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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룡과 손잡는 제약 거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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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엔비디아(Nvidia)가 일라이 릴리(Eli Lilly),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J&J)과 잇따라 손을 잡았다. 제약·의료 업계 전반에서 빅테크 AI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의료 종사자들의 업무를 덜어주려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모든 일을 정말, 정말 빠르게 움직이길 원한다. 6개월 안에 세상을 바꿀 새로운 분자를 내놓고 싶다.” 일라이 릴리 최고정보·디지털책임자(CIDO) 디오고 라우(Diogo Rau)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긴박하지만, 과학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 규제 승인까지 받으려면 평균 10년이 훌쩍 넘게 걸리고, 비용은 20억 달러 이상 들어간다.

라우와 일라이 릴리는 AI가 이 시간을 줄여줄 것이라고 본다. 회사는 지난 10월 말 엔비디아 칩으로 구동되는 ‘슈퍼컴퓨터’와 ‘AI 팩토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2026년 초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이 인프라가 완성되면 과학자들은 수백만 건의 실험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치료제를 가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다.

자체 개발한 일부 AI 모델은 9월에 문을 연 플랫폼 ‘릴리 튠랩(Lilly TuneLab)’에도 올릴 계획이다. 튠랩은 규모가 작은 바이오텍 기업이 릴리의 방대한 연구 데이터로 학습된 AI 모델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같은 날 J&J도 별도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엔비디아의 기초 모델을 활용해 신장 결석 수술을 준비하는 의료진을 위한 시뮬레이션 환경을 만든다. J&J는 이런 ‘피지컬 AI(physical AI)’ 활용이 수술 계획 수립 과정을 최적화하고, 의사 교육을 쉽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더 일관되고 향상된 임상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J&J 메드테크(MedTech) 부문 로보틱스·디지털 연구개발 글로벌 책임자 네다 츠비예티치(Neda Cvijetic)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어렵고 까다로운 케이스를 실제와 매우 비슷한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먼저 보는 건, 최선의 준비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제약·의료기기 산업은 생성형 AI 한 가지 축만 놓고 봐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가치를 열어젖힐 잠재력이 있다. 신약 후보 물질 발굴, 임상시험 및 규제 절차의 속도 개선, 새로운 치료제를 더 정확하게 타깃 환자에게 전달하는 마케팅·투약 시스템까지 AI를 제대로 도입한다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크다.

다만, 생명과학 업계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AI 활용 분야와 현재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제공하는 기술 사이에는 아직 간극이 있다. 최근 들어 이 격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엔비디아와 손잡은 일라이 릴리·J&J 사례뿐 아니라,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가 앤트로픽(Anthropic)·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맺은 관계, 그리고 AI 하이퍼스케일러 자체의 시도에서 이런 흐름이 포착된다. 앤트로픽은 지난달 R&D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된 ‘클로드 포 라이프 사이언스(Claude for Life Sciences)’를 내놓기도 했다.

맥킨지(McKinsey)에서 생명과학·기술 부문 시니어 파트너를 겸하는 델핀 줌키야(Delphine Zurkiya)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하이퍼스케일러는 대부분 CIO(최고정보책임자)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AI 예산이 커지고 활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제약사 전반에서 비즈니스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기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줌키야는 덧붙였다. “비즈니스 리더들은 더 이상 범용 플랫폼에 인내심이 없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맞게 커스터마이즈된 솔루션을 원한다.”

라우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는 단지 ‘라이프사이언스에 특화된 지식 모델’만 원하지 않는다. ‘릴리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모델을 원한다.”

릴리 최고AI책임자(CAI) 토머스 푹스(Thomas Fuchs)는 가장 큰 AI 혁신은 세 가지를 결합할 때 나온다고 본다. 회사가 축적한 방대한 독점 데이터, 대형 기초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컴퓨팅 인프라 투자, 그리고 이런 기술을 수천 명의 화학자와 생물학자에게 실제로 배포해 새로운 발견에 활용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는 이런 정밀 과학이 모든 빅파마에 똑같이 복제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건 천문학자가 대형마트에서 파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한다. 푹스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우주 기반 망원경(space-based telescope)”이라고 말한다.

엔비디아 헬스케어 부문 부사장 킴벌리 파월(Kimberly Powell)은 J&J의 수술용 AI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한 인물이다. 그는 피지컬 AI가 컴퓨터 비전과 대규모 언어 모델의 발전을 결합해, AI를 실제 물리적 노동을 수행하는 ‘일꾼’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는 곧 AI가 외과의사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라는 민감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파월은 세계보건기구(WHO) 데이터를 인용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1100만 명의 의료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 외과의사, 물리적 로봇, 디지털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하이브리드 수술실’이 새로운 수술 기법의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본다.

킴벌리 파월은 “장기적으로는 로봇 보조 수술에서, 로봇이 실제로 스스로 행동을 취하는 ‘로봇 수술’로 가는 것이 목표”라면서 “우리는 지금 그 모든 토대를 깔고 있다”고 강조했다.

/ 글 John Kell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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