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왈 “이런 집은 처음이네요“… 79년생 주택을 고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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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달라진 79년생 주택 보러가기

안녕하세요. 저는 예술로 은유하는 빈티지 공간 디렉터입니다. 공간 기획과 연출을 기반으로 상업 공간 컨셉 스타일링, 하우스 인테리어 스타일링, 이벤트 테마 스타일링 등 ‘공간’과 ‘예술’을 화두로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형화된 스타일보다는 자유롭고 의외의 시도가 엿보이는 공간, 미묘한 이국적인 뉘앙스와 예술적 감성으로 개개인의 취향과 브랜드의 철학이 큐레이션 된 공간을 연출합니다.

지금은 서울 아차산 자락, 1979년 작고 오래된 단독 주택을 리모델링해 살고 있어요. 1970~90년대 집들이 오밀조밀한 조금은 낙후되고 오래된 동네에, 집 곳곳에서 시대를 버틴 나름의 디테일을 찾아 볼 수 있는 작고 오래된 집, 이 곳을 조금은 더 살만한 곳으로 고치고 세월의 흔적이 담겨져 있는 독특하고 빈티지한 오래된 물건들로 공간을 채웠습니다.

일과 개인 생활의 경계가 희미한 저의 라이프 스타일을 투영해서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아우르는 혼성체적인 공간, [이그조띠끄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1. 인테리어를 하기까지

1979년식, 단독 주택 매입기

저는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려면 저만의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실은 분야에 구애 받지 않고 제가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의 단면을 모아 한 곳에 풀어 놓은 곳이어야 했죠.

그렇게 제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저의 가치관과 미학을 담은, 오롯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집이 갖추어야 할 조건

1)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

2) 서울 내에 있는 집. 문화 예술을 늘 가까이서 향유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서.

3) 주택 리모델링 전, 후가 드라마틱하게 바뀔 만한 형태의 집

4) 예산 안에 확보되는 주택

5) 주차 공간이 있을 것

바로 네 번째 항목 하나만으로도 주택가가 최고점을 찍었던 매입 당시 무지하게 까다로운 조건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떤 결단’을 내리고 나서 부터는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오래되고 낯선 변두리만 두리번 거렸습니다. 그렇게 아차산 자락, 이 오래된 집 앞에 섰습니다.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딱 이 집이야!’ 라는 인상은 절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진짜로 사람들이 들어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지는 광진구 아차산 긴고랑로 계곡 바로 아랫 동네에 대지 33평의 작고 오래된 단독 주택을 매입했습니다.

오래된 창틀, 기하학 패턴의 창문 단조, 나무 문양 천장,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장식 유리, 외벽의 붉은 석재 타일, 피아노 교습소를 닮은 다락방이 있는 박공 지붕. 언뜻 첫눈에 매력적으로 보여진 1970년대의 흔적들이 유의미하게 녹여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난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집을 리모델링하고 마음 다해 가꿨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겪었던 멘탈 붕괴의 상황을 극복하며 얻은 집 리모델링과 삶에 대한 통찰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의미한 자신감도 덤으로 얻었죠. 결국 이 오래된 집의 리모델링 과정은 애초 의도한 대로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는 극적 계기가 된 셈입니다.

2. 인테리어 과정

철거 공사 & 디자인 컨셉 잡기

철거를 하며 다락이 사라진 공간 곳곳엔 높은 박공 천장이 드러났습니다. 보존하고 싶었던 무늬목 천장도, 벽매립 책장도, 다락 바닥을 구성하고 있었던 나무마저 심하게 썩은 상태라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집의 구조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한정 짓기 마련인데, 이 뻥뻥 뚫린 공간을 바라보며 ‘집’이 가진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자유로운 형태의 집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묘한 해방감마저 느꼈습니다. 저 자리에는 다락 대신 복층을 만들어야지!

1층 천장고를 조금만 낮추면 허리를 구부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 수 있는 높이가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작은 키를 기준으로)

다소 엉성하게 쌓여져 있는 시멘트 벽돌들. 저 벽돌들은 가능하면 모두 살릴 계획입니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내부의 많은 면적들을 기존의 상태로 노출시키며 너무 매끈하지 않은 마감으로 ‘빈티지 Vintage’라는 키워드를 완성해 나갑니다.

박공 지붕은 철거 전엔 결코 상상해 낼 수 없었던 중요한 디자인의 변곡점이 되었어요. 기본적인 컨셉만 남기고 디자인을 덜어내고 수정하며 완성해 나갔습니다.

