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00만원에도..” 봉준호 감독, ‘세계적 거장’으로 만들어준 조력자들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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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00만원에도..” 봉준호 감독, ‘세계적 거장’으로 만들어준 조력자들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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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거장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의 영광을 차지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켜준 조력자 여성들의 정체가 밝혀져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세계적 거장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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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생으로 올해 나이 55세인 봉준호 감독은 최고, 최다, 최초의 기록을 모두 보유한 자타공인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며, 예술성과 오락성 그리고 대중성과 독창성을 전 세계에서 모두 인정받은 세계적인 거장입니다.

더불어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고 혁신적인 시네아스트(Cineaste)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구자이자, 비평과 흥행을 모두 섭렵한 천재 감독입니다.

봉준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부터 단편으로 주목받았으며,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으며 이후 마침내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한국영화계에 충격을 선사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흥행까지 성공하며 한국영화의 미래로 지목받으며 충무로 르네상스의 최고 전성기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내놓은 괴물이 천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적으로 당대 모든 기록을 깨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대중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는 스타감독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락과 사회드라마 양쪽 모두의 측면에서 비평적 성취까지 이루어내며 전무후무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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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009년 마더는 평단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찬사를 받으면서 미학적 연구대상의 영화 예술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는데, 이를 증명하듯 그해 각종 비평가협회상을 휩쓸고 비평과 흥행 모든 면에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감독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 후에는 할리우드 제작진&배우들과의 교류로 한국영화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2013년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 제작비(437억)를 투입해 만들어진 설국열차로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던 영화산업을 글로벌하게 확장시키는 데 공헌했습니다. 201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16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Officier)를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19년에 봉준호는 기생충으로 그야말로 신화를 썼습니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국내 개봉 후에는 천만 관객까지 돌파하면서 몇 안 되는 쌍천만 감독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대통령의 축전을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에서도 그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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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기생충이 개봉한 해 열린 국내외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상이란 상은 모두 쓸어담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대장정의 마무리로 이듬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그리고 최고 영예인 감독상과 작품상 4관왕을 달성하여 세계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순간을 맞이하고, 이어 기네스북 등재, TIME(타임지)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CNN이 뽑은 올해의 사진 중 하나로까지 선정 되며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낸 봉준호 감독은 2021년 또 하나의 명예를 갖게 됩니다. 

바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것인데, 이를 통해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심사위원장 타이틀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420만원 벌었는데도 긍정적 답해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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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 봉준호 감독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도움을 준 조력자들의 정체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먼저 가장 큰 힘을 준 건 누가 뭐래도 가족이었습니다. 봉준호의 아내는 대학시절 학교 영화동아리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뒤 결혼까지 골인한 시나리오 작가 1966년생으로 올해 나이 58세인 정선영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미국의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동아리에서 영화광인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나의 첫 번째 독자였다. 대본을 완성하고 그녀에게 보여줄 때마다 너무 두려웠다”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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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독자였던 정선영 작가는 봉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인 ‘지리멸렬’에 편집 스태프로 참여하며 실질적으로 봉 감독을 돕기도 했습니다.

정선영 작가는 1995년 결혼한 직후 조감독으로 활동하는 1년 10개월 동안 총 420만 원을 벌어온 남편 봉준호를 여전히 응원하며 용기를 북돋아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봉준호 부부는 친구들에게 쌀을 얻어먹어야 할 정도로 생활고가 심해지자 봉준호가 아내에게 1년 치 생활비가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1년만 시간을 달라고 전했고 이에 아내 정선영 작가는 “못 먹어도 고!”라며 흔쾌히 남편을 지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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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봉준호는 아내 정선영의 지지와 응원으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해당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봉준호 감독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내 정선영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더불어 아카데미 무대 위 봉 감독의 모습도 볼 수 없었을 텐데 봉준호 역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후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라며 고마움을 전하기도해 뭉클함을 주었습니다.

