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민은 학교에서 연극을 준비하면서 만났다.
무대를 만들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중문과 수업은 뭘 듣는지, 중국에서 얼마나 살다 왔는지, 원어 연극은 재미있는지, 그런 이야기들. 그런데 민의 말을 듣던 중 그의 한국어 발음과 억양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별 생각없이 물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북쪽인데요.”
서울은 북쪽이 아닌가? 서울보다 북쪽이라는 말인가? 경기 북부? 파주나 의정부라고 하면 되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나. 짧은 생각 끝에 나는 민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화법이 특이한 애로구나. 그러니 시험공부도 하지 않고 무대제작을 하러 왔다고 단정지었다.
하루는 연극 연습이 끝난 뒤 연극팀 후배와 수다를 떨다가 우스개 삼아 이렇게 말했다.
“무대 만들 때 민한테 고향이 민한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거든?
근데 나보고 뭐라는줄 알아?
북쪽이래.
그게 무슨 말이야. 서울은 북쪽이 아닌가?”
내 말에 후배의 표정이 급변했다. 후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 민 오빠 고향 북쪽 맞아요. 오빠, 새터민이예요.”
뭐? 나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북쪽이 북한을 말하는 줄 정말 몰랐다. 당시 내게 북한이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닌, 허상의 공동체였다고 할까? 사실 이게 더 문제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재하는 현실임에도, 내가 인식하는 세상에서 ‘북쪽’은 지워진 존재였으니까.
내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은 학과에 빠르게 퍼졌다. 학교에서 학과 선배를 마주쳤을 때였다. 선배가 날 보더니 “남자친구 생겼다며?”라면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선배는 “근데 그 친구…”라고 말을 뱉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여자친구가 옆구리를 찔렀기 때문이다. 아니, 내 남자친구가 볼드모트도 아닌데 뭘 저렇게 조심스럽게 군단 말인가.
그때는 ‘뭐지?’하고 넘어갔지만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선배가 내뱉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첫 연애’를 한 것 보다 남자친구가 ‘북한 이주민’이었던 게 더 놀라웠던 거다.
그건 민의 주변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잘 지냈어? 여자친구 생겼다며? 까치 여자친구는 어때?”
민이 말하기를, ‘까치는 남한사람, 까마귀는 북한 사람’을 의미한다. 북한 이주민이 하는 말 중에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은 남한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생긴 말이라고 했다.
나와 민은 까치와 까마귀였다. 남들에게 (심지어는 북한 이주민에게도) 우리의 연애는 종(?)을 뛰어넘는 결합처럼 보였나 보다. 우리는 그저 연애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기억되는 걸 싫어하는 나지만, 북한 이주민의 가족으로 기억되는 것만큼은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좋겠다.
그럼 더 많은 이들이 북한 이주민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니까.
이 이야기는 에세이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를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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