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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실낙원’ 김현주, 비우고 또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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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현주가 영화 ‘실낙원’으로 돌아왔다. / CJ ENM
배우 김현주가 영화 ‘실낙원’으로 돌아왔다.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김현주는 안주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우며 배우로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영화 ‘실낙원’(감독 연상호)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았다.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지난 2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 중 김현주는 아들을 잃은 뒤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 속 어린 선우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류소영을 연기했다. 9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마주한 뒤 기억 속 아이와 눈앞의 낯선 아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김현주는 상실과 집착, 혼란과 두려움이 뒤엉킨 소영의 복잡한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현주는 ‘실낙원’을 택한 이유부터 류소영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한 과정,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온 지금의 마음도 솔직하게 들려줬다.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크린은 오랜만이다. 관객과 만나는 소감은.

“내가 한 작품을 많은 분께 선보이는 일은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영화라서 특별히 더 그렇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확실히 긴장감은 높은 것 같다. 기대감도 같이 커지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연기를 보는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모니터링도 잘 안 하고 현장에서도 잘 안 본다. ‘한 만큼 나오겠지’ 하는데, 자신감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연기하는 걸 큰 스크린으로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처음 토론토에서 영화를 봤을 때는 제대로 못 봤다. 한국에 와서 부산에서 제대로 처음 봤다.”

-완성된 결과물은 어떻게 봤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운 것에 대해서는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내 영화를 보고 내가 감동해서 운 건 아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있으니까 그 감정이 생각나서 울게 된 거다. 스태프들도 농담처럼 ‘본인이 한 거 보고 자꾸 운다’고 하는데 그런 눈물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몇 개월 만에 그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르더라. 두 번째 봤을 때는 영화 전체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쉬운 점도 하나씩 보이게 됐고. 세 번째는 오히려 보기가 더 어려웠다. 이제는 류소영이었던 나를 놓고 조금은 관객의 시선에서 보게 된 것도 있어서 더 힘들기도 했다. (배)현성이 같은 경우에는 토론토에서 처음 볼 때 고개를 숙이고 있길래 자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영화를 보고 있더라. 나는 겉으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같았다.”

소영을 연기한 김현주 스틸. / CJ ENM
소영을 연기한 김현주 스틸. / CJ ENM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된 작품이다. 콤팩트한 제작 방식은 어땠나.

“오히려 짧았기 때문에 밀도 있는 집중력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류소영이라는 캐릭터의 감정이 입체적이라고 말해주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입체적이라기보다 조금 날 것 같은 느낌이 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런 걸 생각하고 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이 보여서 이 영화와 잘 맞지 않았나 싶다. 그건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감정이나 형태였던 것 같고, 그래서 이 영화와 잘 맞았다. 나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준비한 대로, 계획대로 착착 진행해야 하는 현장이었다. 팀별로 인원이 많다 보면 의도치 않게 놓치고 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게 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야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런 현장에서 일어나는 시너지도 컸던 것 같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몫을 내려놓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도전을 택한 이유는.

“그냥 새로운 장이지 않나. 새로운 캐릭터고. 그걸 보고 하는 거다. 배우들은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 새로운 도전을 하나씩 해보면서 부족한 게 있으면 다음번에 또 채워 나가고, 그러면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새로운 거 하는 게 재미있다.”

-9년 만에 돌아온 선우를 마주한 소영의 반응이 예상보다 낯설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감정을 어떻게 이해했나.

“반대로 물어보고 싶은 게, 9년 만에 만났는데 내 아들이라는 확신이 바로 설 수 있을까? 이미 9년 동안 어린아이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잖나.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 돌아올 아들에 대한 상상도 해본 적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소영의 반응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소영은 사실 이미 죽은 삶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삶이 아닌 가짜의 삶을 사는 거다. 어쩌면 AI 아들과 만나고 있는 게 아니라 류소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거의 중독 수준으로 아이에게 집착하고 있었고, 그게 안전하고 평범하고 완벽한 삶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도 있었던 거다.

선우의 아빠, 그러니까 남편도 부재하고 이미 결손된 가정이다. 나름대로 설정해 둔 건 있지만 관객마다 다르게 생각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쨌든 사회가 정해놓은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는 아니잖나. 그래서 아들에게 더 집착했던 것도 다. 깨진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AI 아들을 만나면서 다시 완벽한 가정, 완벽한 나를 만들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9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아들이라고 하는 낯선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오히려 섬뜩하지 않을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 거니까 섬뜩하거나 기묘한 감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현주가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CJ ENM
김현주가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CJ ENM

