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가볼만한 곳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글&사진/산마루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의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사르락 사르락
밤이 새도록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들려온 밤
오랜만에 마신 막걸리 취기 탓에
지난밤은 잃어진 추억 조각을 꿰매느라 밤새 뒤척였드랬습니다.
첫새벽 깨어나
텅 빈 마음에 등불을 켜고
마당에 내려서니
온 세상은 하얗게 변해
밤새 뒤척인 꿈들의 조각은
첫 눈 손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앞에 섰습니다.
떠나보낸 시간들이 한웅큼 모래알로 변해
무섬외나무다리 아래 내성천 강물에 몸을 누이는 곳,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습니다.
은모래 만큼이나 굴곡진 삶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 오고 건너 갔음을…
물 위에 떠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으로 불리는 영주 문수면 수도리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인 외나무다리 위로 지난밤 소리 없이 첫 눈이 내려쌓여 몽환적인 풍경을 선물해줍니다.
조선중기 1666년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마을 건너 머럼 마을에서 건너와 만죽재를 짓고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햇수로 358년 전의 일입니다.
첫눈을 소복히 덮어쓴 고택과 초가집 40여 채가 마치 한 폭의 고즈넉한 수묵화를 그려내는 마을 입구에는 밤 잠 없는 어르신들이 외나무다리가 궁금해서 다녀간 발자국이 군데군데 남았습니다.
내성천 물길을 막아주는 언덕 위 길따라 심어진 소나무에도 흰 눈이 내려 쌓여 수묵회를 그려내고, 마을 초입 김성규 가옥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입니다.
경북 영양 주실마을에서 성장한 조동탁(조지훈의 본명)은 무섬마을 초입의 김성규 딸인 김위남(예명 김난희)와 혼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조지훈은 아내인 김예남에게 김난희라는 예명을 지어주며 알콩달콩 신접살림을 이어갔고,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며 처갓동네인 무섬을 배경으로 별리(別離)라는 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 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방울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고운 뫼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을 바라보니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고
꾀꼬리 노래 하던 실버들 가지
꺽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임아
조지훈, 별리(別離)
별리(別離) 시비는 무섬마을 끝자락 무섬자료전시관 안뜰에 세워져 있는데 어여쁜 신부를 무섬마을에 남기고 떠나는 발길이 너무 아쉬워 차마 이별이라 하지 못하고 별리라고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발밑에 눈 밣히는 소리를 들으며 고택과 초가가 어우러져 옹기종기 살아가는 무섬마을 한 바퀴를 걸어봅니다. 어디선가 달려온 강아지 한마리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발을 내밀고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 냅니다.
고즈넉한 무섬마을 겨울 정취를 음미하며 걷다가 다시 무섬외나무다리 앞에 서봅니다.
어느새 먼저온 이방인이 하얀 눈이 덮힌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끝까지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 온 발자국 흔적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마을로 진입하는 수도교가 있어 마음대로 무섬마을을 찾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학교가는 다리, 영주 시장 가는 다리, 농사지을 때 건너는 다리 이렇게 3개의 외나무다리만이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두 개의 다리만 남아 옛 이야기를 소환합니다.
지난 여름 폭우에 떠내려 간 외나무다리는 가을 무섬외나무다리 축제에 맞추어 복원되었고, 그 외나무다리 위에 소복히 흰 눈이 쌓였습니다.
무섬외나무다리 위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며 내성천을 건너 봅니다.
현기증이 몰려오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강물을 타고 봄이 다가옴을 느껴봅니다. 아무리 겨울이 깊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무섬외나무다리에서 건져갑니다.
영주 무섬외나무다리축제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