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고 찾아간 밤무대”
가수가 되었던 안타까운 이유
1980~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휩쓸던 민해경.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그야말로 인기가 폭발했다.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그대는 나그네’, ‘그대 모습은 장미’ 등 발표하는 곡마다 사랑을 받았다.
빡빡한 일정 탓에 헬기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그의 무대는 바쁘게 이어졌고 대중은 발라드와 댄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전성기를 달리던 그에게 노래는 ‘생계’였다.
밤무대에 등장한 고등학생
화려한 무대 이면에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수가 되어야 했던 어린 시절이 숨겨져 있었다. 민해경이 노래를 시작한 것은 1977년, 서울국악예고 재학 시절이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학비조차 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그는 학교의 육성회비와 등록금을 내지 못해, 교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들은 어린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았다.
이 절망감 속에서 민해경은 그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채 무작정 서울 종로의 극장식 쇼 무대인 ‘아마존’을 찾아간 그는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학생이 밤무대에 들어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당황스레 바라보며 “학생이 이런 곳에 오면 안 된다”며 그를 몇 번이나 쫓아냈다.
하지만 어린 민해경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무대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내게 그런 깡이 있을 줄 미처 몰랐다”고 한 그의 간절함은 통했고 그토록 원하던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민해경의 일상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노래 실력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서울 시내 여섯 군데의 무대를 돌며 노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한 달 수입은 약 30만 원. 당시의 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고 그는 이 돈을 모아 자신과 동생들의 학비, 그리고 집안의 생활비까지 책임졌다. 그는 “지금 하라면 다시는 못 할 만큼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무대에서 그의 운명이 바뀌는 기회도 찾아왔다. 어느 날 가수 박경애의 차례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민해경은 급히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음반 제작자에 의해 그는 1979년 정식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치열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결혼과 함께 그는 무대와 점차 멀어졌다.
그에게는 무대 못지않게 소중한 가족이 있었고 그는 남편과 딸과의 일상 속에서 더 큰 행복을 느꼈다. 가수였던 자신의 과거가 그저 추억일 뿐이라는 듯, 그의 딸조차도 엄마가 가수인 줄 모르고 그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자랐다고.
긴 공백기를 거쳐 다시 방송에 출연한 그는 결혼 후 가정을 꾸리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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