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 프랑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서초구 ‘서래마을’이다. 서래마을은 우리나라가 KTX 사업을 할 당시 프랑스에서 기술 지원을 위해 파견한 인원들이 서초구에 거주하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특히 1985년 ‘서울프랑스학교’가 서래마을로 이전하면서 교육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이 대거 서래마을로 이주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거주 프랑스인의 약 40%가 이곳 서래마을에 살고 있다. 수백 명의 프랑스인들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레 프랑스와 관련된 여러 장소들이 생겨났다. 서래마을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프랑스의 맛과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 3곳을 소개한다.
1. 프랑스 정통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 ‘마얘(maillet)’
카페 ‘마얘(maillet)’. 이곳은 밀푀유바니, 딱뜨바니 등과 같은 프랑스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는 카페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록달록한 디저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맛과 비주얼 모두 완벽하다는 리뷰가 쏟아지는 마얘는 평일에도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 역시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추어 손님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마얘는 프랑스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부부 둘 다 프랑스 요리학교를 졸업한 실력 있는 파티시에다. 김수진 파티시에는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 진짜 프랑스식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프랑스 디저트를 소개하고 싶어서 매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밀푀유바니’를 먼저 맛봤다. 밀푀유바니는 마얘에서 많은 손님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다. 원래 프랑스 현지에서는 시트와 크림이 가로로 층층이 쌓인 밀푀유를 뒤로 툭 밀어 눕혀 나이프로 잘라먹는다. 하지만 마얘는 이를 재구성해 손님들이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밀푀유를 세로로 눕혀 만들었다.
밀푀유바니를 자세히 살펴보면 바닐라 크림 속 까만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까만 점들의 정체는 바로 바닐라빈 안에 있는 ‘씨앗’이다. 바닐라빈을 극소량 넣는 다른 디저트 가게들과는 달리 마얘는 아낌없이 바닐라빈을 사용해 까만 씨앗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크림의 풍미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적당히 달면서도 바닐라의 향이 가득해 자꾸 손이 갔다. 겉은 바삭하면서 안은 촉촉한 파이지 부분도 크림과 잘 어울렸다.
이어서 ‘파리 브레스트’를 한입 했다. 크림이 한가득 입으로 들어와 먹는 내내 기분을 좋게 했다. 특히 폭신한 식감에 진한 헤이즐넛 향이 강하게 올라와 인상 깊었다. 파리 브레스트 역시 마얘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한 메뉴다. 프랑스에서 맛볼 수 있는 파리 브레스트는 원래 동그란 도넛 모양이지만 마얘는 길쭉한 모양으로 파리 브레스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마얘에서는 ‘이탈리안 머랭’으로 만든 마카롱도 맛볼 수 있다. 머랭은 흰자와 설탕을 넣는 방법에 따라 이탈리안 머랭과 프렌치 머랭으로 나뉘는데, 시중에서 흔히 판매하는 마카롱은 대부분 쫀득한 식감의 ‘프렌치 머랭’을 사용한다. 마얘의 마카롱 꼬끄는 촉촉하면서도 바삭해 확실히 늘 먹던 마카롱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꼬끄와 꼬끄 사이의 필링도 녹진하고 달달해 맛있었다.
마얘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휴무일 없이 매일 문을 연다. 손님이 많아 인기 있는 메뉴는 오전 시간대에 품절되기도 한다. 원하는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면 오픈 시간에 맞추어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2. 프랑스 화가들의 조각상부터 탁 트인 잔디밭까지… 서래마을 ‘몽마르뜨 공원’
서래마을에는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나는 ‘몽마르뜨 공원’이 있다. 서래마을의 중심부에서 약 15분 정도 걷다 보면 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표지판 바로 옆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 봤다. 안내판을 지나쳐 안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면 넓은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몽마르뜨 공원은 프랑스의 유명 의류 브랜드 ‘까샤렐(CACHAREL)’의 장 부스케(Jean Bousquet) 회장이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조성을 제안한 곳이다. 까샤렐 브랜드는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자연보호 기금으로 기부했고 이에 서초구는 반포 배수지 일대에 나무를 심어 지금의 몽마르뜨 공원을 만들었다. 근처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의 명칭을 따와 공원 이름을 정했다.
