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럭셔리’ 트렌드의 유행으로 Z세대의 호텔 방문율이 상승하자 특급호텔에서 판매하는 빙수의 가격이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사진은 포시즌스 호텔에서 판매하는 ‘제주 애플망고 빙수’. /사진=서진주 기자
“빙수 하나가 10명 식사값이네.”
이번 여름 ‘엘니뇨’ 현상으로 무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호텔업계가 ‘여름 호캉스’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중 한 가지가 여름철 인기 디저트로 꼽히는 ‘애플망고 빙수’ 출시다.
올해 호텔업계가 앞다퉈 선보인 망고빙수는 급등한 물가를 반영하듯 지난해보다 가격이 대폭 올랐다. 국내 특급호텔에서 판매하는 애플망고 빙수 가격은 6만~12만원 수준이다. 호텔 빙수 가격이 10만원을 돌파한 것은 업계가 고가 빙수를 선보이기 시작한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불만을 표하면서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최근 5성급 호텔에서 판매하는 10만원대 빙수가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다. 시중 프랜차이즈보다 5~10배 비싼 호텔 빙수에 Z세대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싼 값어치”… 직접 먹어보니 ‘환상’
약 13만원에 달하는 호텔의 고가 빙수는 망고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 영상은 포시즌스 호텔애서 판매하는 ‘제주 애플망고 빙수’에 코코넛 망고 소스를 뿌리는 모습. /영상=서진주 기자
가장 눈에 띄는 빙수는 포시즌스 호텔의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다. 지난 5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포시즌스 호텔 빙수의 가격은 지난해 대비 30% 이상 인상된 12만6000원. 망고빙수의 원조로 꼽히는 신라호텔(9만8000원)보다 약 3만원 높은 수준이다.
12만6000원짜리 빙수, 과연 그만한 값어치를 할까. 머니S도 흔쾌히 지갑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포시즌즈 호텔 1층 로비에 호기롭게 들어선 기자에게 가장 먼저 들린 소식은 빙수 기계가 고장났다는 안내였다. 빙수를 먹기 위해 호텔을 찾은 소비자가 많았던 탓에 기계가 일시적으로 작동을 멈춘 것이다.
30분가량 대기한 끝에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뒤 25분여만에 받은 빙수는 제주산 애플망고가 빼곡하게 ‘산처럼’ 쌓인 모습이었다. 숟가락을 넣는 순간 옆으로 망고가 와르르 쏟아질 정도였다.
투명한 그릇에 가득 담긴 제주산 애플망고는 일반 망고보다 당도가 훨씬 높았다. 시중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달달한 빙수와 달리 단맛이 강하지 않았다. 값비싼 망고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구상한 최적의 맛이었다. 빙수에 사용된 재료 중 망고가 가장 달달할 정도로 망고의 맛을 극대화했다. 망고와 함께 올려진 쫀득한 마시멜로우 젤리와 코코넛 젤리는 식감뿐만 아니라 먹는 재미를 더했다. 푸짐한 양은 여자 4명이 먹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SNS 효과?… ‘대세’ 등극한 럭셔리 라이프
SNS에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Z세대는 호화로운 소비 생활을 과시하기 위해 호텔로 향한다. 사진은 포시즌스 호텔에서 판매하는 각종 음료. /사진=서진주 기자
포시즌스 호텔 카페를 이용하는 5팀 중 4팀이 젊은층일 만큼 MZ세대의 방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부분 커피·빙수를 시킨 채 담소를 나누거나 호텔 내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망고빙수를 아이템 삼아 사진을 찍던 이정훈씨(남·28)는 “빙수보단 호텔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추세”라며 “호텔 특유의 고급진 인테리어와 서비스를 만끽하면서 빙수를 맛보니 일반 카페에서 판매하는 빙수보다 맛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SNS 업로드용 인생샷도 찍을 수 있다”며 “지인들에게 ‘내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류희지씨(여·26)는 호텔 로비라운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자리값이나 서비스값을 지불하는 것 아니겠냐”며 “2만원 상당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보다 푸짐한 빙수를 먹는 게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류씨는 “SNS에 호텔 빙수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나의 럭셔리 라이프를 지인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위안을 얻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자신의 호화로운 소비생활을 과시하려는 Z세대의 발걸음이 호텔로 향하고 있다. 특히 자신을 위해서라면 구매심리가 강하게 작용되는 MZ세대 사이에선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상품이 인기다. 스몰 럭셔리란 본인이 좋아하는 작고 예쁜 상품을 구매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유진태 사회현상분석가는 “자신의 행복한 순간을 기록·공유하려는 Z세대의 인생샷을 향한 의지가 뜨거워졌다”며 “고급진 호텔을 인생샷을 건지기 위한 포토존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타인과는 다른 자신만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싶을 때 스몰 럭셔리 상품을 찾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와인보다 비싸” vs “이윤 없어”
매년 치솟는 망고빙수의 가격을 두고 호텔 측과 소비자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사진은 포시즌스 호텔의 코스 요리·와인 등 가격이 적힌 메뉴판. /사진=서진주 기자
특급호텔의 망고빙수에 호평일색 후기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누리꾼들은 “빙수가 10만원에 달하는 것은 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엔 빙수의 맛과 호텔의 서비스 값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7만원대가 적절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호텔 빙수에 관한 다수의 SNS 후기에는 공통적으로 가격 부담감이 언급됐다. 한 누리꾼은 “섣불리 사먹기 부담되는 가격”이라며 “(그 가격이라면) 호텔에서 코스 요리·와인을 즐기거나 여행을 가는 게 이득”이라고 전했다. 포시즌스 호텔의 경우 1인 코스 요리가 7만~8만원, 와인은 최소 11만원이다. 오히려 코스 요리나 와인이 빙수보다 저렴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반면 호텔 측은 고가로 빙수를 판매해도 남는 게 없다고 토로한다. 한 호텔 관계자는 “고가임에도 사실상 남는 게 별로 없다”며 “망고 손질이나 데커레이션 등에 손이 많이 간다”고 밝혔다. 특히 “라운지(식음료) 이용 고객은 투숙·스파 등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라운지 서비스만 이용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 다른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호텔은 라운지 매출을 중점에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객실 이용객 비율은 중·장년층이 높지만 식음료 이용 연령층은 MZ세대가 훨씬 많다. 김창혁 경제·심리분석가는 “호텔업계가 매년 고가 빙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름에도 빙수를 판매하는 이유는 다양한 고객층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