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송금도 코인으로…태국선 대형은행이 직접 거래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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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한 가지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합니다. 전 세계 각국이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 육성하지만 국내에서는 투기 자산 또는 규제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서울경제신문 디센터는 블록체인 시장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동남아시아 주요국 정부·기업 및 변화하는 시장을 이번 기획에 담았습니다.

월급 송금도 코인으로…태국선 대형은행이 직접 거래소 운영
SCBX는 지난달 말 태국 방콕에서 열린 SEABW 2024에 참가해 가상자산 거래소 이노베스트 엑스 등 자사의 다양한 가상자산 자회사와 서비스 등을 소개했다. 방콕=도예리 기자

월급 송금도 코인으로…태국선 대형은행이 직접 거래소 운영

비트코인으로 롤렉스 시계를 사고, 택시비와 배달 음식 값도 치른다. 해외에 사는 프리랜서를 고용하고 가상자산을 국경 너머로 송금해 월급을 주는 사례도 보편화됐다. 가상자산이 일상에 녹아들자 결제 기업들부터 시작해 전통 금융사들까지 직접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23일 싱가포르 본사에서 만난 아이번 홍 리퀘스트 파이낸스 콘텐츠 리드는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에도 리퀘스트 파이낸스는 매달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면서 “시장 상황과 별개로 가상자산을 채택하는 기업이 증가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리퀘스트 파이낸스는 기업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지급결제, 회계 처리 등 관련 솔루션을 제공한다. 2021년 서비스가 출시된 후로 약 5억 달러(약 6843억 원) 규모의 가상자산 대금을 처리했다. 가상자산 결제의 경우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금지된 한국에서는 막혀 있는 시장이다.

국내 기업인 업비트의 싱가포르 지사도 올해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락스 손디 업비트 싱가포르 최고운영책임자는 “투자 목적으로 비트코인을 보유하거나 사업을 위해 가상자산 거래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면서 “이들 기업과 협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에릭 바비어 트리플에이 최고경영자(CEO)는 “구체적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예상보다 많은 싱가포르인들이 그랩에서 가상자산으로 잔액을 충전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트리플에이는 명품 플랫폼 파페치, 패션 잡화 브랜드 찰스앤키스 등에 가상자산 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올 3월에는 그랩 싱가포르와 손잡고 비트코인·이더리움, 싱가포르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XSGD,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USDC·USDT) 결제 시스템도 구축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트리플에이 직원도 설립 4년 만에 70여 명까지 늘었다.

역시 현지에서 만난 로즈 루오시 포모페이 디지털 결제 부서장은 명품 시장에서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싱가포르의 ‘카카오페이’ 격인 포모페이는 USDT·USDC를 비롯해 비트코인·이더리움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가상자산으로 결제하면 초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더라도 카드 한도를 높일 필요가 없다. 간단한 고객거래확인(KYT)과 고객신원확인(KYC) 절차만 거치면 결제가 완료된다. 루오시 부서장은 “명품 브랜드들도 소비자 편의를 위해 결제 옵션에 가상자산을 추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모페이는 싱가포르 명품숍인 룩스 몬트레, 룩스 하우즈 등에 가상자산 결제를 지원한다.

가스비(네트워크 수수료), 가상자산 거래소 출금 수수료는 여전히 부담이다. 이에 대해 현지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그랩은 앞서 외국인 사용자들이 적은 수수료로 외화를 충전해 쓰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며 “가상자산 결제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슈퍼앱(단일 플랫폼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으로 불리는 그랩이 가상자산 소액 결제 분야에서도 성과를 낼 경우 각계 후발 주자들의 시장 진입이 기대된다. 홍콩·두바이 등과 ‘아시아의 가상자산 허브’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싱가포르 정부는 일찌감치 가상자산 관련 규제를 확립하고 다양한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뒷받침하고 있다.

월급 송금도 코인으로…태국선 대형은행이 직접 거래소 운영
그랩 싱가포르에서는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자산도 충전해 결제에 사용할 수 있다. 사진은 기자의 그랩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가상자산 충전 메뉴. 도예리 기자

태국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성을 내다본 전통 금융권이 발벗고 나섰다. 2018년 가상자산 관련법이 제정되면서 상업은행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가상자산 투자·발행·서비스 중개업 등이 허용된 덕분이다. 태국 양대 은행인 시암상업은행(SCB)을 보유한 금융 지주사 SCBX는 가상자산공개(ICO) 자회사인 토큰엑스를 2021년 설립했다. 부동산·금·탄소배출권 등 실물을 기반으로 한 실물연계자산(RWA)을 토큰으로 발행하는 단계부터 2차 거래까지 지원한다. SCBX는 가상자산 거래소 이노베스트엑스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블록체인 벤처캐피털(VC)인 해시드와 웹3 분야의 협업 계획을 알렸고 지난달 말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블록체인 위크 2024(SEABW2024)’에 참여해 대체불가토큰(NFT) 명함·바우처 등 다양한 실사용 사례를 선보이기도 했다.

SCB은행의 맞수인 카시콘 은행도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JP모건과 손잡고 블록체인 기반 국경 간 결제 솔루션 ‘프로젝트 카리나’를 선보였다. 이 덕분에 해외의 프리랜서 개발자를 고용하고 비트코인으로 월급을 지급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해시드의 자회사 샤드랩을 이끄는 김호진 대표는 “블록체인 서비스 사용자 비중이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은 대중화의 관점에서 잠재력이 높은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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