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직장생활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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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인해 바다에 휩쓸려 정처 없이 표류하던 할머니가 구조되고 나서 했던 첫마디는 놀랍게도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였다.

2015년 IS(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살해당한 일본인 기자의 부모도 인터뷰를 하면서 “제 자식 문제로 민폐를 끼쳐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일본인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일본 민영 철도 협회가 발표하는 지하철 민폐 행위 중에는 유모차 동반 승차가 당당히 등재되어 있다.

놀랍게도 유모차 동반 승차가 쓰레기 투기나 음주 승차보다 더 불편한 행위라고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일본인이 타인들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는 것, 심지어는 아기에게도 별로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에서의 한 경험담을 살펴보자.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간적으로 승객들의 시선이 아기 엄마와 유모차를 향했다. 아기 엄마는 눈에 띄게 초조해하며 연신 사람들을 향해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을 연발했다.

결국 그녀는 기차가 다음 역에 정차하자 유모차를 끌고 하차했다. 일본의 그 아기 엄마는 왜 아기가 울자 쩔쩔매며 초조해졌을까?

다른 사람들, 즉 자신이 집단에 폐를 끼친다고 생각해서다. 왜 집단에 폐를 끼치는 걸 꺼려했을까? 그 이유는 왕따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국토교통성의 2013년 조사에 의하면 교통수단의 실내가 혼잡할 때 유모차를 접지 않고 탑승하는 승객이 있으면 ‘불쾌하다’라고 응답한 일본인은 42%에 달했다. 반면 한국은 8%에 불과했다.

한국이었다면?

이와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아기가 울더라도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모차로 향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기 엄마가 초조해하며 사람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다음 역에서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아기가 지나치게 크게 우는 바람에 아기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다음 역에서 내렸다면, 아기 엄마가 집단의 질책이나 처벌이 두려워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타인들을 배려하려는 것이거나 아기를 달래주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타인들, 집단을 중시한다. 즉 한국인도 집단주의적이다. 그러나 집단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일본인과 다르다.

일본인이 집단을 우선시하는 이유가 집단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면, 한국인이 집단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타인들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일본인이 집단이나 타인들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집단을 우선시한다면 한국인은 자발적으로 집단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동일본 대지진과 IS 납치 살해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일 한국의 할머니였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아마도 자기를 구조하기 위해 노력해준 구조대와 정부, 국민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했을 것이다.

만일 한국의 부모였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아마도 슬픔을 같이 나누고 위로해준 국민 그리고 자식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과 정부를 향해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니면 시청자들 앞에서 그냥 펑펑 울고, 그 장면을 보며 시청자들도 같이 울었을 것이다.

한국인은 국가나 구조대가 자기를 구해주면 그것을 자기를 향한 집단의 사랑으로 간주해 감격하며 자기를 구해준 집단 혹은 타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매스컴에서 재난을 당한 한국인을 인터뷰하면 한국인은 구조 활동을 자기에 대한 국민들(집단)의 관심과 배려로 간주하며, 자기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시청자들(집단)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많이 양보하더라도 한국인은 절대로 일본인처럼 집단, 타인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부터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은 자신에게 부과된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민폐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것도 민폐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본인이 단지 집단, 타인들에게 피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집단이 개인에게 부과하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두려워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일본인은 집단의 꾸지람이나 처벌을 대단히 무서워한다.

일본인은
가짜 모범생

일본인이 집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일본인의 집단주의가 가짜 집단주의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개인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진짜 모범생과 가짜 모범생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진짜 모범생은 양심에 기초해 자발적으로 도덕규범을 준수하는 사람이고, 가짜 모범생은 처벌(혹은 사랑 상실)이 두려워서 억지로 도덕규범을 준수하는 사람이다.

진짜와 가짜 모두 도덕규범을 잘 지키지만 그 내면적 동기는 전혀 다르다.

진짜 모범생은 도덕규범을 준수하는 것을 전혀 힘들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한다.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해서 도덕규범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짜 모범생은 도덕규범을 준수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고 억울해한다. 게다가 혹시라도 도덕규범을 지키지 못해서 처벌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간다.

한국의 집단주의가 진짜 모범생이라면 일본의 집단주의는 가짜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의 집단주의는 가짜 집단주의라는 것이다.

*본 내용은 김태형 작가의 저서의
일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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