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했거나 글로벌 권리를 보유한 신약을 다른 약과 함께 처방하는 병용요법(Combination Drug Therapy)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신약 하나만을 투여하는 단독요법과 비교해 약효, 내성 등에서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HLB제약은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간암 신약인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인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의 품목허가 심사를 받고 있다. FDA 허가 결정 시한인 이달 중순까지 승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회사측은 기대하고 있다.
리보세라닙은 암세포가 자라나는데 필요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는 혈관을 생성하는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를 억제하는 원리의 약물이다. HLB제약은 지난 2020년 미국 어드벤첸연구소로부터 이 약물의 글로벌 개발 및 판권을 도입한 바 있다.
또 다른 국내 제약사인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와 미국계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 이노베이티브 메디슨(구 얀센)의 표적항암제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 병용투여의 허가심사를 미 FDA로부터 받고 있다.
지난 2월 FDA는 두 약물의 병용요법을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이르면 올해 8월 내 승인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될 경우 의약품 심사기간이 기존 대비 절반가량 단축된다.
렉라자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주로 발견되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수용체) 돌연변이의 활성을 억제하는 원리의 약물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5년 국내 바이오기업인 오스코텍으로부터 물질을 도입해 렉라자를 개발했으며 지난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국내 허가를 받아낸 바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이처럼 병용요법으로 미국시장 진출을 두드리는 이유는 작용원리가 서로 다른 약물의 성질을 적절하게 조합하면 단독요법보다 약효나 내성 등의 측면에서 강점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HLB제약은 지난 임상 3상 시험에서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을 함께 처방받은 환자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이 22.1개월로 나온 것으로 확인했다. 치료를 시작한 이후 환자들의 평균적인 생존기간이 22.1개월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간암 치료제 중에서 mOS가 20개월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앞서 리보세라닙은 중국에서 간암환자를 대상으로 단독으로 투여한 임상 3상 시험에서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이 8.7개월로 나타난 바 있다. 단순 계산해 리보세라닙을 캄렐리주맙과 병용 투여한 요법의 약효가 단독요법보다 두 배 이상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한양행이 진행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 임상 3상 시험에서는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이 23.7개월로 나왔다. mPFS는 치료 후 환자들의 암이 더 이상 악화하지 않은 기간의 중간값을 뜻한다. 이는 비소세포폐암의 표준치료제로 꼽히는 ‘타그리소(오시머티닙)’의 mPFS 16.6개월보다 40% 가량 높은 수치다.
특히 유한양행은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타그리소에 내성을 가진 환자에게 여전히 강한 약효를 나타내는 것을 임상시험에서 확인했다. 기존 약물로 치료가 제한적이던 환자들에게 새 치료 선택권(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HLB제약과 유한양행 외에 다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자체 개발하거나, 개발 및 판권을 보유한 신약의 병용요법으로 미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가 미국계 제약사 콤패스 테라퓨틱스에 기술이전한 담도암 신약후보물질 ‘ABL001’과 항암제 파클리탁셀 병용요법은 지난달 미 FDA로부터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임상 2상 시험 후 가속승인이나, 임상 3상 종료 후 우선심사를 받을 수 있다.
한미약품은 급성골수성백혈병 신약 ‘투스페티닙’을 다른 항암제인 ‘베네토클락스’와 ‘저메틸화제’와 투여하는 병용요법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또 다국적 제약사 MSD와 손잡고 자체 개발한 고형암 치료후보물질인 ‘BH3120’을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와 함께 처방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항체 병용요법 치료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342억4000만달러(46조4600억원)에서 연평균 8% 성장해 2031년 867억505만달러(117조6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병용요법은 약효를 극대화되고 단일약물이 가진 내성 등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 항암 분야에서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라며 “비슷하거나 상반된 원리의 약물을 함께 투여하는 병용요법에 대한 연구와 허가는 앞으로도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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