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으로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이라고도 한다. 1996년 국제문화유산연구저널에서 처음 용어가 등장했고, 2000년 영국에서 출간된 책『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명소에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미국의 9.11메모리얼 파크,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 등이 있다. 참혹한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되새기는 다크 투어리즘은 최근 세계적인 여행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독일만큼 다크 투어리즘에 특화된 곳을 찾아보긴 어렵다. 나치라는 암흑의 역사를 지닌 독일은 깊은 과오를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그로 인해 독일 곳곳에 나치의 발자취를 기억할 수 있는 현장들이 남아있다.
01 뉘른베르크 Nürnberg |
독일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뉘른베르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독일 제국의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오랜 기간 나치 전당대회가 열린 ‘히틀러의 도시’로 유명하다.
나치는 1923년 뮌헨에서 처음 전당대회를 개최한 후 1927년 뉘른베르크에 터를 옮겨 멸망하기 전까지 매년 전당대회를 열었다. 수만 명의 나치 추종자들이 뉘른베르크에 모여 나치의 업적을 찬양했고,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의 수뇌부는 사람들을 선동했다. 특히 선전의 달인이던 괴벨스는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활용해 홍보 영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최고의 선전 영화로 꼽히는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의지의 승리’가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1933년 히틀러가 나치 수상이 된 이후 전당대회는 더욱 성대해진다. 나치는 아예 11㎢에 달하는 대규모 연회장을 건설해 선전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장 ‘라이히슈파르타이탁스겔렌데(Reichsparteitagsgelände)’다. 이곳에서 나치는 1933년부터 1938년 사이 총 6번의 나치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히틀러의 최측근이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에 참여한 건물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위용을 뿜어낸다. 특히 아테네나 로마 등 고전 건축물들을 형상화해 나치의 절대적 권력을 상징했다.
나치 전당대회를 상징하는 ‘리히트돔(Lichtdom)’ 연출도 이곳 뉘른베르크에서 탄생했다. 150여 개의 대공 조명이 하늘을 향해 있는 모습은 히틀러의 신적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치 선동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나치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데 일조했다.
1945년 나치가 패망하며 뉘른베르크는 광기의 역사를 떠나보내는 듯했다. 사람들은 전당대회장을 나치의 선전도구로 간주하며 나치의 흔적을 없애길 원했다. 그로 인해 1967년 주요 회랑이 폭파 후 철거됐다. 그러나 1973년 ‘기념물 보호법’이 제정되며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뉘른베르크 지방정부는 폐허가 된 건물을 일부 보수했고, 2001년 박물관과 나치 전당대회 기록센터를 건립했다. 선동과 선전의 역사를 인정하며 과오를 되새기겠다는 의미였다.
전당대회장에서는 나치가 활동하던 때 관중들이 모인 연회장, 의회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지금은 다소 황량한 분위기지만 거대한 규모의 연회장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치에 열광했는지 짐작이 간다. 박물관은 나치와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둬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다.
02 뮌헨 München |
바이에른 주의 주도이자 독일 제3의 도시, 뮌헨은 안정적인 경제력을 기반으로 독일에서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지금은 맥주와 자동차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한때 나치즘의 본거지였던 과거가 있다.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16㎞ 떨어진 다하우에는 나치 독일의 인권탄압을 상징하는 강제 수용소(Konzentrationslager)가 존재한다. 이곳은 나치 최초의 수용소로, 1933년 6월에 문을 열어 1945년 4월 나치 패망과 함께 폐쇄됐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치 수용소이며 독일 내에서는 최대 규모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건립할 때도 다하우의 것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그야말로 나치에서 자행한 대규모 학살 ‘홀로코스트’의 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치는 12년 동안 다하우에 죄수 20만 명을 수감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고문과 살해를 저질렀다. 주된 대상은 유대인이었고 종교인과 동성애자, 장애인들도 있었다. 나치는 이들에게 ‘반나치 혐의’를 들이밀며 반인륜적 범죄를 이어나갔다. 대량 학살 외에도 질병과 영양실조, 자살 등으로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2000년 8월, 독일은 ‘기억·책임·미래재단(EVZ)’을 설립해 강제 수용소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 피해 생존자 170만 명에게 배상을 했다. 이처럼 과오를 기억하고 반성하려는 태도가 다하우 수용소에서도 묻어난다.
현재 다하우 수용소는 박물관과 역사관 등으로 탈바꿈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채 수용소의 참혹한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과 사진, 생존자 인터뷰 등을 기록해뒀다. 수용소 곳곳에 나치의 잔혹상을 상징하는 조각품도 있다.
03 베를린 Berlin |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뼈아픈 나치의 역사와 더불어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됐던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전쟁 피해자와 희생자를 추모하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이들에겐 슬픈 과거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일상과도 같다.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은 2004년 완공된 기념관으로 홀로코스트로 인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Mahnmal)이라고도 부른다. 1만 9000㎡ 규모의 추모 공원은 베를린 한복판에 자리해있다. 이곳은 과거 괴벨스의 별장이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총 2711개의 콘크리트 비석이 나열되어 있는 모습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원 한쪽에는 유대인 학살 관련 자료를 전시해둔 방문자 센터가 있다.
글=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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