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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1위 렌즈社 일군 여성 CEO…“20년간 사표 세 번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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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10년 차. 그가 있는 동안 회사는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소효순 대표는 “남성을 이기고 싶었던” 과거에서 리더십을 찾지 않는다. “여성 리더십” 역시 그가 내놓는 답이 아니다.

진행 박형진 브리즘 대표, 정리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소효순 에실로코리아 대표 2002년 CJ의 물류 자회사인 CJ GLS(현 CJ대한통운)에서 경력을 시작, 2005년 에실로코리아에 합류했다. 2016년 대표직에 올랐다.


“15만 원짜릴 100만 원에 팔아? 환불해 줘요.”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안경을 한번 벗어 보시겠어요? 잘 보이세요?”

“이 여자가 미쳤나! 당연히 안 보이지.”

소효순 대표는 소싯적 별명이 ‘쌈닭’이었다고 말했다. “말싸움을 하더라도 내가 한 마디 더 하고 끝내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 대표가 경력을 시작했던 물류, 20년간 몸담은 안경. 그리고 내내 그의 직종이었던 영업. 모두 남성이 많은 분야다. 그만큼 문화도 터프했다. (그는 안경업자의 말을 떠올릴 때면 억센 대구 사투리를 꺼냈다. 국내 안경테의 70%가 대구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문화에서 “꿈을 꿀 수 있기 위해서” 억센 편을 택했다. 승진 명단에서 누락될 때면 인사팀에 가서 “개선할 것을 알려 달라”고 물었다. 지금 회사에 와선 세 번 사직서를 냈다. 막다른 길에서 그가 낸 승부수였다.

회사는 그의 ‘전투력’ 덕을 봤다. 그는 2016년 대표직을 맡았다. 이후 100만 원 넘는 프리미엄 누진 다초점 렌즈(이하 ‘누진 렌즈’)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본사를 설득해 한국 환경에 맞게 렌즈를 가공한 다음 들여왔다. 또 안경업계에선 보기 드물었던 B2C 마케팅을 펼쳤다. 그렇게 해서 역으로 안경사들을 설득했다. 밖에선 선글라스, 안에선 안경이 되는 변색 렌즈가 그 결과 중 하나다. 에실로코리아 매출은 소 대표가 취임한 뒤 지난해까지 8년간 82.3% 늘었다(단독 기준). 미들, 로우 급 렌즈를 제조, 유통하는 계열회사들까지 합친 매출은 지난해 처음 3000억 원(3115억 원)을 넘었다.

무작정 싸움을 벌인 건 아니었다. 그는 “관철하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시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 앞서 항의하던 고객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게 이 렌즈가 고객님께 드리는 가치입니다. 잘 보고 잘 사는 것. 또 고객님께서 경제 활동을 잘하게 하는 근간이에요.” 안경을 소모품으로만 생각하면, 시력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고 그는 봤다. 그 자신도 그날 일정에 따라 달리 쓰는 안경 7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브리즘 안경도 그중 하나. 소 대표는 “이후에 그 분께 렌즈를 몇 개 더 팔았다”며 웃었다.

대표 10년 차. 소 대표는 “남성을 이기고 싶었던” 과거에서 리더십을 찾지 않는다. “여성 리더십”도 그의 답은 아니었다. “여성이어서, 혹은 남성이어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죠.”

렌즈 불모지

전국 안경원 수는 지난 3월 기준 1만 893개소. 하지만 오랜 시간 국내 안경 시장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누진 다초점 렌즈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렌즈는 사용자 신뢰를 얻지 못했다. 초점이 맞지 않고 어지러운 통에 누진 렌즈를 쓰고 있던 사용자가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공장에서 렌즈를 가공하는 서구권과 달리, 개별 안경사의 손재주에 기대는 시장 환경이 원인 중 하나였다고 박형진 대표는 말했다. 박 대표는 “사용자가 품질을 체감할 수 없다 보니, 안경을 소모품으로 여기게 됐다”고 진단했다. 2002년 설립된 에실로코리아, 그리고 2005년 합류한 소 대표에겐 이런 인식이 최대 과제였다.

