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두 배, 통찰은 제로… 기업들이 빠진 ‘서베이 딜레마’
FORTUNE Korea 조회수
![[사진=셔터스톡]](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12/CP-2024-0163/image-ff2ea48d-3c19-4741-8049-41f2b0fb8526.jpeg)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설문조사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고 느낀다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니다.
지난 11월 기업의 피드백 수집을 돕는 ‘퀄트릭스(Qualtrics)’는 자사 플랫폼에서 처리된 데이터 양이 2023년 이후 두 배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설문조사뿐만 아니라 콜센터 상담, 채팅 로그, 소셜 미디어 게시물 등 연간 35억 건 이상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있다. 기업들이 이런 시장 조사에 쓰는 돈도 올해만 364억 달러(약 48조 원)에 달한다.
퀄트릭스의 브래드 앤더슨 사장은 “설문조사 피로도는 실재한다”고 말했다. 이메일 설문 요청이 스팸 수준으로 전락해 사람들이 질려버렸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똑같은 브랜드가 한 개인에게 계속해서 폭격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공세가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와튼 스쿨의 피터 페이더 교수는 “이 모든 이메일 공세가 의미 있는 통찰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우선, 설문조사는 ‘극찬’ 아니면 ‘악평’으로 치우치기 쉽다. 서비스에 너무 화가 났거나 귀찮게 구는 메일에 짜증 난 사람이 화풀이하듯 답하거나, 정말 만족해서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들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정작 대다수인 중간 지점의 의견은 포착하기가 훨씬 힘들다. 뉴욕대(NYU) 프리야 라구비르 교수도 “설문조사가 너무 많아서 얻게 되는 데이터 자체가 이미 편향돼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고객에게 호불호를 묻는 건 오래된 비즈니스 방식이다. 20세기 전반 대량 우편 설문으로 시작된 이 방식은 21세기에 들어서며 ‘순고객추천지수(NPS)’라는 핵심 지표로 정착했다. “남에게 추천하겠는가?”라는 단순한 질문 하나가 비즈니스의 정석이 되었고,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고객에 집착한다”는 철학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모든 거래에 이메일과 계정이 필요한 이커머스 시대가 되면서, 이 피드백 장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브랜드는 고객을 언제든 찾아낼 수 있게 됐고, 모든 행동은 고객 관계라는 명분 하에 “저희 어땠나요?”라는 메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조언한다. 페이더 교수는 고객의 ‘말’보다 ‘행동’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바쁜 여행객에게 라운지가 즐거웠는지 묻는 대신, 그 여행객이 다음 비행 때 다시 그 라운지를 찾았는지 확인하면 된다. 기업은 이미 고객과의 접점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객 행동을 미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기업들이 멤버십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의 진짜 속마음을 묻는 데는 리스크도 따른다. 진짜로 말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NYU의 라구비르 교수는 특정 항공사의 충성 고객이었지만, 설문조사를 통해 보낸 날카로운 피드백이 번번이 무시당하자 항공사를 바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비판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관심뿐”이었다며 “불만이 감지되면 즉시 담당 직원에게 알림을 보내는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퀄트릭스의 앤더슨은 많은 설문조사가 여전히 천편일률적이라고 말한다. 고객의 구체적인 경험을 파고들지 못하는 질문에 고객이 귀한 시간을 내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AI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공사 고객이 공항 검색대(TSA)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으면, AI 설문조사가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라고 친절히 설명하며 해당 기관의 링크를 안내하는 식이다. 응답자가 특정 사안에 강한 감정을 보일 때 자동으로 추가 질문을 던져 구체적인 이유를 캐낼 수도 있다.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비키 모위츠 교수는 기업이 이미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를 고려할 때, 지금의 설문조사 방식은 구시대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기업들은 이미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굳이 우리에게 묻지 않고도 말이다.”
/ 글 Phil Wahba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