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일부 여성이 성공해 대기업 CEO 자리에라도 오르면 ‘유리천장’을 뚫고 성공 신화를 썼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그만큼 여성들의 성공이 희소하다는 뜻이다. 바꿔말하면 대다수 요직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상당수 국가에서 남성들은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이 대우받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남성 안에도 다양한 ‘약자’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흐름에서 방치되고 ‘잔여물’이 돼 이제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고’ 있는 ‘약한’ 남성들이 있다.
일본 작가 스기타 슌스케가 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또다른우주)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강화 흐름 속에서 그렇게 약자로 전락한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약한 남성은 독신·빈곤·장애 등 약자의 요소를 지닌 남성을 가리킨다. 일본에선 2010년대 후반 여성의 고된 삶에 주목하게 됐는데,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남성도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약한 남성’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비정규직 형태의 노동 수입, 호감을 얻기 어려운 외모, 소통 능력 부재, 애인 또는 예비 배우자가 없는 상태 등에 처한 남성으로 범주가 넓어졌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자본주의 강화 속에 남성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다. 차별받는 소수자로서의 연대도 하지 못한다. 각자 고립되어 고통받는 ‘약자 남성들’은 내면의 불행과 고뇌, 약함에서 비롯한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티’나 ‘인셀'(Involuntary Celibate·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어둠에 쉽게 빠져들곤 한다.
문제는 이들이 약자임에도 “여성과 성소수자들과는 달리” 국가와 사회의 제도적 지원과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글로벌 자본주의·자유주의 사회에서 이들이 방치되고, 잔여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성이 일정 수순 이상의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유리 천장’이라고 한다. 이 표현을 응용해서, 남성은 약자가 되면 유리 바닥이 깨져 지하실로 추락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것이 유리 지하실”이라며 “지금 우리는 ‘약한 남성’들이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빛을 비추는 말(사상)과 다양한 실천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명다인 옮김. 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