‘기생충’ 제작 맡았던 곽신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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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이 아내라면 영화 ‘기생충’에 기여한 바로는 아내 못지않은 지분을 자랑하는 여성이 있는데 바로 ‘기생충’의 제작을 맡은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입니다.

곽신애 대표는 과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 감독과 함께 나란히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려 작품상 수상자가 되었는데요. 아카데미 시상식이 생긴 이래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최초입니다.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세계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곽신애 대표는 사실 영화와 인연이 남다른 사업가입니다. 곽신애 대표의 친오빠는 영화 ‘친구’, ‘극비수사’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곽경택이고 남편은 영화 ‘해피엔드’, ‘은교’, ‘유열의 음악앨범’을 만든 정지우 감독인데 곽 대표 역시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로 영화계에 입문해 2년 여간 활동한 바 있습니다.

다만 키노의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취재원으로 만난 정지우 감독과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영화기자로서 순수성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는 곽신애 대표는 결혼과 동시에 키노를 그만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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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영화 홍보대행사 ‘바른생활’과 제작사 ‘청년필름’, ‘신씨네’ 등을 거쳐 2010년 바른손이앤에이로 입사했고 입사 3년 만인 지난 2013년 바른손이앤에이의 대표직을 맡게되었습니다.

사실 곽 대표는 이전까지 직접 키를 쥐고 제작한 영화가 단 한 편뿐인 초짜 제작자인데다 봉 감독과의 협업은 처음인 상황에서 ‘기생충’의 제작을 맡았습니다.

이전부터 봉 감독의 팬이었다는 곽 대표는 ‘기생충’ 제작을 논의하면서 봉 감독에게 “작품에 폐가 될까 봐 너무 두렵지만 설레기도 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고 이에 봉 감독은 “뭘 또 두렵기까지 씩이나”라는 답변으로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실제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곽 대표는 “나는 서포터였다. 봉 감독님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최대한 속속들이 알고 있었는데, 봉 감독이 하고자 하는 것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봉준호의 언어아바타였던 통역 ‘샤론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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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시상식 무대를 휩쓰는 동안 봉준호 감독 곁을 지킨 또 한 명의 여성은 한국계 미국교포 샤론 최입니다. 샤론 최는 지난 2019년 5월 칸 영화제부터 봉 감독의 통역을 담당해 왔습니다.

봉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말투를 센스 있게 통역해서 전달한 덕분에 미국 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샤론 최를 별도의 기사로 조명했는데 보도를 통해 “무대 위에서 그녀의 차분한 존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언론보다 먼저 그녀를 주목한 것은 전 세계 네티즌들입니다. 현재 SNS에는 샤론 최의 기억력과 어휘력을 칭찬하는 게시물이 넘쳐나는데 유튜브에서도 샤론 최의 통역 장면을 담은 영상은 조회수가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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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2019년 12월 투나잇쇼에 출연했을 당시 영화내용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봉 감독이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재미있다”라고 한 것을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라고 통역한 것은 레전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봉 감독이 “살아서 날뛰는 물고기처럼 만들어주고 싶은데”라고 한 말을 “I want them feel like they’re fish fresh out of water free to flap around whenever they want”라고 통역해 감탄을 자아냈지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완벽한 통역 실력으로 세계적인 팬덤을 보유하게 된 사론최가 전문 통역사가 아니라는 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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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샤론최에 대해 “지금 몇 개의 장편 각본을 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내용이 정말 궁금하다”라며 영화계 후배로서 그녀를 응원했습니다. 

미국 현지 언론들 역시 샤론최에 대한 관심이 통역을 넘어 그녀의 영화에까지 연결되고 있는데 “샤론최는 오스카 시즌의 MVP”라며 “다음에는 그녀가 자신의 영화로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하길 바란다”라며 응원했습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와 연봉 200가져와도 괜찮다고 했던 아내 너무 멋지다..”, “저 분들 덕분에 지금의 봉준호가 탄생한거네”, “기생충은 심오한 뜻이 있는듯..”, “샤론최 번역 완전 센스있게 잘하더라”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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