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마이너스, 미국은 폭등… 전기요금의 기괴한 양극화
FORTUNE Korea 조회수
![[사진=셔터스톡]](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4-0163/image-880edadc-0af0-4722-9451-695ec60b1cb3.jpeg)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빠르게 늘면서 전력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일이 잦아졌고, 그 결과 전기요금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현상이 더 흔해지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전력망 운영사 레드 엘렉트리카(Red Eléctrica) 자료를 보면 2020년 초 약 9기가와트(GW)였던 태양광 설비 용량이 2025년 초 32GW까지 급증했다.
보조금이 확산을 밀어붙인 결과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이 더 많은 곳에 설치되는 동안, 전력 저장(배터리) 인프라는 아직 충분히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햇빛이 강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필요 이상으로 전기가 생산되며, 전력가격이 0 밑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스페인에서는 9월 기준으로 연간 누적 ‘음(陰)의 전력가격’ 발생 시간이 이미 500시간을 넘겼다. 2024년 한 해 전체를 합친 시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프랑스도 같은 시점에 400시간을 넘어 2024년 기록을 앞질렀고, 독일 역시 연간 기준으로 비슷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 수치는 가정용 요금이 아니라 도매 전력시장 가격이다. 즉, 잉여 전기를 떠넘기기 위해 거래자가 ‘전기를 가져가는 쪽’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가정이 전기를 쓰면 돈을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정용 요금은 대개 미리 정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실시간·변동요금 비중이 큰 시장에서는 이런 음수 가격이 시간이 지나 소비자 가격에도 반영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에서는 올해 상반기 가정용 전기요금이 2024년 상반기보다 1.5% 낮아졌다고 10월 공개된 자료가 보여준다. 세금을 제외하면 하락 폭은 더 크고, 2021~2022년에 급등한 뒤 2023년부터 내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전기요금 상승이 유권자 불만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전력회사들이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려고 공급 능력을 늘리는 경쟁에 들어가면서, 가계 고지서가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이 부담은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시작된 ‘체감 물가’ 위기와 맞물렸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부담을 더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2022년 정점 이후 크게 식었지만, 지난 5년간 누적된 가격 인상분 탓에 소비자들은 ‘상승 속도 둔화’가 아니라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이달 초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CPI) 자료에 따르면 11월 전기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계절조정 전 기준) 6.9% 상승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전기요금이 음수로 내려가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전력시장이 비교적 탈규제된 데다 풍력 비중이 큰 텍사스 등에서는 간헐적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재생에너지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태양광 보조금을 축소하고 풍력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있다.
한편 유럽의 음수 전력가격 확산은 발전사업자에는 달갑지 않다. 태양광 발전소의 수익성과 가치평가에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각국은 배터리 저장능력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가격 환경이 악화하면서 새 태양광 개발이 식는 조짐도 나타난다.
토지 확보와 인허가, 계통 연계까지 갖춘 프로젝트조차 시장성이 떨어지자 매각을 서두르는 개발사들이 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스페인 태양광 발전소를 보유한 한 업체의 고위 임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금 시장에는 ‘착공 가능한 프로젝트’가 넘쳐나고, 개발사들이 더는 수지가 맞지 않으니 팔려고 내놓는다”고 말했다.
/ 글 Jason Ma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