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의 기적’ 오폐수 흐르던 공장단지에서 공공예술 성지로 거듭난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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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유원지에 세계적인 건축가 작가 불러
작품 설치했더니 벌어진 반전

“만져보세요, 올라타세요”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예술공원의 정체

경기도 안양은 변화무쌍한 동네다. 공업 도시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선택한 건 예술 도시였다. 뚝심 있게 20년 가까이 밀어붙였다. 폐수가 흐르던 안양천은 시민들의 휴식터로 되살아났고 몰락한 유원지는 유일무이한 공공예술 테마공원으로 환골탈태했다. 안양예술공원은 지붕 없은 미술관이다.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다른 공공예술 분야에서는 안양을 따라올 지자체가 없다. 올가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는다면 안양은 어떤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안양예술공원에서 감성 충전해보자.

지붕 없는 미술관,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시가 자랑하는 명소 중 하나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 삼성천 물길을 따라 조성된 안양예술공원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조각품 몇 개 설치한 아담한 녹지를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자체 예산 100%로 운영되는 국제미술전이 안양예술공원에서 3년마다 열린다. 안양은 그어느 지자체보다 공공예술에 진심이다.

안양예술공원에 대한 안양시민들의 자부심이 남다르다. 2005년 시작한 공공예술 프로젝트(APAP: Anyang Public Art Project)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공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전국 지자체 중 최고로 꼽힌다. 올해 트리엔날레 행사는 내년으로 미뤘다. 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2023년 8월 말에서 10월까지 그 어느 때 보다 성대하게 트리엔날레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안양예술공원이 의미 있는 건 그 안에 담긴 반전 스토리 때문이다. 지금 안양예술공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유원시설이 있었다.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으로 1956~60년대 수도권에서 제일 인기 있는 나들이장소였다. 관악산과 삼성산을 끼고 있는 계곡 안쪽까지 사람들이 몰려와 물놀이를 즐기고 산림욕을 했다. 안양유원지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통의 요지였던 안양에 1905년 기차역이 생겼고 공장이 지어지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안양 사람들이 찾아든 건 바로 삼성천 근처였다. 1930년대부터 자연스럽게 계곡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삼성천

안양유원지가 한창 인기를 끌던 70년대에는 휴일 하루 5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70년대 안양 인구는 약 12만명. 전체 인구 4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안양유원지로 몰린 것이다. 찾는 사람이 하도 많아지자 지금 관악역과 안양역 사이에 안양유원지 간이역을 만들었을 정도였다고. 역은 딱 3년 동안만 이용됐고 1969년 문을 닫았다. 윤경란 안양시 문화관광팀장은 “초등학교 때, 70년대에는 어린이날 에버랜드 풍경처럼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갔다. 하천 수위도 높았고 천연 수영장이 곳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1969년 국민 관광지로 선정되면서 승승장구했던 안양유원지가 쇠퇴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다. 1977년 홍수가 크게 나면서 천변이 엉망이 됐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국내 여행 선택지가 늘자 안양유원지를 찾는 발길도 서서히 뜸해졌다. 유원지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천변을 따라 식당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수준이었다. 안양유원지를 정비하기 시작한 건 1999년이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면서 길을 새로 닦고 하천 주변도 정비했다. 150억원을 들여 토목공사부터 싹 다 다시 시작했다. 유원지에 남아 있던 노점상 등 불법건축물을 정비하고 공공예술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안양예술공원에는 현재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 50여 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작품도 3년마다 새롭게 추가된다. 시 산하기관으로 재단을 설립해 예술작품을 관리하고 있다. 안양예술공원은 삼성천과 삼성산 산림욕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안양예술공원 관광종합안내센터’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가면 편하다. 안내센터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천변을 따라, 산림욕장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널찍한 주차장 부지 한쪽에 조망 탑처럼 생긴 철골 구조물이 서 있다. 이것도 작품이다. ‘1평 타워’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작가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Didier fiuza Faustino)가 2005년 설치했다. 1평짜리 네모난 공간이 철제 계단과 기둥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모습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파리와 리스본 등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작가가 우리나라의 면적 단위 ‘평(平)’을 어떻게 알고 작품에 활용했을까. 이상경 안양시 관광보좌관은 “작가에게 직접 작품이 들어설 현장을 보여준다. 공간 후보지를 본 작가가 공간의 정체성이 투영된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디디에르는 저 세계 각국을 다니며 그 나라의 특성에 맞는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가는 1평 타워를 통해 제한된 목적을 위한 공간이 아닌, 1평 자체가 갖는 가능성에 대해 주목했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길은 천변 인도를 따라 이어진다. 찻길 옆으로 카페와 식당이 늘어서 있다. 관악교를 건너 삼성산 산림욕장으로 길을 틀었다. 안양예술공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김중업박물관과 안내센터가 있는 초입, 삼성산 산림욕장과 안양파빌리온을 중심이 되는 중간 부분 그리고 예술공원로가 끝나는 가장 안쪽 지점이다. 이 세 포인트를 중심으로 예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중 가장 볼 것이 많은 건 삼성산 산림욕장이다. 자연과 예술의 치유가 동시에 가능한 힐링 스폿이다.

