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말하는 유독 사이좋은 부부의 대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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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은 실제 부부갈등을 풀어가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부터 다투기 시작해 결혼 초기에 참 많이 싸웠다. 대화는 나름대로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겉돌 뿐 갈등이 제대로 풀린 적은 없었다. 

냉전 상태가 이어지는 데 지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해 아닌 화해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비슷한 문제로 또 싸우고, 또 어설프게 화해하며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관계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결혼을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커지고 불만이 쌓여갔다.

그런데 당시 유독 부부 사이가 좋은 친구가 있었다.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잘했다. 부러웠다. 친구가 인복이 많아 좋은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 부부의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친구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게 있었다.

친구가 운전을 하고 나는 보조석에 앉았다. 친구 아내는 뒷좌석에 탔다. 그런데 과속방지턱을 지나갈 때 친구가 브레이크를 약간 늦게 밟았다. 차가 한 번 덜컹거렸다. 뒷좌석에 앉은 친구 아내가 “아이쿠!” 하는 소리를 냈다. 크게 덜컹거리지는 않았기에 말소리도 아주 작았다. 나 역시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괜찮아?”

당시 나에게는 그 말이 낯설고 신선했다. 곧바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내가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는 중에 아내가 살짝 놀라는 소리를 냈다면 그때의 나는 전혀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아마 “왜 놀라?”라고 했을 것 같다. 사실 이 표현은 뉘앙스가 중요해서 글로 전하기에 한계가 있다. 

친구의 “괜찮아?”와 나의 “왜 놀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친구의 “괜찮아?”에는 상대를 향한 관심과 걱정이 담겨 있다. 나는 놀라지 않았더라도 상대는 놀랄 수 있음을 존중하는 표현이다. 그에 비해 내가 떠올린 “왜 놀라?”는 판단적이고 자기중심적 표현이다. 말은 의문형이지만 “뭘 그런 것 가지고 놀라?” “이게 뭐가 놀랄 일이야!”와 같이 상대의 감정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판단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놀라지 않는 일이라면 너도 놀라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 전제되어 있다.

친구는 아내의 살짝 놀란 반응에도 관심을 보였고 자연스럽게 다정한 어투로 물어보았다. 그날 나는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고, 모든 것의 기준이 나였다. 

물론 그런 자각이 일어났다고 해서 단번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나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나의 자기중심성을 인정하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나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만약 운전 중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제는 “괜찮아?”라고 물어볼 수 있다. 물론 머릿속에는 자동으로 “왜 놀라?”라는 말이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나는 놀라지 않았어도 상대는 놀랄 수 있음을 이해하고 나면 “괜찮아?”라고 물어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마음 헤아리기’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의 핵심은 ‘감정의 존중’에 있다. 내 감정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중요하지만, 너의 감정은 네가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왜 울어?” “왜 화를 내?” “뭐가 무서워?” “왜 안 해?” 이런 말들은 질문의 형태를 띠지만 궁금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왜 그런 일로 울고 난리야!” “이게 뭐가 화를 낼 일이야?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이게 도대체 뭐가 무섭다고 그래, 이 겁쟁이야!” “하라면 좀 해! 왜 하라고 했는데도 안 해?”와 같은 뜻의 이야기를 질문의 형태로 돌려 말했을 뿐이다. 

이런 말들은 관심이 배제되어 있고 모든 기준이 말하는 사람의 것이다. 관계의 성숙이란 이렇게 곳곳에 배어 있는 자기중심성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 그래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마음 헤아리기’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우리 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 문제가 반복된다면 ‘관계의 언어’를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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