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개봉한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배우 이병헌과 박찬욱 감독의 재회만으로도 뜨거운 기대를 모았다.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 흥행을 함께 이끌었던 두 사람이 오랜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 작품 이후 이병헌은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력을 입증하며 월드스타로 성장했고, 박 감독 역시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제작 모호필름)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한 뒤, 아내와 두 자식 그리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이라는 전쟁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박 감독이 “필생의 프로젝트”라 표현할 만큼 애착을 드러낸 바 있다. 20년 전부터 영화화를 꿈꿔왔고 16년 전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해 마침내 스크린에 올리게 됐다.
● 이병헌과 박 감독에게 ‘공동경비구역 JSA’란
이병헌과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쓰리, 몬스터'(2004년) 이후 21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두 사람의 세 번째 협업이다.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로 박 감독을 만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망한 감독과 망한 배우가 만나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으쌰으쌰’했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감독은 당시 ‘달은… 해가 꾸는 꿈’ ‘3인조’가 흥행에 실패했고 이병헌 역시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런어웨이’ 등이 잇따라 부진을 겪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힘을 합쳤던 작품이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남북 분단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이 작품은 이념을 넘어선 우정과 신뢰를 그리며 579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병헌은 이를 통해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고 박 감독은 또한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듯 지금의 이병헌과 박찬욱을 있게 한 출발점이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은 ‘어쩔수가없다’는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쩔수가없다’에서 이병헌은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 만수를 연기했다. 25년 동안 다닌 제지회사 태양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후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벼랑 끝으로 몰린 가장의 불안과 절박함을 넘어 광기를 드러내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병헌은 만수가 뚜렷한 개성이나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평범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그런 인물이 큰 상황에 부딪히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면서 변해간다. 평범한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 상태일지에 집중했다”며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가 촬영 내내 큰 숙제였다”고 만수를 연기하며 임했던 마음가짐을 밝혔다.
만수는 잘나가는 제지회사 문제지의 반장 최선출(박희순)을 비롯해 제지업계 베테랑이지만 이제는 같은 구직자 신세인 구범모(이성민) 그리고 또 다른 경쟁자 고시조(차승원)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치열한 경쟁 구도로 얽히며 예기치 못한 갈등과 긴장을 자아낸다. 박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 불안이 빚어내는 생존 경쟁과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의 절박함을 블랙코미디적 시선으로 풀어내며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전한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연출을 통해 ‘어쩔수가없다’만의 독특한 톤을 완성했다.

● 이병헌이 말하는 박찬욱 VS 박찬욱이 말하는 이병헌
이병헌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어떤 작품을 하든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이번만큼 기대한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대가 크다”며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박 감독과의 호흡에 대해 “촬영장에서도 늘 온화하게 말씀하시지만 디테일함과 집요함은 여전하더라. 현장에서 보면 저 멀리 있는 조명, 전체적인 색깔, 잘 보이지 않는 소품 하나까지 모든 것이 감독님의 머릿속에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있을 수가 없을 정도의 완벽함이었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이 이병헌을 놀라게 한 것이다.
박찬욱 감독 역시 “이병헌은 정말 많은 표정을 가진 배우다.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을 순식간에 바꿔 가며 연기를 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며 한순간에 얼굴을 바꾸는 이병헌의 연기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이병헌은 눈만 봐도 설득되는 힘이 있다. 호소력이 강한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이병헌이 필요했던 이유를 짚으며 “관객이 만수를 응원하다가 안타까워하고 ‘이제 좀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번 영화의 목표였고 그것이 바로 이병헌을 캐스팅한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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