안양예술공원은 코로나 직전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다. 태국에서 ‘아트 인 아트’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태국인 관광객과 인플루언서가 몰려와 인증샷 명소로 인기를 끌었다. 한 태국 락그룹은 안양예술공원을 무대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안양예술공원은 태국과 연이 깊다. 태국 방송국 CH3은 안양예술공원의 변신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유모차와 휠체어도 다닐 수 있는 무장애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가장 처음으로 마주한 작품은 미국 설치미술가 마이클 주(Michael Joo)의 ‘중간자(2016년)’. 옴폭 팬 땅에 구리로 만든 안테나를 세웠다. 팬 땅에는 화강암 조각을 쌓아올려 위성 수신 접시를 형상화했다. ‘중간자’라는 작품은 시간, 장소, 만남을 함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리 기둥은 산화되고 접시를 구성하는 돌은 위치가 변하거나 흙에 덮이고 사이사이 풀이 자랄 것이고 언젠가는 살아있는 유적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볼프강 빈터&베르트홀트 회르벨트(Wolfgang Winter & Berthold Hörbelt, 독일)의 ‘안양상자집-사라진(탑)에 대한 헌정(2005)’은 좀 더 친숙한 느낌이었다. 맥주를 담는 플라스틱 상자를 쌓아 올려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예전 불교 중심지였다는 이곳의 정체성을 살려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담은 불탑을 창조해낸 거다. 이 작품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진가를 발한다. 자연광이 플라스틱 상자를 통과하면서 조명 효과를 낸다.

용의 꼬리


전환점


전망대

이승택(한국) 작가의 ‘용의 꼬리(2005)’는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숲속 나무 사이에 기와지붕이 고꾸라져 파묻힌 모습이다. 삼성산을 한 마리 용으로 생각한 작가는 기와를 쌓아 용의 꼬리를 만들고 일부러 땅에 비스듬히 묻었다. 산 밑 깊은 곳에서 용이 꿈틀거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데크로드가 끝나고 폭신한 땅을 밟고 걷는다. 클립(CLIP, 일본)의 ‘전환점(2005)’을 지나 마주한 건 안양예술공원의 백미로 꼽히는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의 ‘전망대(2005)’다. MVRDV는 서울역 앞 고가를 리모델링한 ‘서울로 7017’을 설계하기도 했다. 똬리를 튼 뱀의 등을 탄 듯 뱅글뱅글 몇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한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형상화했다는 전망대에 오르면 삼성산과 멀리 안양 도심까지 내려다보인다. 허만 마이어 노이슈타트(Hermann Maier Neustadt, 독일)의 ‘리.볼.버(2005)’, 박윤영(한국)의 ‘그림자 호수(2005)’, 예페 하인(Jeppe Hein, 덴마크)의 ‘거울 미로(2005)’, 켄고 쿠마(Kengo Kuma, 일본)의 ‘종이 뱀(2005)’ 등 전망대를 지나 숲을 빠져나올 때까지 다양한 작품이 계속 됐다.


리.볼.버


거울 미로


그림자 호수


종이 뱀

관악 1교를 건너면 가로로 웅장한 건물이 나온다. ‘안양파빌리온’ 일명 ‘알바루시자홀’이다. 포르투갈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 비에이라(Álvaro Siza Vieira)와 한국 건축가 김준성이 함께 설계한 건축물로 안양예술공원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예술공원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더불어 안양시가 진행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대해 홍보하는 장소다. 도슨트투어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안양예술공원 가장 깊숙이 위치하는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2005)’은 SNS 인증샷 명소다. 아콘치 스튜디오(미국)가 제작한 곳으로 푸른 폴리카보네이트 판으로 덮인 통로를 따라 걸으면 길 끝에 야외공연장으로 이어진다. 자연광이 폴리카보네이트 판을 통해 비치면 터널 안은 오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터널 끝 공연장은 나무데크와 배수로 덮개로 흔히 사용되는 철재 그레이팅을 가지고 만들었다. 철재 그레이팅 좌석은 마치 물결이 일렁이는 듯 굴곡을 줘 마치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다.

안양예술공원은 근래 가본 야외 전시장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예술에 방점을 찍는 건 자연이었다. 만약 안양예술공원에서 삼성산과 삼성천이 빠졌다면 여느 예술을 테마로 꾸민 공원과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예술을 향유하는 안양시민의 모습도 신기하고 그저 부러웠다. 그저 등산하러 왔을 뿐인데, 천 따라 산책만 했을 뿐인데 사진 한컷 한컷에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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