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해”
그녀가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
1992년 겨울, 심수봉은 공항에서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날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딸이었다. 전남편과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고 있던 심수봉에게 딸은 세상의 전부였다.
당시 전남편이 아이를 잠시 보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녀는 단번에 거절했다. 하지만 당시 심수봉은 딸을 돌봐주던 유모가 자신만 믿으라며 금방 다녀오겠다고 단언했고, 심수봉은 그녀를 믿고 딸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유모는 전남편의 돈을 받고 연락을 끊어버렸고, 그로 인해 6살의 어린 나이였던 딸과 8년이라는 긴 이별을 겪게 된다.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그녀는 노래로 풀어냈다. 그때 탄생한 곡이 바로 ‘아이야’다.
딸과의 인연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이어졌다. 딸이 14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유모를 통해 “핑클의 사인을 받아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소한 부탁은 심수봉에게 있어 감격스러운 첫 통화였다.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그녀는 그날 이후로 딸과 다시 연락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서서히 관계가 회복되었고,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오랜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딸에게 핑클의 사인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다. 그 작은 부탁이 딸과 심수봉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나야, 아빠야?
그러나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심수봉의 삶은 쉽지 않았다. 1993년, 그녀는 라디오 PD였던 현 남편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남편에게 아이가 있었던 것을 알고 처음엔 유부남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을 열었다.
그녀는 그 사랑을 담아 ‘비나리’를 썼고, 차 안에서 이 노래를 7번이나 불러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사랑을 찾은 심수봉은 “사랑을 찾으니, 내 노래도 달라졌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행복한 사랑에도 큰 시련이 있었다. 심수봉이 재혼을 결심했을 때, 딸은 그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딸은 심수봉과 새 남편이 함께 찍은 사진을 모두 덮으며 “엄마, 나랑만 살자”라고 강하게 말했다.
딸의 거부감은 너무나도 컸고, 결국 심수봉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딸과 단둘이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재혼한 가정도 포기해야 했지만, 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국에서 남편과 떨어져 있던 심수봉은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 바로 ‘이별 없는 사랑’이 그 결과물이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영원한 사랑을 꿈꾸던 심수봉은, 이 노래에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냈다.
그 후 딸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회복되었다. 딸이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비로소 새 남편을 받아들였고, 세 사람은 오랜 갈등을 뒤로하고 함께 지내고 있다. 긴 이별과 화해의 시간을 겪은 심수봉은, 이제 딸과 남편 모두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삶의 크고 작은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그 감정을 고스란히 노래에 담아낸 심수봉.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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