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놀라워… 비오면 스스로 드릴처럼 회전해 땅으로 들어가는 ‘기이한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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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Dark Egg-shutterstock.com,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Dark Egg-shutterstock.com,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Dark Egg-shutterstock.com, 유튜브 ‘EBS 다큐’

장마가 시작되는 초여름, 들판과 숲가에선 평소엔 보이지 않던 움직임이 포착된다. 특히 비를 맞을수록 더 활발해지는 식물도 있다. ‘국화쥐손이’도 그중 하나다. 겉보기엔 평범한 들꽃처럼 보이지만, 씨앗만큼은 지구상 어느 생명체보다 ‘독창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사람 손 없이도 스스로 땅속으로 파고드는 능력을 지닌 씨앗, 마치 공학적 원리를 적용한 드릴처럼 작동하는 이 씨앗은 ‘국화쥐손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낯설지만 흥미롭다.

꼬리 달린 씨앗이 보여주는 기묘한 생존 전략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Ender BAYINDIR-shutterstock.com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Ender BAYINDIR-shutterstock.com

국화쥐손이 씨앗은 단순히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식물이 아니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다가, 가장 적절한 시점에 스스로를 지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과정을 이끄는 건 씨앗 끝에 달린 길게 말린 꼬리다. 이 꼬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비를 맞으면 수분을 흡수하며 스프링처럼 풀리고, 건조하면 다시 말린다. 이런 습도 감지 기능을 바탕으로 씨앗은 ‘드릴’처럼 회전하면서 땅속으로 들어간다.

흙 위에 떨어지면 꼬리가 감기며 자연스럽게 수직 각도를 만들어 씨앗의 뾰족한 끝이 아래를 향하게 된다. 이어 수분이 스며들면 꼬리는 다시 풀리며 회전 운동을 일으킨다. 이 회전은 씨앗을 수직 방향으로 지면 속에 밀어 넣는 힘으로 작용한다. 사람이 씨앗을 심을 때 적당한 깊이라고 하는 ‘씨앗 크기의 1.5배’까지 스스로 파고들 수 있다. 바람에 날려 얕게 떨어지거나 풀잎 위에 걸려도 괜찮다. 반복적인 습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분에 반응하는 생체 스프링의 비밀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씨앗의 꼬리는 리그닌(lignin)이라는 섬유질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리그닌은 물에 닿으면 팽창하고 마르면 수축한다. 이 성질을 활용해 꼬리는 물을 만나면 일방적으로만 회전하며 동력을 발생시킨다. 일반적인 수분 반응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도 동작이 무작위인데, 국화쥐손이 씨앗은 특정 방향으로만 회전하며 드릴처럼 작용한다. 즉, 방향성 있는 운동을 설계한 구조라는 것이다.

이 구조는 일방 회전을 가능하게 하는 비틀림 섬유 패턴 덕분이다. 실제 현미경으로 보면 꼬리 안쪽과 바깥쪽의 섬유 배열이 달라 서로 비틀리며 힘을 만든다. 단순히 회전하는 게 아니라 땅속을 파고드는 데 최적화된 구조다.

이처럼 씨앗의 꼬리는 생물학적 기능과 물리적 구조가 결합된 생체 시스템이다. 기계 없이 동력을 만들고, 수직 방향으로 정확히 파고들며, 주변 습도에 따라 움직임을 조절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이미 학계에서는 이 구조를 모사해 ‘수분 반응 인공 소재’를 만들기도 했다. 나노기술이나 무전력 자가구동 센서에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구조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씨앗의 시계 장치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씨앗은 한 번의 비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비를 맞아 회전하며 땅속으로 파고들다 중간에 멈추는 경우도 있다. 스프링이 다 풀려버려도 괜찮다. 다시 건조한 날씨가 오면 꼬리는 원래대로 감긴다. 다음 비가 오면 다시 풀리며 움직임을 이어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최적의 지점에 정착하게 된다. 지면에 잘못 착지해 풀잎 위에 얹히거나 모래가 얇게 깔린 곳에 떨어져도 스스로 위치를 조정할 수 있다. 일종의 생물학적 타이머 기능을 내장한 셈이다.

씨앗 내부에는 에너지원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지만, 꼬리 하나로 반복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자기 위치를 수정해 나간다. 생존을 위해 움직임을 멈춘 채 기다리는 이 씨앗의 방식은, 결국 새싹이 자라날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확보하려는 과정이다.

이런 방식은 씨앗에게 유리한 생존 조건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이다. 적당한 흙, 충분한 수분, 그리고 안정된 위치. 모든 조건이 맞는 순간, 씨앗은 싹을 틔운다. 강한 빗줄기가 다시 몰아쳐도 이미 땅속에 묻혔기 때문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는다.

국화쥐손이의 외형과 서식지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 자료사진. / 유튜브 ‘EBS 다큐’

국화쥐손이는 국화과 쥐손이풀속 식물이다. 이름처럼 국화처럼 생긴 작은 꽃을 피우고, 잎은 쥐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 산지나 들판에서 6월부터 꽃을 볼 수 있다. 흰색 또는 연한 보랏빛 꽃이 피며, 키는 30cm 내외로 자란다. 겉보기엔 특별할 게 없지만, 씨앗을 중심으로 보면 식물계에서 보기 드문 고도 생존 전략을 가진 존재다.

한 번 씨앗을 맺으면 꼬리를 포함한 시방 구조는 약 3~4cm에 달하며, 시방은 꼬리로부터 회전력을 전달하는 중간 지지대 역할을 한다. 이 시방자루가 너무 짧거나 비대칭이면 드릴 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씨앗의 회전을 위한 구조 전체가 정교하게 설계된 생체 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국화쥐손이는 그늘진 곳보다는 볕이 잘 드는 경사지, 숲가장자리, 산비탈에 주로 자란다. 흙이 너무 단단하거나 바위가 많은 곳보다는, 씨앗이 땅을 파고들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흙을 가진 곳에서 번성한다.

씨앗 하나에 담긴 생존 본능

국화쥐손이 씨앗은 눈에 띄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움직임부터 구조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다. 비를 기다렸다가 스스로 심어지고, 잘못 떨어지면 다시 기회를 기다리고, 수직 방향으로 파고드는 방식까지 완성된 전략이다. 식물이지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기계처럼 반응하고, 아무런 연료 없이 정확한 운동을 반복한다. 인간이 만든 어떤 자동화 시스템보다 효율적이다.

공학자들이 생체모방 기술을 연구할 때 가장 먼저 참고하는 존재가 식물의 씨앗이다. 국화쥐손이처럼 기계 없이 동작하는 자가구동 시스템은 센서·로봇 분야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자연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복잡한 문제를 푸는 방식. 국화쥐손이 씨앗은 생태계 안에서 작은 구조 하나로 얼마나 정교한 문제 해결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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