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로 자금을 조달하려던 바이오기업들이 상장 심사지연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최근 바이오 벤처 투자금이 급감한 가운데 IP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던 계획마저 불확실해지면서 진행 중이던 연구개발(R&D)을 중단하거나 심한 경우 존폐 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8일 비즈워치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상장예비심사신청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45영업일이 넘도록 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바이오텍은 △엔솔바이오사이언스 △피노바이오 △디앤디파마텍 △오상헬스케어 △하이센스바이오 △이엔셀 △노브메타파마 △코루파마 등 총 8곳이다.
이 중 상장심사가 가장 오래 지연된 곳은 신약개발 기업 엔솔바이오사이언스다. 지난 2월 코넥스에서 코스닥 시장으로 기술특례 이전상장 심사를 청구한 지 약 9개월째 승인이 미뤄지고 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는 퇴행성디스크치료 후보물질 P2K의 미국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는 등 다수의 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누적된 적자로 재무구조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신약 개발의 지속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2020년 말 엔솔바이오사이언스의 자기자본은 -29억원을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작년 이 규모는 -58억원까지 확대됐다. 최근 유상증자로 급한 불을 껐으나 신약개발 성과가 나오기까진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연초부터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한 IPO 문을 두드린 이유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향후 2~3년 내 보유 파이프라인의 기술이전이나 품목허가 승인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그때까지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했다.
이처럼 상장심사가 지연되며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을 겪는 건 엔솔바이오사이언스 뿐만이 아니다. 8일 기준 상장심사가 지연된 8개 바이오기업 중 2022년 말 기준 자본잠식을 나타낸 곳은 엔솔바이오사이언스를 포함해 피노바이오, 이엔셀, 노브메타파마 등 4곳이다.
심사가 지연될수록 시장에선 사업성이나 재무 안정성 부실 등 의혹이 제기되고, 결국 해당 기업들의 성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우려도 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거래소로부터 심사 철회 요구를 받았다는 루머가 돌며 상장심사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고 있다는 해명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업 측에 요구한 자료의 제출이 지연되거나, 심사를 위해 필요한 국내외 주요한 계약이나 재무수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며 “상장 요건 미충족 여부와 무관하게 심사기간이 45영업일을 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상장심사 기관이 바이오기업의 기술가치를 평가할 전문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심사가 늦어지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지적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한국거래소, 한국바이오협회 등과 함께 기술특례상장 시 거래소 상장위원회에 기술 전문가를 최소 2인 이상 포함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해당 기술 전문가의 심사 참여 확대를 통해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제대로 평가받고, 투자자들도 우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심사 제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기업은 대부분 외부 투자금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구조로 자체 매출이 발생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상장을 한다는 건 보유 파이프라인의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는 건데, 이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면 상장심사기간도 크게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