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인터뷰] ‘영화 청년’ 김동호의 ‘첫 번째’ 칸 “박수 쳐주다 받으니…뭉클했죠”
제77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 칸의 해변가에는 세계 각국과 함께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도 서 있다. 다양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인쇄물을 전시하고, 한 쪽에는 영화제와 필름마켓을 찾은 한국 영화관계자들의 휴식처 같은 역할도 톡특히 하는 공간이다.
18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이곳에서 낯익은 한 인물이 해외 영화관계자들과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김동호(87)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사실 김 전 위원장과 칸 국제영화제의 인연은 깊고 오래됐다. 그는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칸 국제영화제를 무려 24번이나 방문했다.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으로 왔을 때 영화 선정은 프로그래머들에게 맡겼어요. 저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사람들을 만났죠. 한국영화사나 해외 영화사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거든요.”
25번째 참여이기도 한 이번엔 다르다. 영화제 공식 초청작의 주인공 자격이다. 그가 “기분이 남달랐다”고 말한 이유다.
“‘베테랑2’ 초청이 확정된 뒤에 류승완 감독한테 연락해서 축하한다고 했죠. 19년 전 류 감독이 칸에 왔을 때 제가 사진을 많이 찍어줬거든요. 올해도 와서 찍어달라고 했는데, 무릎이 아파 난 못 갈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게 됐네요.”
그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의 칸 클래식 부문에 초청된 김량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의 주역으로 현지로 날아왔다. 칸 클래식 부문은 ‘고전’으로 불리는 영화사적 명작이나 중요 인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부문으로, 한국 영화관계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그를 만났다. 하지만 인터뷰는 김 전 위원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려는 해외 영화관계자들로 인해 종종 멈추곤 했다. 이들은 취재진을 향해 “죄송하다”고 말한 뒤 김 전 위원장에게 작품 초청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물어봤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큰 영화제에서 저에 대한 다큐가 상영된다고 하니까 쑥스럽기도 하다”고 미소 지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공식 상영이 끝나고)기립박수를 받았을 때는 뭉클하기도 했다”면서 “그동안 옆에서 박수를 쳤는데 중심에서 박수를 받으니까 감동이 왔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공식 상영하기까지 김 전 위원장은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걸까.
김 전 위원장은 “(이제 나이)80대 중반이 됐고, 개인적으로 그동안 행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1961년 공보부에 들어가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키며 집행위원장으로 오래 일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것은 물론 스타급 배우와 감독 등 해외 영화관계자들을 적극 초청하면서 무대의 영역을 넓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아시아 최대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 축제로 자리매김했고, 김 전 위원장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이번 다큐멘터리영화는 고위직 공무원에서 ‘영화인’으로 변신한 뒤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한 김동호 전 위원장의 삶의 한 궤적을 좇는다.
김 전 위원장은 “어렸을 때나 공보부에 있을 때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 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을 8년 동안 하면서 영화 정책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다”는 그는 “영화진흥공사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방위적으로 뛰어다녔다”고 돌이켰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영화의 정서에 빠져들기 시작했죠. 1988년 이후 나온 영화는 한국, 외국 가릴 거 없이 거의 다 봤어요. 요즘에도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극장에 가서 혼자도 봐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영화 청년, 동호’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상영 시간이)길었던 것 같다”며 “보통 인문 다큐는 80분 정도가 적정하다”고 했다. 이어 “칸에서 공개됐으니 감독이나 배급사 등이 상의해서 보완을 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 위기? 좋은 영화는 관객이 든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자리는 대폭 축소됐다. 지난해에 이어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이 없는 가운데 ‘베테랑2’와 ‘영화 청년, 동호’ 그리고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영화를 소개하는 라 시네프 부문의 ‘메아리'(감독 임유리) 정도가 눈에 띈다. 지난해에는 ‘거미집’ ‘화란’ 등 7편이 다양한 섹션에서 선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한국영화계의 현실을 반영한 거라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팬데믹 기간에 극장 관객이 4분의 1로 줄어들었어요. 작년에 많이 회복이 됐지만, 완전하지는 않았죠. 관객들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많이 보게 됐고, (그렇게)돌아선 이들이 극장으로 안 돌아오고 있어요. 이미 제작한 영화가 배급이 안 되고 있고, 제작사들은 새로운 영화 투자를 안 하면서 감독들도 영화를 못 만들고 있습니다. 시장이 줄어들었다는 문제가 있죠.”
김 전 위원장은 또 다른 문제로 “그동안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오고 있던 이들이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등 몇몇 감독들에 국한돼 있고, 그 뒤를 잇는 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올해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많이 초청받지 못한 것도 “그런 현실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는 “작년과 올해를 보면 좋은 영화는 관객이 든다”면서 영화인을 꿈꾸는 젊은 영화학도들에게 “특색 있고 독창적인 영화를 계속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전 위원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길은 많다”며 “없어지는 영화제도 있지만, 새로 생기는 영화제도 많다. 국내만 보지 말고 해외시장도 보고 창의적인 영화를 만들면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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