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도심 한복판 컨베이어벨트 없는 공장’ 자동차 제조 혁신 선보인 ‘HMG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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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부터 천장까지 새하얀 공장 안은 사람보다 로봇이 많았다. 카메라, 라이다 등 다양한 센서가 장착된 로봇이 차체, 부품을 옮겨주면 거대한 로봇팔들이 자동차를 ‘뚝딱뚝딱’ 조립했다. 노란색의 4족보행 로봇 ‘스팟’(Spot)은 사람을 대신해 다른 로봇들이 작업을 잘하는 지 감독하고 있었다. 사람은 그저 로봇을 보조하는 수준이었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하는 ‘굴뚝 없는’ 공장 ‘현대자동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yundai Motor Group Global Innovation Center in Singapore·HMGICS)’는 포드(1세대), 토요타(2세대)를 넘어선 미래 제조 혁신을 현실로 가져온 모습이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삼프로TV 취재진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약 30분 거리(31㎞)에 위치한 주롱혁신단지에 3년 만에 준공한 HMGICS를 다녀왔다. 판교, 마곡 같은 혁신센터 한가운데 위치한 HMGICS는 연면적 9만㎡(약 2만7000평)에 부지에 지상 7층 높이의 웅장한 건물로 세워졌다. 외벽이 유리로 마감돼, 밖에서 보면 공장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데이터센터나 정보기술(IT) 기업 건물처럼 보였다.

실제 건물로 들어서면 중앙 가득한 ‘녹색’ 스마트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정까지 높은 수직농장 수십 열이 세워져 있었고, 각줄마다 로메인 상추, 적상추, 케일 등 9가지 식물이 재배되고 있었다. 유리온실 속의 스마트팜은 배양부터 수확까지 모두 자동화로 진행됐다. 모터와 벨트로 연결된 수직농장은 스마트팜을 천천히 돌면서 골고루 햇볕을 쐬고, 자동 급수 장치를 통해 수분을 일정하게 공급받고 있었다. 농작물이 익으면 로봇이 직접 확인하고, 수확해서 정리까지 했다. 일련의 작업들을 보고 있으니 “국내 농가에 보급된 스마트팜이 과연 ‘스마트’한 농장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HMGICS는 수확한 농작물을 내년 2분기 오픈 예정인 레스토랑의 음식 재료로 활용하거나, 방문 고객들에게 선물로 제공할 예정이다.

3층에 위치한 스마트 제조시설은 지금껏 볼 수 없던 공장의 모습이었다. 자동차 제조의 상징과도 같은 컨베이어벨트가 없고, 크고 작은 로봇들이 공장을 누비고 있었다. 라인 따라 늘어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셀’(Cell)이라고 부르는 동그란 타원형의 소규모 작업장 십여곳에서 로봇팔이 전기차 ‘아이오닉 5’를 만들고 있었다. 특히 무게가 수십에서 수백킬로그램(㎏)에 달하는 차체, 시트, 유리, 타이어 등의 부품은 사람 손을 일절 거치지 않고, 로봇이 옮기고 조립했다. 사람은 그저 생산 현황을 파악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공장 내 물류로 거의 대부분 자동화 작업으로 진행됐다. 건물 3층 생산 시설에선 자율주행 로봇(Autonomous Mobile Robot·AMR)이 평평한 바닥을 초당 1.8m 속도로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부품을 날랐다. AMR에는 라이다와 센서가 달려있어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나 장애물을 손쉽게 피해서 이동했다. AMR은 자동충전 시스템도 갖춰, 배터리 용량이 20% 미만으로 줄어들면 알아서 충전기를 찾아간다. 무게가 1톤(t)이 넘는 부품은 AMR 대신 무인운반차량(Automated Guided Vehicle·AGV)의 몫이다. 최대 3t까지 나를 수 있는 AGV는 바닥에 있는 QR코드를 읽으면서 셀과 셀 사이를 이동했다. 차체 이동 업무를 로봇이 담당하면서 컨베이어 벨트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차체 조립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업무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이 맡고 있었다. 작업자와 호흡을 맞추면서 차량의 조립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작업자가 여러 부품을 차량에 조립하면 스팟이 조립 부위를 촬영한 다음, 이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조립 품질을 확인했다. AI 기반이기 때문에 불량품 판별 속도, 정확도는 그만큼 높아진다고 HMGICS 측은 설명했다. 본래 자동차 공장에선 조립 상태를 확인하는 업무를 맡는 품질 검사원을 ‘키퍼’로 부른다. HMGICS에선 사람 대신 품질 검사 업무를 하는 스팟을 ‘AI 키퍼’로 불렀다.

