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우울증 환자, 9%만이 적절한 치료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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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우울장애 치료 비율. 우리나라는 25.3~28.9% 구간에 해당한다 / 출처 : The Lancet Psychiatry
전 세계 우울장애 치료 비율. 우리나라는 25.3~28.9% 구간에 해당한다 / 출처 : The Lancet Psychiatry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낙인을 찍기 쉬운 기존의 사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에 대한 치료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치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울장애, 치료받는 비율 단 9%

호주 퀸즐랜드 대학 연구팀은 2021년을 기준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글로벌 접근성’을 평가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퀸즐랜드 대학을 중심으로 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세계보건기구(WHO) 소속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204개 국가 및 지역별 데이터를 수집·분석했다.

연구팀은 주요 우울장애에 대한 최소한의 치료 기준을 정신건강 분야 전문의 방문 4회 또는 전문 상담사 방문 8회와 최소 1개월 간의 약물 복용으로 정의했다. 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약 9% 정도만이 최소한의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연구팀은 자국인 호주에서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받은 인구의 치료 동향을 확인했다. 그 결과 진단 환자 중 70%가 필요한 최소한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조차도 상당히 높은 비율에 속한다.

퀸즐랜드 대학 공중보건대학원의 데미안 산토마우로 박사는 “호주의 경우 고소득 지역에서의 정신건강 치료율이 가장 높았지만, 수치상으로는 27%로 매우 낮았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30%를 넘는 치료율을 보인 국가는 204개 중 7개 국가에 불과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산토마우로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약 90개국에서는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례가 5% 미만이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이 2%로 가장 낮은 치료율을 보였다. 산토마우로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주요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중 단 9%만이 필요한 최소한의 치료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정신건강 문제, 방치하면 ‘중병’된다

모든 질환은 조기 발견과 진단이 중요하다. 심각하다고 알려진 중대 질환이라도 조기에 발견할 경우 훨씬 예후가 좋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정신건강 문제 역시 마찬가지지만, 의외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당사자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초기에 인식하고 치료를 받을 경우 효과가 좋고 회복 속도도 빠르다. 주변에서 우울증을 겪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만큼 빠르게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방치하게 되면 증상이 심해진다.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당사자 스스로 치료 과정을 불신하거나 저항하게 될 수 있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우울증이 악화될수록 당사자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실제와 다른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그마저도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연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정신건강 문제가 만성화되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흔한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느끼기 쉬워지므로 신체적인 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8월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국민 정신건강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건강 문제로 초기에 치료를 받는 사람은 약 30%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하는 ‘초기’는 WHO가 권고한 ‘정신건강 문제 인지 후 3개월 이내’를 말한다.

치료를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인식이 크다. ‘주위의 부정적 시선’, ‘치료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 우려’ 등이 대표적이다.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정신력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며, 스스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팽배해 있다는 증거다.

WHO, 2030년까지 정신건강 서비스 범위 50% 확대 목표

위 연구팀의 일원이자 현직 정신과 의사인 하비 화이트포드 교수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고통과 장애가 장기화, 만성화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관계부터 직장 문제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정신건강 문제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WHO에서는 ‘포괄적 정신건강 행동계획 2013-2030’이라는 타이틀로, 2030년까지 정신건강 서비스의 적용 범위를 최소 50%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산토마우로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가 WHO의 계획을 확고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근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연구는 2021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신뢰성은 결코 낮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연구에 제시된 도표에 따르면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남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서부 지역 등이 특히 낮은 치료율을 보였다. 

그는 “가장 낮은 치료율을 보이는 지역에 대한 정보와 인구사회학적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자원 할당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의학 저널 란셋의 정신건강 분야 연구를 다루는 「The Lancet Psychiatry」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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