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이어진 여행의 열기가 새해에도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만큼, 각자가 즐기는 여행의 콘셉트도 다양한데요. 이에 자연스레 여정 중 한 사람이 보고 느낀 점을 독창적으로 풀어낸 여행 서적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때 멋지고 감동이 있는 여정도 좋지만, 이왕이면 색다른 이야기를 원한다면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너무 완벽하기만 한 여행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이번 주 여책저책은 마냥 쉽고 재밌지만은 않은 여행기를 담은 책 2권을 소개합니다. 소개한 책 속 주인공은 때로는 즉흥적이고 실수도 하는 보통 사람입니다. 덕분에 독자는 여정에 공감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새로운 여정을 계획해 보길 추천합니다.
지금 아니면
주영두 / 지식과감성
여행이라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물론 단기간의 여정을 꾸리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장거리 여행을 꿈꿀 경우 시간과 비용에 구애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주영두 작가도 이러한 고민을 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오랜 고심 끝에 세계 여행을 떠나고 그간 있었던 일을 담은 책이 바로 ‘지금 아니면’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작가가 여행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그는 서른을 앞둔 무렵, 북한산을 오르던 중 히말라야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작가는 무작정 히말라야를 찾아 떠났고 본격적인 여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퇴사하고 떠난 인도, 대지진으로 죽다 살아난 네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작가는 한 가지 깨닫는다. 한 번뿐인 인생, 꿈을 찾아 살아보기로.
꿈을 찾아보자는 결심 하나로 작가는 1년 동안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신혼여행으로. 물론 세계 일주를 제안하며 망설이기도 했다. 주저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아내의 한마디다. ‘지금 아니면 나중에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 이 말에 힘입어 부부는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유럽, 인도와 네팔, 동남아시아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다.
이제 우리 세대는 자신만의 색깔을 스스로 만들어야 살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개성이 다르듯, 자신의 색깔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여행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대학을 통해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여행이 반드시 정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습니다.
-작가의 말
우리의 인생은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100년 중에 1년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써도 인생 망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설령 허튼 행동으로 시간을 날렸다고 생각하더라도 젊은 날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경험은 정말 값진 배움입니다. 오히려 이런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서구권에서는 이것을 ‘갭 이어’(gap year)라 부릅니다. 당신만의 갭 이어 시간을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말
산책 다녀오겠습니다
구연미 / 생각나눔
누구든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멋진 문구가 가득한 여행기를 보고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선뜻 여행을 떠났다가 진짜 현실을 깨닫는 경험 말이다. 사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여행일지라도 직접 해보면 불편한 건 다 있고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러한 요소를 모두 지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야기 속 힘들고 귀찮은 일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에게 감동을 줘야 하고 ‘나도 가볼까’하는 마음을 안겨줘야 하기에 시중엔 멋진 문구가 가득한 여행 에세이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 우리가 떠나는 여행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에 구연미 작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구 작가의 글은 솔직하다.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이고 매력 넘친다. ‘산책 다녀오겠습니다’는 구연미 작가가 에베레스트에서의 여정을 풀어낸 책이다.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장난감 같은 경비행기가 우당탕 쿵탕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굉음이 창을 뚫고 들어와 머릿속 고막을 찢는다. 앞좌석을 꽉 붙들고 머리를 숙인다. 앞좌석의 네팔 여인, 큰 소리로 경을 외며 기도하다가 급기야 머리를 창에 대고 까무러친다. … 조금 지나니 창밖에 쿰부 히말라야의 비현실적인 설산 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으으억’ 겁에 질린 신음 소리가 ‘와아아’ 환희의 감탄사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드디어 내가 히말라야 여신을 영접하게 되는구나.
-25p 중
멋진 여행지 속 때로는 낭만이 함께하는 이야기를 담은 여느 여행 에세이와 달리 ‘산책 다녀오겠습니다’는 날 것 그대로의 에베레스트 여행기를 전한다. 작가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가는 것이 버킷리스트라고 했다. 이에 베이스캠프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작가는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기도 했을 때도 많았지만, 이왕 온 김에 이 악물고 산을 올랐다고 했다.
안경이 없어 더듬거리긴 했지만, 실내에서 늘 쓰던 털모자를 당당하게 벗고는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식당으로 간다. 기름때만 간신히 빼서 별로 찰랑대지 않는다. 흐흐흐. 심신이 상쾌한 거로 대만족이다. 7시 아침 메뉴는 황태해장국, 계란프라이, 햄, 김, 멸치다. 오늘 아침은 없는 입맛 대신 깡으로 먹는다.
– 130p 중에서
글=이가영 여행+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