3. 인테리어 컨셉

공간 컨셉

1) 집 + 스튜디오 :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아우르는 나의 취향 공간

2) 폐쇄적인 집보다는 관계가 벌어지는 열린 작업실

3)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극적인 이미지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무조건 미(美)가 최우선의 가치가 되는 공간

공간 키워드, 팔레트

#빈티지 #이국적 #예술적

Earthy : 우아함과 여유로움을 대변하는 잔잔한 여운의 어스 컬러

Green & Blue : 블루를 머금은 그린과 그린을 머금은 블루

Bronze : 수공의 터치에 오랜 세월감이 더해진 듯한 메탈릭한 골드 브론즈

레퍼런스

오마주하는 햇빛, 태양 에너지 강렬한 지중해 특유의 형(形)과 색(色)에서 영감을 받은 빈티지하거나 어씨한 혹은 이국적인 뉘앙스

Vintage, Earthy, Exotic Nuance

4. 도면 Before

도면 After

집에 대한 컨셉을 잡고 수천장의 레퍼런스를 모으고 200페이지가 훌쩍 넘는 기획서를 만듭니다. 목공, 단열, 배관 설비, 금속, 샷시(새시), 전기, 방수 등 기본적인 시공을 해 줄 든든한 업체를 찾고 빈티지한 요소가 강한 공정은 제 협력 업체에 나눠 발주를 냈습니다. 그리고 세심한 요소들은 셀프로 진행했어요

뼈대만 남겨두고 내부는 모두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본적인 기능과 구조를 위한 하드웨어를 제외하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빈티지 VINTAGE’라는 공간 정체성의 구현을 위해 인테리어를 최소화하고 가구와 스타일링 오브제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5. 현관 Before

현관 After

이 공간에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 중 하나가 빈티지적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일입니다. 유약을 입힌 오늘날 형태의 타일은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르러 화려하게 채색한 타일을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서유럽으로 역수입되어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타일을 제조했어요. 그러니 이 인테리어 자재 또한 제가 지향하는 문화적 혼성체와 맞닿아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타일을 건축 자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데 다른 어떤 요소보다 예술적 오브제가 될 수 있는 미학적 가치를 지녔어요.

저희 집 리모델링에 사용된 타일은 총 11타입으로 대부분은 랜덤 구성이기에 실제는 30종류가 훌쩍 넘습니다. 모두 스페인과 이태리산 타일로 좀처럼 원하는 타일을 찾기가 어려워 몇 달을 틈나는 대로 논현동과 을지로를 돌며 수급했어요. 이 타일들 때문에 시공 시 업체로부터 엄청난 원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종류를 차치하고서 라도 모두 크기가 작은 타일들이었고, 또 랜덤 디자인이 많아 하나하나 중복된 문양을 피해야 했거든요. 특히 욕실 벽의 경우 수직이 안 맞아 타일 시공을 하며 맞춰 나가야 했습니다. 덕분에 큰 예산 상승과 한없이 늘어난 시공 기간이 있었지만, 타일은 이 집의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 중의 하나입니다.

6. 거실 Before

50여 년에 달하는 그 기나긴 세월 동안 힘주어 손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듯, 거실 곳곳 퇴색된 시대의 건축 디테일들이 마치 유물 같았습니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떠나고 오직 ‘집’만 남은 비어진 공간을 바라보며 예상보다 더한 노후도와 남루함에 솔직히 도망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죠.

언뜻 보면 매력 있어 보이는 거실의 나무 문양 천장도 자세히 보면 표면의 화학 성분 비닐이 쪼그라든 상태여서 그대로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외부로 노출된 전기 배선들도 너무 위험해 보였죠. 결국 모든 전기선을 제거하고 배선 작업을 전부 새로 했습니다.

거실 After

집 내부 최소화한 방문은 장식적인 오브제로써 존재합니다. ‘장식이 기능한다’ 이 말은 이 집 디자인의 모토가 됩니다. 어느 것 하나 개성 없이, 존재감 없이, 놓여지는 것이 없도록 세심함을 담았습니다.

레일등으로 기본 조도를 만들고 다양한 디자인의 펜던트 조명으로 은은한 온도를 덧댔습니다.

‘반야외 반실내’인 듯한 햇볕과 바람이 자유자재로 넘나 들도록 최대한 열어 놓은 이 작은 공간은 집 안팎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서정적인 시퀀스를 만들어 냅니다.