몽마르뜨 공원 한가운데에는 남자와 여자가 춤을 추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그린 ‘부지발의 무도회’를 본뜬 작품이다. 그 뒤쪽에는 프랑스 화가들의 조각상이 놓여있다. 실제 프랑스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작품 활동을 펼친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의 조각상이다.
공원 한쪽에서는 운동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서초구에 거주 중인 김모씨는 “운동을 하러 종종 몽마르뜨 공원에 방문한다”며 “근처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다 보니 이곳 몽마르뜨 공원에 오면 프랑스어가 자주 들려 꼭 해외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몽마르뜨 공원에서는 프랑스인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축제도 개최한다. 매년 6월에는 한⸱불 음악 축제, 매년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프랑스 전통 장터 등이 열린다. 봄이 찾아온 이번 주 주말, 몽마르뜨 공원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몽마르뜨 공원의 넓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따스한 봄 햇살을 만끽해 보자.
3. 맛과 분위기까지 완벽한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마담미미’
서래마을에는 프랑스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마담미미’도 있다. 올해 2월 새롭게 오픈한 마담미미는 프랑스인 사장님과 프랑스 유명 요리 학교 ‘르꼬동블루’를 졸업한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가게 내부는 협소한 편이지만 은은한 조명과 특색 있는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마담미미는 프랑스인 가게 사장님의 할머니 미셜린(Micheline)의 이름을 따 식당 이름을 정했다. 프랑스 가정에서 요리하던 할머니의 레시피를 그대로 가져와 메뉴를 고안했기 때문이다. 마담미미의 사장 나단(Nathan)씨는 “모두가 할머니 음식에 따뜻함을 느끼는 것처럼,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제공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에멘탈 치즈 어니언 수프’가 먼저 내어졌다. 어니언 수프는 대중적이고 저렴한 재료인 양파를 사용해 깊은 맛을 낸 프랑스의 전통 요리다. 약 1시간 동안 조리하는 보통의 어니언 수프와는 다르게 마담미미는 양파의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약 5시간 동안 약불에서 양파를 끓인다. 실제로 한입 맛보면 과하지 않은 적당한 단맛과 양파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수프 위에 올라간 치즈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달달하면서도 고소해 더 맛있다.
마담미미에서는 색다른 연어요리와 생선 요리를 만나볼 수 있다. 프랑스 가정에서 연말에 자주 등장하는 음식 중 하나인 ‘연어 그라브락스’는 연어를 소금, 설탕, 비트로 염장하고 말려서 만든다. 마담미미의 연어 그라브락스는 일반 연어와는 다르게 쫀득쫀득한 식감을 살려 맛을 더했다. 연어 위에는 연어의 짭짤한 맛과 잘 어울리는 향긋한 레몬 딜 크림이 올라가 있다.
제철 생선에 프랑스 전통 요리 ‘라따뚜이’를 접목한 생선요리도 있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니스에서 유래한 요리로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만드는 토마토소스 기반의 스튜다. 마담미미의 생선 요리는 제철 생선 아래에 라따뚜이 소스와 조개와 생선 육수로 만든 클램 소스를 깔았다. 두 가지 소스와 부드러운 생선의 조화가 돋보인다.
허브향이 가득한 ‘프렌치랙 양갈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리다. 프렌치랙은 양 한 마리에서 2%만 생산되는 가장 좋은 부위다. 프랑스 가정에서는 자칫 냄새가 날 수 있는 양갈비에 허브 크러스트를 입혀 특별한 날 즐겨 먹는다. 동일한 방식으로 조리한 마담미미의 프렌치랙 양갈비는 부드러우면서도 육즙이 가득했다. 특히 남미식 양념장이라고도 불리는 치미추리와 단호박 퓌레, 알배추와 함께 먹으면 더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 제대로 된 프랑스 가정식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마담미미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마담미미 운영시간은 오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다. 점심에는 문을 열지 않으며 월요일과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글=정세윤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