각해 보니 태백 캠핑장을 어디 어디 다녔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찾아보면 꽤 있긴 하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곳이 없으니 내 기억력의 부실인지 기억할 만한 곳이 없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바람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게지?
텐트 문을 열고 밖을 보니 이건 싸라기눈이 아니라 펑펑 쏟아지는 눈이다. 얼레 스노타이어 갈지 않았는데 ㅜㅜ
아직 시절이 그러한지 꽤 많은 눈이 단시간에 쏟아졌음에도 쌓인 눈은 없다. 대신 어젯밤처럼 똥바람이 장난 아님.
스톰가드 당겨놓지 않았음 벌써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은 그쳤지만 눈이 녹아 빗물처럼 맺혔다. 에잉 ~ 오늘은 건조한 상태로 패킹을 하려 했는데 안 되겠군.
어차피 떠나야 할 이곳 태백 캠핑장.
1박 2일만 예약을 했기에 어쩔 수 없다.
장비 패킹을 하는 중 엄청나게 불어대던 바람이 눈구름을 순식간에 몰아내 버렸나 보다.
하늘이 파랗게 파랗게 변했다.
카라반 캠핑구역
장비 철수를 완료하고 캠핑 사이트를 봐 준다.
주차구역, 캠핑데크, 피크닉 테이블 구성.
앞쪽으로 사이트 번호가 있고 밤엔 조명등이며 그곳에서 전원이 연결된다.
처음 이용해 보는 태백산 국립공원 소도 야영장.
부실한 기억에서는 태백 캠핑장에서의 첫 캠핑이라 생각되며 똥바람 부는 날 솔로캠핑을 하며 하룻밤 새 다양한 추억을 쌓은 곳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겨울에도 운영을 하나 궁금하군.
어쩌면 겨울 산행을 위해 다시 오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