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물든 행주산성, 역사와 풍경이 어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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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서울을 벗어나 좀 더 멀리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행주산성이 제격이다. 이 역사적인 장소는 한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다. 특히 가을에 단풍과 햇살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행주산성 탐방기를 소개한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관찰사였던 권율(1537~1599)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의병과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친 전투다. 진주대첩·한산도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인 1593년 2월 12일 권율 장군은 행주산성을 요새로 삼아 2300명 남짓한 병력을 지휘해 3만 명의 왜군을 물리쳤다. 당시 왜군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3진으로 9차례나 맹공격을 가했으나, 관군과 의병은 물론 부녀자들까지 가담한 조선군의 결사항전으로 1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이 공로로 권율 장군은 조선군 전 군을 지휘하는 도원수로 임명됐다.

행주산성의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 안에서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백제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주대첩은 당시 일할 때 치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위에 겹쳐 입는 짧은 치마로 돌을 나르면서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겨났다.

행주산성의 주 출입문인 ‘대첩문’ / 이범희 기자

탐방길은 행주산성공원에서 시작하는 둘레길 1구간 대신 대첩문에서 출발하는 2구간을 선택했다. 행주산성의 주 출입문인 대첩문은 3개의 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평소에는 오른쪽 문만 열려 있다. 행주대첩제나 행주문화제·해맞이 등의 축제를 개최할 때만 문 3개를 모두 개방한다. 정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충장공 권율 장군 동상과 4점의 부조물 / 이범희 기자

대첩문을 통과하면 바로 앞에 권율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1986년 건립된 이 동상은 좌대(座臺)의 높이까지 포함하면 8m가 넘는다. 동상 뒤 4폭 부조물은 행주대첩 당시 관군, 의병, 승군, 여성들의 치열한 항전모습을 담았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장사 / 고양시청 제공

350m가량 천천히 오른 뒤 우측으로 방향을 틀자 충장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명칭은 장군의 시호인 ‘충장공(忠將公)’에서 따왔다. 행주대첩 이후 250년 이상이 지난 뒤 헌종은 뒤늦게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비석과 사당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뒤 지난 1970년 정부가 행주산성 재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사당을 지었다.

행주대첩 기념관으로 행주대첩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로 추측되는 자리에 1980년 건립했다 / 이범희 기자

충장사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대첩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기념관은 행주산성 전투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로 추정되는 곳에 1980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이다.

행주대첩 민족 기록화 / 이범희 기자

이곳에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화차 등 각종 무기와 승전 당시의 모습을 그린 대첩기록화, 대첩비문 탁본, 권율 장군의 친필, 기타 산성에서 발견된 유물등이 전시돼 있다.

덕양정 / 이범희 기자

행주산성의 하이라이트는 기념관에서부터 정상까지 이르는 행로다. 기념관을 빠져나와 150m 남짓 오르면 산성 재정비사업 당시 세워진 덕양정이 나온다. 이 정자는 한창 길을 걸어온 등산객들에게 정말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선물하는 고마운 곳이다. 오르막을 올라와서 덕양정에 앉으면 모든 시름이 한 순간 사라질 것 같은 편안함을 만난다.

덕양정에서 찍은 방화대교의 야경 / 이범희 기자

덕양정은 이렇게 탁 트인 전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소다. 특히 밤이 됐을 때 덕양정에서 찍는 방화대교의 야경은 사진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포토존이기도 하다.

덕양정 오른편에 위치한 또 다른 정자인 진강정은 둘레길 2구간으로 통하는 길이다. 진강정 아래로는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공원으로 이어지는 행주산성누리길이 연결됐다.

행주대첩 초건비는 1602년 건립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됐다. / 이범희 기자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각은 덕양정의 바로 왼쪽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우선 대첩비각 안에 있는 비석(초건비)은 선조 35년(1602년) 권율 장군이 목숨을 거둔 뒤 행주 대첩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권율 장군을 모신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비석엔 승전 과정이 상세히 기록됐으나 마모가 심해 현재는 식별이 어렵다. 비석에 새겨진 글은 조선 최고의 문장가였던 최립이 짓고 제일의 명필이었던 한석봉이 썼다.

정상에 서있는 15.2m의 행주대첩비. 1970년 건립했다. / 이범희 기자

비각 바로 옆 정상에 우뚝 솟은 행주대첩비는 15.2m의 석탑으로 이 역시 1970년 재정비사업 때 건립됐다. 앞면에 새겨진 한자(幸州大捷碑)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다.

대첩비가 있는 정상에 오르면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고하게 뻗은 한강과 자유로를 따라 내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면 걸어오느라 고생한 것이 싹 날아가는 듯 상쾌한 기분이 든다.

‘행주가 예술이야’ 축제를 알리는 야간 조명 / 이범희 기자

행주산성 일원에서 펼쳐지는 야간 축제 ‘행주가 예술이야(夜)’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열렸다. ‘행주의 역사, 미래를 여는 빛’을 주제로 17일간 열린 이번 축제에선 행주산성 입구인 대첩문부터 정상 행주대첩비까지 행사장 23곳에 포토존이 운영되고, 조선과 일본 무기를 비교해 설명하는 ‘이야기길’ 이벤트 등도 진행됐다.

‘행주가 예술이야’ 축제장에 설치된 조선판MBTI 포토존 / 이범희 기자

이와 함께 문화유산으로서 행주산성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문화관광 해설사와 함께하는 ‘행주산성 달빛 여행’ 프로그램과 행주대첩비 목판인쇄, 조선의 신무기 만들기 등 다양한 관련 행사들도 선보였다.

이외에도 행주산성 주변에는 행주서원, 행주성당, 행주산성역사누리길,행주산성역사공원 등 다양한 명소가 있는 만큼 여유롭게 서울의 숨은 경관을 보고 가을밤 한강의 야경이 그리울 땐 행주산성 같은 곳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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