Q 치열하게 설득하셨네요.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 없인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어요. 저 역시 안경을 벗으면 가까운 곳이 안 보여요. 책도 볼 수 없고, 노트북도 볼 수 없어요. 제가 이 일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신체 일부가 작동하지 않으면 장애라고 하는데, 유독 시력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것도 장애라고 생각해요. 장애라고 인정해야 교정할 수 있고, 교정해야 일상을 누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중년이 되면 글씨가 잘 안 보이니까 표정을 찡그려요. 그게 싫어서 책을 피해요. 그런데 누진 렌즈 안경을 쓰면 예전처럼 책을 볼 수 있거든요. 

Q 지금 시장은 나아졌습니까?

아직도 누진 렌즈를 써야 하는 분들 중 13, 14%만 누진 렌즈를 쓰고 계세요. 미국은 39%예요. 

Q 아직 갈 길이 머네요.

1991년 처음 한국에 소개될 때 아쉬움이 많았어요. 가까운 곳도, 먼 곳도 잘 보이는 렌즈라고 해서 맞췄는데, 잘 안 보여요. 오히려 소비자에게 ‘(안경에 맞게) 적응해야 합니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누진 렌즈 사용자분들이 사고가 나고 다쳐요. 그러니 인식이 좋지 못했죠. 

사실 누진 렌즈는 개인 맞춤이 중요해요. 우선 시력 검사를 제대로 해야 하고요. 그에 맞게 가공을 잘해야 해요. 예를 들어 렌즈 아래 부분으로 가까운 곳을 봐요. 그런데 과거의 안경사분이 가공하면서 그 부분을 깎아 내기도 하셨어요. 초점이 안 맞죠. 또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 예를 들어 야외 활동이 잦은지에 따라 적절한 렌즈를 맞춰야 해요. 

Q 시스템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서구에는 ‘검안사’라고 해서, 시력만 맡는 준의료인이 있습니다. 소비자는 검안사 처방전을 받아야 안경을 맞출 수 있어요. 또 ‘렌즈 랩’이라고 하는 공장에 보내서 가공해요. 물론 이런 제도를 악용하기도 해요. 너무 비싼 값에 안경을 팔고, 서비스 질도 좋지 않아요. 한국은 안경원에서 검안부터 렌즈 가공까지 해요. 국내 시장이 커질 무렵 마침 가공 장비가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안경원들이 경쟁적으로 장비를 확보한 게 정착한 거예요. 빠르지만, 품질 문제가 생기기 쉽죠. 그러다 보니 소비자가 안경을 소모품으로 여겨요.

부정적인 인식 속에서 에실로코리아가 나온 거예요.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1년에 1만 명 이상의 안경사분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드립니다. 다른 렌즈 업체와 협업해요. 또 저희는 ‘에실로 특약점’ 파트너십을 운영해요. 저희 렌즈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안경사분이 검안하고, 렌즈를 맞추고,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드려요. 

Q 갈 길은 멀지만, 회사 실적은 꾸준히 좋아졌습니다.

프리미엄 제품을 많이 냈어요. 2016년 저희가 50만 원대 누진 렌즈를 냈을 때 시장에선 15만 원짜리도 비싸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확실한 효능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진 렌즈를 처음 쓰면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볼 때 렌즈의 어느 지점을 봐야 하는지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데 프리미엄 제품은 그런 수고를 상대적으로 덜어주거든요.

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먼저 내곤 했어요. 변색 렌즈(‘트렌지션즈’)가 그렇죠. 출시 당시엔 국내 시장에 없다시피 했는데, 이제 시장의 5~6%는 변색 렌즈예요. 저희가 새로운 시장을 열면 경쟁사들도 같이 해요. 그렇게 해서 시장이 커지는 거죠. 지금껏 저희가 해 온 역할이 이런 것 같아요.

사표 세 장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에서 박형진 대표(왼쪽)와 소효순 에실로코리아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는 맞춤형 안경을 도심에서 주문, 제작하는 브리즘의 스마트팩토리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에서 박형진 대표(왼쪽)와 소효순 에실로코리아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는 맞춤형 안경을 도심에서 주문, 제작하는 브리즘의 스마트팩토리다.

