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에 소주 마시면서 K팝 떼창” ‘K푸드’ 점령한 특급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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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그랜드 하얏트 제주 ‘포차’, 안다즈 서울 강남 ‘조각보 키친’, 전통주 바 ‘텐 웰즈’, 포시즌스 서울 ‘오울’ / 사진=각 업체

K푸드 열풍이 무섭다. 미국에서 냉동 김밥 품귀 현상이 불고 펜데믹 이후 우리나라를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인 일본 사람들은 ‘한국 음식’ 사 먹는데 가장 많은 돈을 쓴다. K푸드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특급호텔 업계도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가장 전망 좋은 꼭대기 층에 ‘포차’를 만들고 양식당을 한식당으로 바꿨다. 덩달아 전통주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서울과 제주, 의외의 장소에서 우리의 것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 특급호텔 꼭대기 점령한 ‘포차’

‘포차’는 2000년대 초반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불 무렵부터 주목받던 아이템이었다. 일본 여행객은 명동 주변 호텔에 머물면서 늦은 밤 소주 한 잔에 소박한 안주를 곁들일 수 있는 포장마차를 찾아다녔다. 그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호텔 밖의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5성급 호텔에서 가장 뷰 좋은 곳을 차지하고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 여행객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 ‘포차’ 전경 / 사진=그랜드 하얏트 제주

특급호텔 내 ‘원조’ 포차는 그랜드 하얏트 제주다. 호텔 38층에 위치한 ‘포차’는 2020년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내 호텔이 오픈하면서 문을 열었다. 문 연 지 3년이 지난 포차는 그랜드 하얏트 제주 간판 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포차는 외국인 여행객뿐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것치고 가격대가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뷰가 좋아 주기적으로 찾는 현지 주민도 있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 ‘포차’에서는 다양한 술안주와 한국 음식을 판다 / 사진=그랜드 하얏트 제주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주기적인 메뉴 개발 덕분이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는 지난여름 두 차례 메뉴를 개편했다. 지난 6월에는 한우육회, 육전, 제육볶음, 어묵탕, 두부김치는 물론 떡볶이 같은 분식 메뉴도 추가했다. 반응은 뜨거웠고 곧바로 다음 달 황태술국, 연포탕, 명태알 곤이찜, 번데기를 추가했다.


뷰 맛집으로 소문난 그랜드 하얏트 제주 ‘포차’ / 사진=그랜드 하얏트 제주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포차 플래터’다. 제주 보말 막국수, 골뱅이, 해물 숙회, 모둠 꼬치, 후라이드 치킨 등 제주 현지 음식부터 K푸드를 대표하는 치맥까지 맛볼 수 있어 반응이 좋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 관계자는 “포차를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번데기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면서 K팝을 떼로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덧붙였다.

한식이 인기를 끌자 양식당을 없애고 한식 다이닝을 새롭게 선보인 호텔도 있다. 신사동 안다즈 서울 강남에는 지난 12월 1일 한식당이 문을 열었다. 호텔 관계자는 “발효 식품과 천연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한식이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며 “호텔에서 한식을 체험하면서 한국 문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식 다이닝을 선보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안다즈 서울 강남 ‘조각보 키친’ 한상차림 / 사진=안다즈 서울 강남

조각보 키친 한식은 기존 호텔에서 선보이던 한식당과는 차이가 있다. 한식 고유의 맛에 뿌리를 두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좀 더 캐주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점심에는 한상차림, 저녁에는 주안상을 판매한다. 한상차림은 돌솥밥과 국 그리고 반찬과 후식으로 구성했다. 돌솥밥 위에 얹는 주재료는 소 갈빗살 불고기, 제주산 삼겹살과 완도산 전복, 노르웨이산 연어 중에 고를 수 있다.

저녁 주안상은 육회, 바닷가재 냉채, 갈비찜, 제주 흑돼지 등 한식 메뉴에 술을 곁들일 수 있다. 단품 메뉴로는 육회와 갈비찜을 추천한다. 제철 해산물과 바닷가재를 넣은 라면과 묵은지 김밥 등 친숙한 요리도 찾아볼 수 있다.

