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도 하기 전부터 ‘1000만 영화’로 입소문이 퍼졌다.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22년 만에 1000만 흥행 기록을 달성하면서 그 입소문이 국내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전통문화인 가부키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라는 점, 흥행 돌풍을 일으킨 감독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에서 국내 관객의 기대와 궁금증도 증폭한다.
‘국보’는 일본에서 지난 6월 개봉해 최근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2003년 ‘춤추는 대수사선2’ 이후 일본에서 실사 영화로는 22년 만에 1000만 대기록을 달성한 작품으로 화제다. 일본 극장가의 흥행을 주도하는 작품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등 대부분 애니메이션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기록을 쓴 ‘국보’는 단순히 1000만 달성 그 이상의 의미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국내 관객의 평가를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19일 개봉하는 ‘국보’는 이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처음 공개했다. 영화제를 찾은 이상일 감독과 주연 배우 요시자와 료는 일본에서의 폭발적인 흥행의 이유에 대해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면서도 그 동력을 예술의 집약체인 가부키에서 찾았다. 일본에서는 고유한 전통문화로 평가받는 가부키는 상대적으로 한국 관객에게는 이질적인 장르인 만큼 그 열풍이 국내 극장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 재능 VS 핏줄…가부키의 계승의 갈림길
영화는 일본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17세기에 시작된 가부키의 세계를 파고드는 동시에 전통 가부키 무대를 스크린에 구현한다. 이야기는 야쿠자 두목의 어린 아들인 기쿠오(요시자와 료)가 눈 앞에서 가족이 살육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유명 가부키 배우인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도움으로 그 가문에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가부키 극단을 이끄는 하나이는 기쿠오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배우인 ‘온나가타’로 키운다. 하나이의 아들은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는 기쿠오와 친구인 동시에 라이벌로 성장하고 둘은 최고의 온나가타 자리를 두고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한계, ‘넘을 수 없는 재능’의 벽에서 갈등한다. 영화는 재능과 핏줄의 갈림길에 선 두 인물을 통해 예술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온갖 곡절 끝에 결국 나라의 보물, 인간 국보의 경지에 이르는 예술가의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이상일 감독은 ‘국보’를 통해 다양한 가부키 공연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집요하게 집중한다. 실제로 두 주인공인 기쿠오와 슌스케가 ‘백로 아가씨’ 등 전통 가부키 무대를 소화하는 장면을 극중 극 형식으로 여러 차례 보여준다. 영화 ‘패왕별희’나 최근 김태리가 주연한 드라마 ‘정년이’의 방식과 같다. 러닝타임이 3시간에 가까운 175분에 달하는 영화는 가부키 무대를 보여주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압도적인 미장센에 빠져들 수도 있지만, 이질적인 가부키 세계가 낯설다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이다.
이상일 감독은 지난 21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부키 소재로 처음에는 흥행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도 가부키는 알지만 실제로 볼 기회는 많지 않고 기부키는 영화관이 아닌 (가부키)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가부키를 다룬 영화가 일본에서 나오기는 80여년 만이고, 러닝타임도 3시간이라서 흥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일본 흥행 역사를 새롭게 쓴 데는 역시 가부키의 힘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고도의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삶을 통해 관객이 감동을 얻는 것 같다”는 게 감독의 생각이다. 다만 국내 관객에는 그저 고유명사처럼 인식된 가부키의 세계를 밀도 높게 묘사하는 여러 무대 장면이 얼마 만큼의 몰입도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국보’는 가부키를 무대로 예술의 경지를 추구하는 두 남성이 평생을 두고 우정과 질투, 경쟁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첸 카이거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장궈룽(장국영)이 주연한 1993년 영화 ‘패왕별희’를 떠오르게 한다. 이상일 감독은 직접적인 연관성에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학창 시절 ‘패왕별희’를 인상 깊게 봤고 20여년 동안 영화 작업을 해오면서도 당시 충격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감독의 정체성은 ‘국보’의 주인공인 기쿠오와 대입돼 해석될 여지도 남긴다. 기쿠오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대대로 이어지는 가문의 적자 계승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부키 세계에서 영원히 뛰어넘지 못하는 ‘출생의 벽’을 마주한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감독은 “계속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에 눈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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