조만간 꽃이 피는 화분도 음식에 개성 있는 풍미를 더해줄 허브류 화분들도 키울 예정입니다. 마당이 없었던 집에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거실과 맞닿아 있는 이 공간이 나름의 쓸모와 평온한 미감을 더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빈티지한 공간을 꾸밀 때는 색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명도나 채도가 높은 비비드 컬러나 모노톤보다는 다소 톤다운된 깊은 색조를 선택합니다.

뭔가 햇살에 한 톤 바랜 듯한, 해가 흩고 지나간 해변가의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지중해’를 깊이 갈망하는데, 이런 색조톤들은 그 지중해의 강렬한 햇볕을 담은 빛 바랜 잉크 컬러가 뿜어내는 빈티지한 관능미와 고급스러움이 느껴져요.

그라스류는 그 어떤 꽃보다 풍성한 질감을 만들어 냅니다.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에 놓인 지난 가을 가져온 담황색 갈대는 거실에 또 하나의 색채감을 더하며 한결 자유분방한 매력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공간에서 가장 시각적인 중심을 잡아줄 인상적인 시그니처 오브제(그것이 가구든, 조명이든, 식물이든)를 선택하여 힘을 싣고 나머지는 조금 느슨하게 펼쳐내며 각각의 모양과 색의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강약의 리듬감을 즐기는 거죠. 어떤 공간이든 그 안에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저 좋은 풍경 하나쯤은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돔 드레서]

이 아치형 곡선의 돔 드레서 오크 장식장은 이태원 앤틱샵에서 무려 1년 반을 기다린 끝에 데려왔습니다. 코로나 창궐이 극심했을 때라 영국에서의 출항이 몇 달씩 자꾸만 늦어졌던 시기였죠.

돔 드레서의 상부장에는 예술 서적과 여행지에서 가져온 소품들을 진열하고 하부장에는 온갖 서류와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습니다. 가구 자체만으로도 인테리어 효과도 크지만 보기보다 수납 공간이 큼지막해서 실용성마저 흡족한 빈티지 가구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인도 나그참파 인센스와 팔로 산토, 화이트 세이지, 여바 산타 등의 스머지 스틱으로 순간 순간 마음을 끄는 향을 피웁니다. 마음과 정신이 혼탁해져 집중이 힘들 때면 공간에 향을 사르고 싱잉볼을 울리며 명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한 줄기 연기가 공간으로 깊숙이 스며 드는 것을 느낄 때면 향이 주는 위로와 여유로움에 비로소 ‘잠시 멈춤’이 가능해지기도 하죠. 시각적인 감각 뿐 아니라 공간에 어울리는 향기와 음악이 있다는 사실은 그 공간을 더욱 유일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앞에 놓여진 키치한 그림 2점은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구매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단 2시간 정도만 그림을 파는 여자분이셨는데 그 분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호하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닮았다는 기억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안 나오셔서 이걸 구매하려고 며칠 더 머무르기도 했어요.

이런 빈티지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그림 액자, 예술책이나 미술 엽서 등의 아트 오브제 그리고 드라이 플라워나 프리저브드 플라워 같은 자연의 소재들을 군데군데 함께 매치하면 뻔하지 않은 빈티지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식물이 주는 향기도 생명감도 없을 수 있지만 드라이 플라워는 시간이 흐를수록 컬러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기에 은근한 감미로움을 주는 매력적인 데코 아이템이에요.

[우아한 레그 라인의 프렌치 뷰로 Bureau]

[빈티지 코너장]

이 빈티지 장식장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때의 체스트를 리프로덕션한 빈티지 가구로 100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삼각형 형태의 코너장이어서 공간도 적게 차지하고 공간 모서리를 활용할 수 있어 효율적입니다.

특히 납으로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 전통 방식 유리를 보면 시간을 한참 거슬러 아주 먼 과거로 회귀한 것 같아 은밀함을 간직한 기분도 듭니다. 다른 장식장들과 마찬가지로 예술 서적과 여행지에서 가져온 빈티지 소품들도 채웠어요. 앞의 와인병 촛대는 촛농을 녹여 연출해보았습니다.

