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1등을 한 적은 없다. 외모 덕을 본 것은 맞지만, 그 말만 듣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채우려고 노력했다. 저도 저보다 예쁜 사람에게 치여도 보고 밀려도 봤다. 살을 주체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웃음).”
[인터뷰] 고현정 “‘마스크걸’로 첫 장르물, 내 쓰임 다양해지길”
“이 대본을 받고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저의 쓰임이 다양했으면 하거든요. 퍼즐의 한 조각처럼 참여한 작품이었는데, 도움을 받고 같이 협력해 해냈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어요.”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극본·연출 김용훈)을 통해 첫 장르물에 도전한 고현정은 살인죄로 10년 넘게 수감돼 ‘죄수번호 1047’로 불리는 데 익숙한 중년의 김모미 역을 맡았다.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현정과 이한별, 나나가 3인 1역으로 김모미를 연기했다.
고현정은 “장르물이 저한테 들어온 것, 한 사람을 3명이 연기한다는 것이 반가워서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돌 사진만 봐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 사람의 10대, 20대, 40대 사진을 놓고 보면 다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어요. 특히 김모미는 외모가 문제라고 생각해 마스크도 쓰고,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3인 1역은 큰 고민이 되지 않았어요.”
정돈되지 않은 짧은 커트 스타일에 흙빛에 가까운 피부 등 초췌하고 푸석푸석한 외형의 김모미를 이질감 없이 소화한 고현정은 “10년 동안 교도소에 있던 사람.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 집중했다”고 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직장인 시절의 김모미는 신예 이한별이, 살인 후 성형수술을 한 김모미는 나나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된 김모미는 고현정이 각각 맡아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펼쳐냈다.
고현정은 “김모미는 악인인가”라는 질문에 “아닌 거 같다”고 답했다.
“안타까운 친구예요. 어렸을 때 모미는 재능으로 박수를 받다가 나중에는 받지 못해요. 다른 것들로 채워져야 했는데 그런 것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죠. 무대 위에서 찬사 받는 삶에만 매몰돼 있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문제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 가지고 있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고현정이 김모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미스코리아 선(善) 출신인 고현정은 “외모로 1등을 한 적은 없다”면서도 “외모 덕을 본 것은 맞지만, 그 말만 듣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채우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저도 저보다 예쁜 사람에게 치여도 보고 밀려도 봤어요. 살을 주체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고요. (웃음). 당연히 모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죠.”
생기를 잃은 눈빛은 자신의 딸 김미모(신예서)에게 접근한 김경자(염혜란)를 만난 뒤 변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김모미는 김미모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그저 살짝 미소만 지을 뿐이다.
고현정은 그것이 “모미가 표현할 수 있는 모성의 전부이지 않았을까”라면서 김모미에 대해 “자신의 딸을 보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과 함께 김모미를 연기한 이한별과 나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한별은 내공 있는 배우가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나는 신파적인 부분이 없이 세련돼서 반했다”고 했다. 염혜란과 안재홍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잘했다”며 엄지를 들었다.
특히 안재홍에 대해서는 “놀라웠다”고 부연했다.
“보면서 ‘왜 이러지?’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싶었어요. (웃음) ‘아이시테루!’ 할 때는 진짜 넘어갔어요. 한참을 웃다가 저도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장면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데뷔 34년차에 접어든 고현정은 배우로서 ‘쓰임’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저에게 기대한 분도, 실망한 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은 현역 뒤편으로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엔 장르물을 했는데, 밝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많은 작품을 하고, 많이 쓰이길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