소효순 대표는 2005년 에실로코리아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 20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찾아간 과정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해서 안경과 렌즈에 시큰둥했던 한국 시장에 ‘프리미엄 렌즈’를 설득시켰다. 하지만 20년간 세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내게 된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회사는 소 대표의 손을 잡았다.

Q 규제가 많고, 성장은 더딥니다. 왜 안경 산업을 택했습니까?

저는 CJ에서 ‘물류쟁이’로 시작했어요. 3PL 업무를 맡았죠. 당시 CJ엔 여성 임원이 딱 한 분 계셨어요. 여성에게 기회가 많지 않았죠. ‘내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부장인가 보다’ 싶었어요. 

그런데 고객사 중 질레트, 유니레버 같은 외투(외국인투자)법인이 많았어요. 외투법인엔 여성 임원이 많더라고요. ‘나도 외투법인에 가면 다른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느 날 지인이 에실로코리아를 소개해 줬어요. 안경 업계의 ‘J&J(존슨앤드존슨)’라는 거예요. 당시 J&J는 외투법인 중에서도 꿈의 직장이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 2005년 에실로코리아로 적을 옮긴 거예요.

그런데 막상 가니 매출은 100억 원 밑에 직원 수도 100명이 안 됐어요. 또 글로벌 회사라고 하는데 사장님 한 분만 미국 사람이고 나머지는 한국인이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사표를 처음 냈어요. 

당시 사장님이 저를 당신이 자주 가던 바에 불렀어요. 버드와이저 맥주 2병씩 시켜 놓고, 사장님이 노트북을 켰습니다. 라이트 형제를 보여주더라고요. ‘누군가 처음 비행을 시도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이라면서 자신은 누진 렌즈의 불모지에서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해요. 그러면서 ‘내 비행기에 같이 타 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 말에 마음을 잡았어요.

Q 기대한 대로 승진했습니다. 부장, 이사를 거쳐 곧바로 대표이사.

제가 영업 부장이 됐을 때 팀장 5명이 다 사직서를 냈어요. 그리고 한 명은 이사회에 이메일을 보냈대요. 여자하고는 일 못한다고요. 발령받고 와 보니 팀장들이 없는 거예요. 그때 저도 사표를 냈습니다. ‘제가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이후에도 외근을 나가면 사우나를 가더라고요. 한 사람을 잡아 경고했습니다. 그 일을 치르고 나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어요.

영업하러 나갔을 때도 여성 부장이 가잖아요. 그러면 안경사분들이 ‘렌즈 알아요? 뭐 알고 이야기하세요?’라고 대놓게 면박을 줘요. 그래서 저도 안경광학과에 다시 가서 안경사 자격증을 땄어요.

Q 마지막 사표는?

이사 시절 사표를 한 번 더 냈어요. 에실로 제품에 문제가 있었는데, 해결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 리더십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리더십도 계속 외국인이 맡더라고요. 유리 천장 같았어요.

그래서 사표를 썼는데, 아시아태평양 회장이 한국에 오셨어요. ‘원하는 게 뭐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되물었어요.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 그랬더니 한국 비즈니스의 성장이라고 해요. 

제가 다시 말했죠. ‘나는 누가 빨리 한국 비즈니스를 키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회사에 유리 천장이 있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 물론 모든 회사가 완벽할 수는 없죠. 그럼에도 성장을 이끌어 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에요. 하지만 오랜 기간 변화가 없다면, 이건 아니라고 봤어요. 그랬더니 ‘네가 대표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Q 왜 세 번이나 잡았을까요?

제 진심을 봐준 것 같아요. 보이게 하는 일의 가치를 믿었어요.

Q 대표가 되고서 변화를 만들었습니까?

대표가 되고 나서 회사가 제 요청을 수용해 줬어요. 한국은 안경원에서 렌즈를 가공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강한 압력을 쥐서 렌즈에 크랙이 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리고 렌즈가 열에 약한데, 한국에선 안경을 낀 채로 사우나에 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본사와 주주분들을 설득했어요. 제품을 교체하면 3년 안에 비용을 커버할 만큼 상장할 수 있다고요. 결국 본사와 협의해서 코팅 강도를 대폭 높인 제품을 다시 들여왔어요. 한국의 시장 환경에 맞게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한 거죠.

