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출시된 ‘페르소나3’는 개발사 아틀라스의 운명을 바꾼 명작으로 불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니아층은 두터웠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아틀라스의 저변을 한번에 넓혀 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2편까지는 이른바 본가 시리즈라 불리는 ‘진 여신전생’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3편부터는 독자적인 시스템과 비주얼 그리고 세계관을 구축하며 형을 뛰어넘은 아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죠.
뒤늦게 ‘페르소나’ 시리즈에 입문한 분들이라면 이 작품의 존재를 모르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아쉬운 점은 너무 오래된 작품이라는 거죠. ‘페르소나4’나 ‘페르소나5’로 시리즈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타이틀인데, UX나 시스템이 20년 전 기준이다 보니 현재 기준으로는 꽤 불편한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지금 PS2나 PS 비타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이제 그런 아쉬움도 옛말입니다.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린 리메이크 타이틀 ‘페르소나 3 리로드’가 출시됐으니까요. 출시 플랫폼도 현세대 PS와 Xbox부터 PC까지 아주 폭 넓죠.
사실, 하루가 다르게 완성도가 높은 AAA급 신작이 출시되는 시대에, 출시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오래된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시리즈 팬이라면 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던 분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페르소나3 리로드’는 오히려 그런 분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원작의 매력을 증폭시키는
쫄깃한 리메이크
‘페르소나3 리로드’는 어디까지나 리메이크 타이틀인 만큼,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옮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스토리나 세계관 설정에서 특별히 다른 점은 찾을 수 없죠. 공간 연출 측면에서도 시점에 한계를 두거나, 한정된 공간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등 원작의 감각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눈에 띕니다.
시작 지점도 같습니다. 2009년, 일본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창궐합니다. 병명은 무기력증. 이 증상은 나이와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갑자기 발병하는 데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피폐해집니다. ‘페르소나3 리로드’는 이 무기력증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는 시점을 무대로 합니다. 플레이어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월광관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고, 느닷없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어리둥절한 상태로 학교 생활을 며칠 하다 보면 몇 가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숨겨진 시간이라 불리는 ‘섀도 타임’의 존재와 기숙사 멤버들은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을 ‘섀도 피플’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섀도 타임에 활동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정보가 먼저 주어집니다.
이 특별한 사람들은 ‘페르소나 구사자’라는 공통점이 있죠. 플레이어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러 ‘페르소나’를 다룰 수 있는 독보적인 적합자로 지목이 됩니다. 그리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특별과외활동부라는 이름의 조직에 합류하게 되고, 섀도 타임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공간 ‘타르타로스’를 오르며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또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호평을 받았던 원작의 스토리를 더 좋은 그래픽, 그리고 편안한 조작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페르소나4’와 ‘페르소나5’를 거치며 완성된 시리즈 특유의 스타일이 ‘페르소나 3 리로드’에도 이질감 하나 없이 매우 잘 어울리죠.
원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그래픽 덕분에 몰입감도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원작도 출시 시점 기준으로는 꽤 좋은 그래픽이었지만,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에 원화와 3D 모델링 사이에 간극이 컸었죠. 그러나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원화와 3D 모델링 싱크로율이 매우 높습니다. 오히려 게임 진행 사이사이 추가로 배치된 애니메이션 컷신보다 3D 연출 컷신이 더 질이 좋다고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런 변화들은 ‘페르소나 3 리로드’의 게임성과 매우 잘 어우러지죠. ‘페르소나’ 시리즈는 독특한 전투와 이를 보조하는 콘텐츠도 좋지만, 무엇보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핵심 매력 포인트니까요.
세월이 지나도 단단한
오리지널리티
리메이크 타이틀이라면 늘 마주하게 되는 허들이 있죠. 바로 ‘유행’입니다. 원작 출시 당시에는 획기적이고 개성 넘쳤던 시스템, 세련된 스토리 전개도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래는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트렌드에 맞는 내용으로 재해석하거나 각색을 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르소나 3 리로드’를 플레이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2006년에 출시된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겼음에도 촌스럽다거나, 개성이 희미해졌다는 느낌이 없었죠. 최신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스토리 기반의 JRPG에, 턴제 전투를 채택했음에도 그 자체로 매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전투는 ‘타르타로스’에 입장할 때마다 구조가 달라지는 던전 크롤러 요소를 도입해 일정 부분 해소했고요. 특정 주기마다 강력한 보스가 출현하기 때문에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 능력치 파라미터가 존재해,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기간에도 여러가지 활동을 전략적으로 병행해야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죠. 여기에 ‘페르소나’ 시리즈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간관계 관리 콘텐츠, ‘커뮤(커뮤니티)’까지 더해지면 숨 쉴 틈 없는 시간 삭제 라이프가 완성됩니다.
적절한 시간 안배도 매우 중요한데요. 타르타로스 정복과 레벨업에만 매진하다 보면 고등학교 생활을 놓치게 되고, 고등학교 생활에만 집중하면 육성이 부족해 메인 스토리 보스를 처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시간 배분이 중요한 지점은 ‘페르소나’ 시리즈 특유의 매력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보니, 온전히 주인공 캐릭터에 이입해 플레이하게 되죠.
앞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은 원작에도 존재하는 시스템입니다. ‘페르소나3 리로드’에 와서 달라진 건 그래픽 퀄리티와 기본적인 조작 편의성이고, 사실 콘텐츠는 원작 시점에서 완성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투와 일상 생활 콘텐츠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수집이나 육성의 재미까지 챙긴 것이 인상적이고, 그 재미가 2024년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부분도 놀랍죠.
무엇보다 이 모든 콘텐츠가 뻔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게임이 취미이고, 특히 캐릭터 기반의 수집형 RPG를 한번이라도 해본 분이라면 특별할 것 없는 요소들의 집합이겠지만, ‘페르소나3 리로드’는 이 콘텐츠 묶음을 아주 잘 엮어내 실제 존재하는 세계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플레이어가 진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일정 관리를 하게끔 유도하고, 현실의 삶과 ‘페르소나 구사자’로서의 책임을 같이 가져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고 느끼게 하죠.
정해진 스토리에 제한된 플레이만 가능하지만, 그래서 더 주인공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는 재미. 근래 출시되는 게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이죠. ‘페르소나3 리로드’는 그 가치를 고스란히 지키는 데 집중했고, 덕분에 원작의 개성과 독특한 재미를 그대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도 끄떡없는
세련된 어반 판타지 JRPG
흥미로운 메인 스토리를 중심에 두고, 이질감 없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콘텐츠로 가지를 쳐 게임 속 세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 요즘 나오는 캐릭터와 스토리 중심의 게임에도 반드시 필요한 기본기인데요. ‘페르소나 3 리로드’는 그걸 아주 잘 해낸 원작을 2024년 현재의 기술로 부활시킨 작품입니다. 현 세대에 맞는 요소를 새로이 추가하거나, 각색한 부분이 없음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죠.
기본기를 잘 지킨 클래식 JRPG가 그리웠던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어반 판타지 스토리를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화려한 그래픽과 편안한 UX로 즐길 수 있거든요. 또는, ‘페르소나 4’나 ‘페르소나 5’로 시리즈에 입문하신 늦덕(!)이라면 반드시 해볼 것을 권합니다. ‘페르소나 3’는 후속작과는 또 다른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