빈티지 인테리어하면 흔히들 가구나 소품만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것들과 더불어 조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특히 펜던트 조명은 공간에 높낮이를 주면서 동시에 빛으로써 입체감까지 전달해주는 흥미로운 인테리어 요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거실의 이 샹들리에 펜던트를 무척이나 애정합니다. 화려한 형태면서 크리스탈의 투명함 때문에 과해 보이지 않아 어떤 공간, 어떤 색채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며 우아한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온통 하얗게 칠해버린 벽면이 아쉬워 인테리어를 모두 마치고 거실 몇 군데에 포인트로 유럽 미장 셀프 시공을 했습니다. 옐로우 브라운과 앤틱 화이트 컬러로 러프한 질감과 교차되고 겹쳐지는 자연스럽고 다사로운 색감을 만들었습니다.

이 집의 빈티지 가구들은 오랜 시간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발품 팔며 모아온 것들입니다. 독특하고 심미적인 디자인을 지닌, 튼튼하고 또 (가장 중요한) 많이 비싸지 않은 활용도 높은 가구를 주로 고르는 편이에요. 그리고 대부분의 소품과 오브제는 여행지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워낙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 여행을 가기 전에는 그 나라의 역사부터 공부를 하는데 벼룩시장에 가면 그 역사와 맞닿아 있는 것들이 보이곤 합니다. 실제로 그 물건의 역사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걸 보며 상상을 하죠.

어쩌면 퇴색하고 낡은 물건이 주는 쓸쓸함과 고루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오래된 것들 중에서 뭔가를 얻는 순간, 그 물건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되고 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빈티지의 매력은 이미 비밀스런 사연이 있는 물건에 내 비밀까지 덧대며 ‘유일함’이 되어 가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빈티지에 대한 저의 애정은 벼룩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머무는 여행지마다 의식처럼 들르던 벼룩시장의 수북하게 쌓여진 빛 바랜 사물들 속에서 득템하듯 달뜨게 건져낸 것들이 이 집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작업은 룸2에서 하기 때문에 거실에서는 주로 사람들을 초대해 차나 와인 한 잔 하는 곳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볕과 바람이 좋은 날에는 폴딩 도어를 활짝 열기도 하죠.

거칠고 오래된 느낌이면서도 또… 따뜻한 질감을 내는 거실 타일이에요.

7. 룸1 Before

이 집이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왼쪽 벽장 문을 열면 가파른 나무 계단이 나오는데 기듯이 엉거주춤 올라가면 꽤나 기이하지만 어쩌면 비밀스러운 장소가 될법한 다락이 존재했습니다.

수직이 맞지 않는 옛날 집의 특징 때문에 내부 단열을 하면서 공간이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룸1 After

룸 1은 책을 위한 공간입니다.

복층 계단의 단조 장식은 빈티지 샵에서 찾은 인도네시아 앤틱 단조에 동부식 처리를 해서 자연스럽게 녹이 슨듯한 부식 질감을 표현했습니다.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차례 유럽의 미술관을 돌며 수집한 포스터와 서적, 미술 엽서 그리고 그 여행길에 함께 했던 책들로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모던하고 실용적인 책꽂이와 유니크한 빈티지 가구 그리고 여행지의 벼룩 시장에서 모아온 소품들입니다.

유럽과 동남아를 여행하며 벼룩시장에서 모아 온 제 추억의 산물이자 세월을 간직한 이국적인 소품과 오브제를 공간 곳곳에 두었습니다.

햇살, 바람, 사람의 손끝을 거쳐 시간을 표류한 물건들이죠. 오브제마다 담긴 지난 여행의 추억이 달라서 그저 보고만 있어도 제 삶의 밀도가 풍성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것들은 제 삶의 일부가 됩니다.

예술, 여행, 인문, 역사, 문학 분야의 서적들로 채우고 이 곳에서는 주로 바이닐로 아날로그 음색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어요.

조금 더 느슨하고 편안한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좌식 소파를 함께 두었습니다.

꼭 구현하고 싶었던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가 ‘눈 돌리는 곳마다 시선 끝에 책이 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8. 복층 Before

안방 벽장 문을 열면 다락이 있었습니다. 계단을 등반하듯 가파르게 올라간 전구조차 고장 난 공간은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높이였죠. 하지만 거기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우와~! 하고 탄성을 지을 만한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납니다.

창문도 있죠. 명상이니 다도니 향도니 하는 은은하고 고요한 무드의 행위들의 마구 떠올랐습니다. 차 한잔 단정하게 따라내고 고요한 사찰에서 흐르는 듯한 선향 마저 깃들고 나면 이 버려진 듯한 다락방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될 거라 재미있어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낡았기에 철거할 수 밖에 없었죠.