Q 남성 중심 조직을 많이 겪으셨죠. ‘남성, 여성 리더십’이 있다고 보십니까?

젊었을 때 별명은 ‘쌈닭’이었어요. 남자보다 강해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싸움을 해도 내가 한 마디 더 하고 끝내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리더십이란 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더라고요. 리더는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자기만의 특기가 있어야 해요. 저는 그 답을 공감, 그리고 투명성에서 찾고 있어요. 

이렇게 보면 남성 리더십, 여성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에요. 

Q ‘여성이어서’ 혹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의 경력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여성이어서, 혹은 남성이어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죠. 

다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신, 출산 전후로 몸이 많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과거엔 배려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은 경력을 이어 가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대표가 되고 나서 출산휴가를 크게 늘렸어요. (모성 보호에 관련해선) 우리 회사가 삼성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신경 썼습니다.

반전 준비

지난 9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17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먼로파크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신형 스마트 글라스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지난 9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17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먼로파크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신형 스마트 글라스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에실로코리아와 소 대표는 그간 ‘불모지’를 일궜다. 하지만 더 이상 안경은 따분한 산업이 아닐지 모른다. 사람들은 앞으로 스마트폰이 아닌, 스마트 글라스로 세상을 보게 될지 모른다. 이미 미래가 꿈틀대고 있다. 지난 7월 메타는 에실로 룩소티카 지분 3%를 샀다. 양사는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 등 스마트 글라스를 준비하고 있다. 레이밴은 에실로 룩소티카가 갖고 있는 선글라스 브랜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 빅테크도 스마트 글라스를 내고 있다.

소효순 대표는 “지금은 안경 역사 800년의 전환점”이라며 “시력 교정(correction)에서 연결(connection)으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Q ‘레이밴 디스플레이’에 대한 시장 관심이 큽니다. 한국에는 언제쯤 출시됩니까?

내년 정도에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Q 기존 플레이어들에겐 엄청난 기회이자 위험입니다. 에실로 룩소티카는 메타와 선제적으로 손잡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고요. 사실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겐 위험이죠. 특히 한국 시장에선 안경을 보통 ‘커머디티(범용 제품, 소모품)’로 봤는데요. 이게 전자제품이 되는 거예요.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도 있죠. 그러면 상당한 고관여 제품(구매 결정까지 시간, 노력 등이 많이 관여하는 제품)이 될 겁니다. 브리즘을 처음 만들 때 ‘안경 쓰는 디스어드벤티지를 어드벤티지로 만드는 회사가 되겠다’고 다짐했거든요. 이런 결심을 가장 잘 실현해 줄 제품이 스마트 글라스예요. 

맞습니다. 안경은 더 이상 도수를 교정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게 될 거예요. 삶을 이해하는 플랫폼으로 바뀝니다.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플랫폼으로 바뀌어요.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면 눈앞에 스크립트가 떠요.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눈이 좋건 나쁘건, 모든 사람이 정보 습득의 도구로 안경을 쓰게 됩니다. 지금은 선글라스 기반의 스마트 글라스(레이벤 메타)를 냈는데, 곧 도수 렌즈에 스마트 글라스를 결합할 거예요.

메타가 보는 관점은, VR 기기가 너무 무겁다는 거예요. 일상에서 쓰기 어렵다. 결국 AR로 가야 한다. 그간 기술적 한계가 있었는데, AI가 들어오면서 오디오로 조작한다든지, 수용 가능한 정보량이 많이지면서 AI 기기로 진화하고 있는 거예요. 옛날엔 음성으로 할 수 있는 게 전화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햇빛이 강하게 들면 디스플레이가 안 보이기도 하고요. 이제는 음성으로 바로 AI 에이전트와 대화하는 거예요.

Q 많은 회사가 스마트 글라스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데.

스마트 글라스를 만들고 있는 다른 회사들은 비전을 전문으로 하지 않아요. 그래서 (메타와 손잡고 개발하는) 에실로 룩소티카가 앞으로도 앞서갈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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