소프트웨어(SW) 기반 공장이라는 점에서도 HMGICS는 기존 제조 공장과 달랐다. HMGICS 4층에 위치한 ‘커맨드센터’에선 디지털 공간 ‘메타버스’(Metaverse)에 구축한 HMGICS의 쌍둥이 공장 ‘메타팩토리’를 제어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직원도 디지털 공간을 통해 싱가포르에 있는 공장 설비를 제어할 수 있고, 로봇은 디지털 공간에 있는 쌍둥이 공장을 참고해 실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HMGICS의 셀 생산방식은 최근 테슬라가 선보인 ‘언박스드 프로세스’와 비교할 수 있다. 언박스트 프로세스는 차량 전체를 6개의 모듈로 분해해 필요한 조립을 한 뒤, 각 모듈을 하나로 만드는 방식으로 차량을 제조한다. 이는 전면, 후면, 바닥 등의 차체를 각각의 틀에서 찍어내는 ‘기가캐스팅’ 주조 공법을 활용,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방안이다. HMGICS는 울산공장에서 차체와 부품을 반조립(CKD)한 모듈을 들여와, 셀 작업장에서 로봇이 조립한다. 각 모듈을 조립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존재한다.

반면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다. 테슬라가 생산성에 집중한 반면, HMGICS는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HMGICS의 시간당 생산대수(UPH)는 현재 2.5대로, 울산공장(44대)의 약 6% 수준에 불과하다. 향후 현대차그룹도 ‘하이퍼캐스팅’이라는 주조 공법을 도입하면 HMGICS의 UHP는 20대까지 높아질 수 있다. HMGICS는 테슬라보다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다양한 차종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현대차의 자율주행 택시인 ‘아이오닉 5 로보택시’는 HMGICS에서 생산,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HMGICS의 셀 생산방식은 자동차 제조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포드 자동차는 1908년 ‘컨베이어벨트’와 ‘표준화’로 대표되는 1세대 제조방식 ‘포디즘’을 창안했다. 일본의 토요타는 1990년대 재고를 최소화하는 방식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JIT)으로 최적의 생산효율을 높인 2세대 제조방식 ‘토요타 생산 시스템’(TPS)를 구축했다. HMGICS의 셀 생산방식은 테슬라와 함께 3세대 자동차 제조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HMGICS는 단순히 생산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주문에서부터 인도까지 차량 제조의 전 과정을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신개념 고객 경험(CX) 공간이기도 했다. 고객은 자동차를 주문하고나서 인도받기까지 제조의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차량 주문은 스마트폰으로 하고, 건물 내에서 가상 현실 (VR) 투어를 통해 자동차 조립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옥상에 만들어진 총 620m 길이의 ‘스카이 트랙’에선 조립을 마친 본인의 차량으로 시승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HMGICS에서 생산된 아이오닉5 차량을 타고 스카이 트랙을 달려볼 수 있었는데,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최대 기울기 33.5도에 달하는 코너를 빠져나갈 땐 지구 밖으로 날아갈 것 같은 아찔함이 느껴졌다.

현대차그룹은 HMGICS가 단순 자동차 제조 시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맞춤형 목적기반모빌리티(PBV), 하늘을 나는 도심항공모빌리티(AAM)까지 연구하기 위해 세운 ‘모빌리티 허브’라는 것이다. 또 스마트팩토리이지만,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날 HMGICS 준공식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싱가포르와 현대차그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공통의 혁신 DNA를 갖고 있고, 사람 중심의 신기술을 통해 혁신을 이루고자 한다”며 “HMGICS를 통해 인류의 발전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적인 모빌리티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류종은 기자 rje312@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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