-시간이 흐른 뒤 소영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AI 아들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런 결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게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눈빛이었다. 정말 이 아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알람이 울리는 순간 밝게 일어나서 아이를 보러 갔겠지. 그런데 소영은 공허하게, 힘없이 눈을 뜬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사실 텅 빈 삶을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9년 동안 그런 삶을 지속한다는 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방금 집에서 만나고 헤어졌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도 휴대전화를 켜서 아들을 지켜보잖나. 그만큼 비정상적인 중독성을 갖게 된 거다. 진짜 아들이 나타났는데도 AI 아들을 포기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는 만질 수 있는 아들을 챙겨야 하는데 거기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잖나. 그 감정에 설득력을 갖게 하려면 AI 아들에게 더 집착해 있는 소영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성은 경험해 보지 않은 감정이다.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다. 연기라는 것이 꼭 경험을 해야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성은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감히. 특히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 같은 건 표현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역할은 오히려 내가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실제 엄마였다면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갖는 상실감에서 시작해 봤다. 어쨌든 9년이라는 시간이 멈춰 있는 상태이지 않나. 함께한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다. 역사가 없는 거다. 연상호 감독님이 ‘연속성’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래, 연속성이지’ 싶었다. 시간을 함께하고 역사를 함께하고, 얼굴을 보며 지낸 시간들이 쌓이면서 ‘아, 내 자식이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 9년의 시간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도 갑자기 모성애가 발동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만난 선우에 대한 소영의 반응도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다. 상실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생각해 봤다.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느끼는 상실감인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나 그때의 나에 대한 상실과 그리움인지. 모성애도 그렇지만 ‘상실’이라는 감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봤다.”

-소영의 마지막 선택은 어떻게 다가왔나.

“감독님이 어떤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작품에 대한 의도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물을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결말을 피해서 이야기하자면, 처음에는 소영의 혼란이 꽤 길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나 장치들이 몇 개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현시점의 이야기를 하는데 소영은 계속 AI 아들의 입장에서 듣는다. 그걸 절대 놓지 못하는 거다. 그러다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수련과 살아 있는 진짜 아들의 모자 관계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또 내가 생각한 터닝포인트는 회사에서 물에 꽂혀 있는 조화를 봤을 때였다. 그게 소영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비로소 그걸 알게 되는 지점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복잡한 감정 변화를 밀도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가 많다.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나.

“일단 인물을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은 거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나는 전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대본 이전의 상황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편이다.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면 그 뒤에 대본에 나오는 감정들은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상황에서 시작해도 전사가 다르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으니까. 감정이입이 잘되는 편이기도 하다. 누가 울면 따라 울고 그런 장점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감정을 연기하고 표현하는 것, 그 사람이 돼서 느껴보는 것, 또 같은 감정도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대본을 처음 읽을 때의 감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처음 대본을 볼 때 장소나 음악 같은 것들도 신경 쓰고, 의상을 갈아입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서 읽기도 한다. 처음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기억해 뒀다가 하나씩 꺼내 쓰는 느낌이랄까.”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현주. / CJ ENM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현주. / CJ ENM

-연상호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이번 작업은 어땠나.

“감독님과 처음 이야기할 때 그냥 카톡으로 시나리오를 보내셨다. 당시 내가 운동하고 있었는데 ‘이따 답드릴게요’라고 했다고 하더라. 되게 편하게 봤고 일이라는 생각도 크게 없었다. 감독님 말씀처럼 아주 친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모여 편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작업 자체도 그런 과정이었다. 내가 영화라는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낯설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작업 자체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드라마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낯섦이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점에서 확실히 나에게 편한 무대였다.”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김현주의 얼굴을 끌어내 왔다. 배우로서 이런 감독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어쨌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다고 해서 표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나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도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들에 계속해서 도전 의식을 심어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가질 수 있게 해주시니까 배우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연출자로서 나를 신뢰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맡기지 않았겠지. 일단 나를 믿어주는 감독이라면 배우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면 더 내 무대 같은 느낌이 드니까 편하게 연기할 수 있고, 그만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많은 걸 강요하거나 디렉션을 많이 주는 스타일도 아니다. 거기에서 또 신뢰를 느낀다. 그냥 내가 표현하는 대로 따라와 주는 것 같다. 물론 큰 틀과 의도, 계획은 다 있으신데 그 틀이 굉장히 넓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놀 수 있는 무대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한정적이지 않아서 좋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이어가고 있나.

“물론 내가 한 작품의 결과가 좋으면 너무 좋다. 많은 분이 사랑해 주고 봐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그런 것들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 작품, 한 작품 소중히 여기고 진실되고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비워내고 또 채워가는 인생이 계속될 거다. 어떤 게 와도 여기에서 더 흔들릴 일은 없다. 새롭게 달라질 것도 없고. 그냥 지금이랑 똑같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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