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국가부채, ‘레드라인’에 근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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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 전 미국 재무장관. [사진=셔터스톡]](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4-0163/image-2ff9db47-8a1f-4360-9fb2-f9abd0c34a9c.jpeg)
미국 연방정부의 국가부채가 38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비슷한 고민은 2000년 전 로마제국에서도 있었다. 당시 로마는 점점 늘어나는 국가적 의무와 세금 인상에 대한 극히 제한적인 사회적 수용 사이에서 고민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황제들이 택한 방식이 바로 ‘화폐 가치 절하(debasement)’였다. 은화에서 은 함량을 조금씩 깎아내려, 금속 자체보다 상징성에 화폐 가치를 더 의존케 하는 정책이었다.
실질적으로 이는 비용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고 지출을 이어가는 방법이었고 문제가 뒤따랐다. 위험은 단순한 초인플레이션에 그치지 않았고 사람들이 화폐를 신뢰하지 않게 되면서 경제 전반의 조정과 거래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오늘날의 미국은 더 이상 동전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부채 비율이 GDP 대비 120%에 이르면서,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을 포함한 주요 경제학자들은 또 다른 형태의 ‘가치 절하’가 시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바로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다.
재정 지배란 ‘정부의 재정 조달 필요가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억제 기능을 제약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경우 조정은 세금 인상이나 지출 축소가 아니라, 화폐 구매력 하락을 통해 이뤄진다.
미국 경제를 자동차에 비유해보자. 재무부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돈을 쓰는 운전자이고,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브레이크다. 그런데 이 자동차는 이제 38조 달러짜리 트레일러를 끌고 있다. 무게가 너무 커서, 연준이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면 브레이크 패드가 터져버릴 정도다. 즉, 정부의 이자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디폴트 위험이 생긴다. 따라서 사고를 막기 위해 연준은 브레이크를 풀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과도한 지출과 초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미국경제학회(AEA)가 주최한 한 패널 토론에서 옐런은 “차가 너무 무거워져 브레이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재정 지배의 전제 조건이 분명히 강화되고 있다”며, “향후 30년간 부채가 GDP 대비 150%를 향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 지배를 둘러싼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버지니아대 교수이자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인 에릭 리퍼는 이를 근본적으로 ‘행태의 문제’로 본다.
◆ ‘해밀턴 규범’의 붕괴
리퍼에 따르면 미국은 오랜 기간 ‘해밀턴 규범(Hamilton Norm)’ 아래 운영돼 왔다. 이는 오늘 발행한 국채는 미래의 세수 흑자를 통해 반드시 상환된다는 암묵적 합의였다.
리퍼는 해밀턴 규범이 2020년에 무너졌다며 “트럼프는 국민에게 지급된 경기부양 수표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라고 말했다. 리퍼는 트럼프는 물론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모두가 지지했던 팬데믹 부양책을 언급하며 당시 약 5조 달러를 지출한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만약 그 수표에 ‘이 돈은 나중에 세금으로 갚아야 합니다’라는 IOU가 붙어 있었다면,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넣었을까요? 그는 이것이 빌려주는 돈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겁니다.”
국민이 정부 부채를 미래 세금에 대한 약속이 아닌 ‘영구적인 선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연준은 통제력을 잃게 된다. 세금이 오를 것이라 믿지 않으니, 사람들은 받은 ‘선물’을 지금 써버리고, 이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연준이 선택한 결과물이 된다.
리퍼는 옐런 본인 역시 재무장관 재임 시절 이런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옐런이 이제 와서 재정 지배의 징후를 언급하지만, 그도 그 일부였습니다. 코로나 시기 ‘과감하게(go big)’ 나서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고 했죠. 이는 재정 지배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연준의 수단은 재정 지배 상태가 아닐 때만 유효합니다.”
리퍼는 2008년 금융위기를 대비 사례로 들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부양 법안 통과 후 불과 5일 만에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최근 행정부들은 부채를 상환해야 할 대출이 아니라, 사실상 통화 공급의 영구적 확대처럼 다뤄왔다고 그는 비판했다.
◆ 금리가 오를수록 경기 부양?
이는 경제학 교과서의 금리 개념을 뒤흔든다. 전통적으로 연준은 금리를 올려 소비와 투자를 억제한다. 하지만 부채가 GDP의 120%에 이른 상황에서는, 고금리가 오히려 ‘가속페달’이 된다는 것이 리퍼의 주장이다.
부채가 워낙 크다 보니, 정부가 지급해야 할 이자 비용은 연간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 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으로 현금이 유입된다.
리퍼는 “이자 지급 형태로 민간 소득이 늘어납니다. 이는 긴축이 아니라 확장입니다”라며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 의장 시절과 대비했다. 당시 금리를 기록적으로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았을 때, 국가부채는 GDP의 약 25%에 불과했다. 부채가 적었기에, 이자 부담이 재정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재정 조정이 가능했다.
하지만 2026년의 미국은 다르다는 것이 리퍼의 주장이다. 부채 규모가 너무 커 금리 인상의 영향이 즉각적이며,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 시장이 보내는 경고 신호
이런 현상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채권시장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네이비페더럴신용조합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헤더 롱은 “미국에서는 이제 채권시장이 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부채비율 120%는 게임 체인저”라며, 채권 투자자들이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대출 금리가 연준의 정책금리와 무관하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투자자들이 미국이 다시 ‘해밀턴 규범’으로 돌아가 흑자를 통해 부채를 줄일 것이라는 믿음을 잃는다면,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사실상 모든 사람의 금리를 끌어올린다.
리퍼는 미국이 아직 아르헨티나나 로마식 초인플레이션 붕괴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매우 위태롭다고 평가했다. 그는 의회와 백악관이 미래 흑자에 대해 최소한의 ‘형식적인 언급조차 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국민은 재정 정책을 인플레이션과 직접 연결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리퍼는 윈스턴 처칠의 말로 알려진 문구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항상 모든 다른 선택지를 다 써본 뒤에야 옳은 선택을 합니다. 그 믿음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지기 시작하면, 그땐 정말 큰일입니다.”
/ 글 Eva Roytburg & 편집 김타영 기자 young@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