복층 After

계단 입구와 복층 바닥에 사용한 이 스페인 타일은 집에 사용한 모든 타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품입니다. 총 16가지 아라베스크 문양의 패턴을 가진 빈티지 타일로 너무 복잡해 보이지 않도록 차분한 스트라이프 라인의 타일을 섞어서 시공했습니다.

더 많은 곳에 쓰고 싶었지만 수입이 단종된 타일이라 전 물량을 수급했음에도 작은 면적에 포인트 시공을 할 수 밖에 없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복층과 기존 다락 부분의 천장 높이를 위해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그저 물건을 보관하거나 잠깐 머무는 장소가 아닌 실생활에 유용한 공간이 되려면 어느 정도 높이가 확보되어야 했죠. 집의 다른 공간과는 달리 천장 마감 높이를 최소화하고 천연 미장 시공했습니다.

철거 과정에서 사라진 다락 면적의 일부에는 복층 구조를 만들고 남겨진 기존 다락에는 침대 매트리스를 두었습니다.

넓지 않은 집이기에 구석구석 버려지는 부분이 없도록 살뜰히 공간을 활용했어요.

거실, 방, 복층, 다락방… 이렇게 전통적인 구조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이 모든 장소들이 유기적으로 (또한 형태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실과 복층 다락은 투명하게 반쯤 열린 유리창으로, 방(Room no. 1)과 복층은 계단으로, 그리고 위에서 보면 오픈된 구조의 복층으로 방(Room no.1)과 거실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복층 계단 끝과 연결된 (철거 후 남겨진) 기존의 다락은 작은 방(Room no.2)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어찌보면 이 조각조각의 여러 공간들이 하나의 공간인 셈입니다. 그렇게 컨셉은 존재하되 표현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규정 짓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길 바랬습니다.

9. 주방 Before

좁은 주방과 작은 방이 나란히 공간을 분할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방에 대한 로망은 참 없는 편이지만 생활하기에는 물리적으로 꽤나 불편할 것이 분명했기에, 이 집의 어떤 공간보다 난감했던 곳은 이곳이었습니다. 다행이 벽돌로 성글게 쌓아 놓은 가벽이어서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 제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방 After

이 집 리모델링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곳이 주방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너무도 뚜렷한 컨셉과 구현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방은 여러 갈등 요소들이 있었어요. 화두는 [내게 맞는 주방 vs. 모두가 선호할 주방]이었고 이 공간만은 기왕이면 미적 요소보다도 스마트하기를 바랬습니다.

높은 천장고를 가진 거실이나 룸에 비해 주방은 그렇지가 못했기에 제한 요소 또한 많았어요. 게다가 저는 상대적으로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적기 때문에 단촐한 주방이고 싶었지만, 추후 또 다른 누군가가 생활하게 된다면 식기세척기, 양문형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같은 가전들이 모두 설치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런 주방기기들을 추후 모두 들여놓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현재는 제게 딱! 적당한 컨디션의 주방으로 타협했습니다. 정말로 좋은 인테리어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나’, 그 주체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다른 장소들이 디자인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주방은 가장 심플한 싱크대를 설치하고 후드와 펜던트 조명으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수전과 타일 재료 분리대도 ‘골드 브론즈’라는 공간의 포인트 컬러에 맞추어 톤 앤 매너를 유지했어요. 주방 후드와 냉장고도 단순한 기능 이상의 빈티지한 장식성이 돋보일 수 있는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싱크대의 색감이 매트 화이트이기에 후드와 냉장고, 커피 머신 등은 아이보리 컬러로 변주를 주었어요.

이런 작지만 강렬한 변주는 주방 타일에도 적용했습니다. 싱크대와 같은 매트한 화이트 컬러를 선택하되 양감이 있는 2종류의 벽 타일을 선택함으로써 단조로움을 없애고 세심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주방에는 밥솥, 전자레인지, 오븐, 전기 포트 등의 소형 가전 수납을 위해 아일랜드 식탁을 두고 [올림피아 자그놀리 Life is Color] 전시에서 구입한 테이블 매트를 두었습니다.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유쾌한 일러스트 캐릭터로 인해 저의 식탁도 한층 더 즐거워진 기분입니다.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행과 예술 전시 등에서 마음을 끄는 소품들을 구매하곤 합니다.

요즘 이 테이블 위에서 다채로운 허브 & 과일차를 함께 우려 마시고 있어요. 시각적 화려함과 더불어 마음의 풍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습니다.

