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文化遺産 ; Cultural Heritage)이라 함은 선조가 남긴 문화유물 중에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의 총칭이다. 인간은 삶을 영위함에 있어 자연상태 그대로를 유지한 채로 살아갈 수가 없기에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 속에서 후대에 계승함으로써 더욱 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적 소산을 이끌어내게 된다.
이번 정읍여행에서 만난 무성리 삼층석탑 역시 우리나라 문화유산으로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무성리삼층석탑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96
무성리 삼층석탑으로 향하는 잔디밭 위에 보라색 꽃 한 송이가 보여 잠시 허리를 구부리고 바라본다.
기억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정읍여행에서 제비꽃을 만난 건 처음 만난
장수꽃, 병아리꽃, 오랑캐꽃, 씨름꽃, 앉은뱅이꽃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해살이풀 제비꽃.
제비꽃은 양지바른 곳에 흔하게 자라는 꽃으로 꽃색은 보라색 또는 자주색이고, 봄이 오면 잎 사이에서 나온 긴 꽃줄기 끝에 꽃이 한 개씩 달리게 된다. 그래서 봄을 알리는 전령사꽃이라고도 한다.
제비꽃의 꽃말은 순진한 사랑, 나를 생각해 주오.
농가와 경작지가 흔하게 보이는 곳에 오뚝허니 서 있는 무성리 삼층석탑이 휑하게 보여 조금은 쓸쓸한 느낌.
어쩌면 봄 햇살의 나른함과 고요함 덕분에 쓸쓸함이 더 두드러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읍여행을 하고자 하면서 이곳 석탑을 여행 계획에 넣었던 것은 아니다. 목적지인 내장산으로 향하던 중 이정표를 보고 급선회하여 들어서니 우리나라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성리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 것.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1998년 1월 9일이라고 한다. 그제야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된 것일까? 아니면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 문화유산으로 생각을 했었을까? 살짝 궁금해진다.
이 탑이 언제 건립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없으나 신계리 마애불, 만복사지 석불입상 등과 공통된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 후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는 단층 기단이며 지면과 맞닿은 하대석(下台石)의 받침돌이 깨져 있으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며, 기단부 위로 탑신부가 곧바로 치솟듯 올려져 있다.
탑신부 전체를 보자면 여러 층으로 형성되어 있기에 기단부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이 당연한데 무성리 삼층석탑은 초층 탑신이 기단부보다 더 높은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넓이보다 높이에 치중한 듯한 기단부와 탑신부로 인해 안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2층과 3층의 탑신석(塔身石)은 점차 좁아지고 낮아지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태를 보여준다.
옥개석과 3단 받침의 옥개받침은 일반적으로 석탑에서 드러나는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나 본래 이러한 것인지 후에 파손되어 이러한 것인지 매우 거칠게 다듬어져 있다. 아마도 본래는 그러하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며 또 여러 사건 사고로 인해 변화가 생긴 듯하다.
맨 위층 옥개석(屋蓋石) 위에 장식된 상륜부(相輪部)는 별도의 노반(露盤)이나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보개(寶蓋) 등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들었다. 앙화는 연화무늬로 장식했다.
3단의 옥개받침 위 옥개석 끝은 약간의 반전을 주어 살짝 삐친 느낌이 수려하다.
정읍여행에서 만난 석탑을 마주하며 석탑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배움을 갖게 되어 감사하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 문화유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또 하나의 석탑을 기록해 둘 수 있었다.
참고로, 본래 무성리 삼층석탑은 무성리 석불입상과 함께 미륵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칠보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겼다. 그 뒤 현재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