# 화룡점정은 술, 전통주가 반가운 이유

K푸드 열풍에 뒷심을 발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술이다. ‘초록 병’ 소주에서 더 나아가 파전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외국인 여행객이 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가장 먼저 응답한 호텔은 포시즌스 서울이다. 2022년 4월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기존 운영하던 와인바를 한국식 컨템퍼러리 바 ‘오울(OUL)’로 바꿨다. 한국식 컨템퍼러리 바라는 게 뭔가 싶지만 쉽게 말해 한국적인 색채를 담은 전통주 바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오울’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전통, 근대, 현대 세 가지 콘셉트로 나눠 각각에 어울리는 술과 메뉴를 소개한다. 전통 카테고리는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한양’으로 한다. 막걸리와 소주, 과실주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시절부터 여러 지방과 가문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등장했다는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다. 전통 카테고리에서는 식혜나 화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칵테일이 눈에 띈다.

근대는 ‘경성’으로 대표된다. 맥주와 와인 등 서양 술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주막 옆에 카페와 바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전국적으로 희석식 소주가 퍼져나갔다. 현대는 역시 ‘서울’이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다양한 술이 융합되고 문화가 어우러진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오울’ / 사진=포시즌스 호텔 서울, 홍지연 여행+ 기자

한국적인 색채는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일월오봉도, 민화 속 호랑이와 방아 찧는 토끼 등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되살아났다. 두루마리 문서처럼 생긴 안주 메뉴판도 재밌다. 시대별 ‘소울푸드’가 다채롭게 준비됐다. 수제 어묵부터 바닷가재가 들어간 떡볶이, 손수 육수를 내고 수프를 만든 바다라면 등 안주가 궁금해 오울을 찾는 사람도 있단다.


전통주 전문 바 ‘텐 웰즈’ / 사진=텐 웰즈 인스타그램

외국인 친구에게 전통주 관련 추천할 곳이 하나 더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최근 문을 연 전통주 전문 바 ‘텐 웰즈’다. 텐 웰즈는 전통주 유통기업 부국상사 김보성 대표가 운영한다. 16년 전 국내 최초 전통주 전문 유통기업 부국상사를 만든 김보성 대표는 전국 호텔과 주점, 보틀숍에 전통주를 공급하는 일을 한다. 최근에는 전통 술 도가와 함께 김보성, 김민종 등 유명인 이름을 내건 술을 출시했다.

국내 최초 전통주 전문 스피크이지 바 텐 웰즈는 홍대에서 영업하다 지난 10월 강남으로 이전했다. 바와 보틀숍을 겸하던 이전 홍대 매장과는 달리 신사동 텐 웰즈는 스피크이지 바 콘셉트다. 스피크이지 바는 1920~3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 생겨난 무허가 주점을 말한다. 주류 유통이 자유로운 지금은 비밀스러운 은신처에 숨겨진 공간이라는 콘셉트만 가져왔다.


전통주 전문 바 ‘텐 웰즈’ / 사진=텐 웰즈 인스타그램

등 하나만 달랑 켜진 커다란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 문 옆에 있는 우물펌프를 눌러야 문이 열린다. 어두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텐 웰즈 내부가 나온다. 병풍을 두른 인테리어, 나무 판에 정자로 새긴 ‘십정(十井)’이라는 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 진열장은 전국 술도가에서 공수한 전통주가 가득 채우고 있다. 텐 웰즈가 취급하는 전통주는 300가지가 넘는다. 더 많은 우리 술을 발굴하고 개발해 전통주 400종을 보유하는 것이 새해 목표다. 소주는 주된 원료에 따라 쌀 소주와 보리 소주로 나눈다. 기타 고구마나 메밀·찹쌀·통밀 등으로 만든 소주도 있다.


전통주 전문 바 ‘텐 웰즈’ / 사진=텐 웰즈 인스타그램

의외로 전통주 브랜디도 많다. 오미자·포도·사과·복분자·감귤 등 다양한 재료로 담근 브랜디를 맛볼 수 있다. 탁주와 맥주·와인 등 국내 곳곳에서 찾아낸 다양한 술을 취급하고 있다. 전통주에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창작 칵테일도 선보인다. ‘우물 안 유자’ ‘홍로장생’ ‘오디가 오디더라?’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메뉴판에 한가득이다. 이밖에도 여타 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국산 위스키와 클래식 칵테일도 판매한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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