10. 욕실 Before

길고 좁은, 아니 긴데 좁은 욕실 아니 길기만한 욕실. 욕실에는 반드시 욕조가 있어야 한다는 제 나름의 욕실 철학(?)이 확고한 편이기에 문을 연 순간 약간의 시각적 충격 아래 이리저리 마구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음…. 뭐라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욕실의 모습은 살짝 으스스~ 으스스한 무드마저 자아냅니다.

욕실 After

총 4가지 종류의 타일로 욕실을 구성했습니다.

조적 벽돌로 작은 욕조를 만들고 보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기존 거실이 아닌 주방 방향으로 문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보다 많은 수납을 위해 하부장과 탑볼 세면대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시공을 하다 보니 공간이 여유치가 않았어요. 그래서 클래식한 뉘앙스의 긴다리 세면대를 선택하고 레트로한 느낌을 위해 황동 수전과 같은 라인의 액세서리로 빈티지한 욕실을 연출했습니다.

11. 외관 Before

1979년 식…, 누군가의 삶보다도 오래된 집, 노스탤직한 아릿한 향수 같은 것을 느꼈다면 거짓말입니다. 철거를 하고 공사가 진행될수록 손봐야 할 항목만 자꾸 늘어나 심란하고 힘들었어요. 1979년이란 숫자는 만만찮은 과거였습니다.

외관 After

집의 외관은 큰 변화 없이 페인트칠만 새로 했기에 세월의 형상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겁니다.  그 모습이 이 좁고 오래된 골목의 풍경과 서걱이지 않고 잘 어울리기를 바랬습니다.

커다랗게 세로로 금이 간 담장과 건물 외벽의 크랙을 손 보고 지붕 리모델링과 방수를 했습니다. 기존 집이 가지고 있던 1970년대의 전형적인 한국 주택 형태를 최대한 살리고 거기에 빈티지적인 강렬한 색감을 결합시켜 다소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합니다.

마당의 붉은색 블록과 초록문을 이어주는 스페인산 모스크풍 타일… 타일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 찾은 마음에 드는 타일은 재고가 없기 일쑤였죠.

이 집 리모델링에 쓰인 대부분의 타일들은 유통되는 마지막 물량들을 수급해서 시공했습니다. 마감재는 공간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이 집의 시작에서부터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작은 마당에는 큐블럭으로 낮은 담장을 쌓고 딥그린의 양문형 메인 도어,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열린 형태의 단열 폴딩 도어를 설치했습니다.

딥그린 메인 도어는 이 집의 아이덴티티 같은 요소입니다. 외부의 골목과 집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기 위해,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위해 임팩트 있는 문을 달았습니다. 아차산 자락을 향해 길고 좁다랗게 흐르는 이 골목길과 마주한 저의 집이 이질감 없이, 그렇지만 색다르게 녹아들길 바랬어요.

마치며

지극히 사적인, 저만의 철학과 취향을 담아낸 공간입니다. “작업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공사 기간 동안 이 말을 많은 업체에게 들었을 만큼 이슈가 많았던 공사 현장이었죠. 작더라도 꿈에 그리던 단독 주택이 생겼다는 행복감과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 그 이중적인 마음이 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됨의 시간도 결국 흘러가더군요. 아쉽게도 몇 년은 훌쩍 나이 먹어 버린 심경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오롯한 나만의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는 정서적 풍족함에 고생한 보람을 느껴가고 있어요.

유행하는 인테리어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저의 라이프스타일과 욕구를 가장 편안하게 담아낸 집의 구조 속에서 아끼는 사물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미美’에 온전한 가치가 맞춰진 저희 집이 생활하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유미주의자인 저에게는 ‘여기엔 이게 가장 잘 어울리니까’, ‘이렇게 놓는 게 더 예쁘니까’….. 이 대답이 모든 이미지를 견인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저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점을 고스란히 담았기에 저에게는 분명 ‘좋은 집’이 된 셈입니다.

같은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듯 이 집을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공유하며 균형잡힌 즐거움을 찾고 싶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정서적 안식처가 될 만한 그런 곳이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이 집에 어울리는 향을 사르고 음악을 틀고, 조용히 차든 와인 한잔이든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삶을 기대합니다.

*이 집의 리모델링 과정은 카카오 브런치 스토리에, 이 집에서의 삶의 단면들은 인스타그램에 기록하고 있어요.

*이 집의 가구는 오랜 시간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모아온 것들입니다. 소품과 오브제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가져온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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