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민주주의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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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4월에 맡는 라일락 향기는 언제나 신선하다. 어찌 4월에 라일락 향기만이 있겠냐마는 어릴 적 추억은 그만큼 강렬하다. 꽃 향기가 주는 따뜻함, 신선함 그리고 편안함은 봄을 맞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다.
4월을 맞아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하고 주변 둘레길을 걸었다. 북한산을 걸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참으로 아름답다. 산은 적당히 높아 나무가 우거지고 계곡엔 물이 흘러 물고기들이 어른거린다. 후덥지근해진 날씨지만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꽃 향기와 더불어 4월의 봄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이런 자유와 여유로움이 민주묘지에 묻힌 선배들의 희생 덕분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함께 걷던 배문태 선생은 당시를 회상하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나는 여기 올 때마다 여기 누워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기분이 착잡해지네. 당시 나도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대학에 들어갈 그때였거든. 우리나라가 이만큼 민주화되어 사는 것은 이들의 희생이 크지. 나는 여기 있는 이들을 보며 아직도 살아 있는 게 미안한 거야. 이들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나는 통일된 조국을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지.”
나무를 보면 신기하지 않은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나도 인생의 꿈을 향해 수직으로 서는 힘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그 환경을 사랑하며 자기 것화하는 바위 위에 굽은 소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결국 제구실을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대부분은 산에 잘 생기고 곧은 나무는 먼저 잘려서 요긴하게 쓰이고 결국에는 제일 못생긴 나무만 남아서 중요한 선산을 지킨다는 이야기로, 평소에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언젠가 결국에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의 속담이다.
과거엔 나라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었다면 이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사무실이나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자연으로 나오면 몸과 마음이 리프레시되는 것은 물과 나무를 벗하기 때문이다. RE100이니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거대 담론을 떠나서 나를 위해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정원이 없으면 집 안에 화분에라도 심어 내 나무를 한 그루 가꿔보자. 그래도 공간이 없으면 내 마음속에라도 나무를 심고 가꾸면 좋겠다. 그 나무가 민주주의 나무라면 더 좋겠다.
아파트 건설에 있어서도 골조공사는 사실 모든 아파트가 브랜드만 다를 뿐 기본 골조는 거의 비슷하다. 외장이나 페인트 색깔만 다르다. 그래서 요즘 브랜드 아파트는 조경에 신경을 쓴다. 어떤 나무를 심는냐에 따라 아파트 차별화를 가져온다.
건물을 지을 때 수직과 수평이 매우 중요하다. 기둥이 수직으로 서야 보를 수평으로 이을 수 있다. 기둥과 보가 수평, 수직을 이루어야 벽이라는 평면을 만들 수 있다. 수직이란 지구 중력의 중심과 직선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수평은 이러한 수직과 90도 각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둥과 보가 수직과 수평관계를 이루어 큐브 형태를 이루었을 때가 가장 안정적이다. 수평, 수직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굴곡이나 기울기를 달리해 미적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지구는 구형이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 중력의 중심과는 수직으로 설 수 있다. 바른 자세는 이렇게 중심과 가장 가깝게 서 있는 자세다. 이러한 원리는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인문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가 말하는 원칙과 상식이란 이런 기준에서 나온다. 물론 인간은 상상력과 정이라고 하는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초월적 힘도 가치라고 하는 인문적 측정 기준을 넘어서거나 남용하면 무리가 생기고 관계는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의 학연, 지연, 혈연의 폐해는 이런 정적인 힘이 과도하게 작용해서 생기는 문제다.
2024년 4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인구가 많아진 것도 있지만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선 자신을 대신해서 공동체를 이끌어갈 대표자를 뽑고, 그렇게 뽑은 대표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해임할 수 있는 것이 선거다. 흔히 선거를 ‘뽑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대표자가 임기 중에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거나 대표자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시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다른 후보자에게 투표함으로써 대표자를 교체한다. 이 때문에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나무라고 부르면 더 좋겠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전국 254개 선거구의 총 투표수는 2923만4129표로, 이 중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수는 1475만8083표(50.5%),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45.1%)로,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석수에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지역구에서만 민주당은 161석을 얻어 단독 과반을 훌쩍 넘겼고 국민의힘 당선자는 90명에 불과했다. 두 정당 간 지역구 의석수 차이는 약 1.8배에 달했다. 특히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과 충청권에선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감이 더 컸다. 서울에서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9%포인트였지만 전체 48석 중 37석을 민주당이 독식했다. 대전·세종·충남·충북 등 충청권에선 민주당이 단 4.3%포인트를 앞서 전체 28석 중 21석을 휩쓸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충청권에서 45.8%의 표를 얻고도 7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러한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득표율 1위만 당선되고 나머지는 사표(死票)가 되는 현행 소선구제의 특징 때문이다.
승자독식에 따른 단순다수대표제가 민의를 대표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전체 의석이 아닌 비례대표 의석에 대해서만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하는 기존 병립형으로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우리나라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위성정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은 비례대표제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원래 준연동형 비례제하에서 하나의 정당으로 총선을 치르면 양당의 경우 지역구 당선자로 인해 비례대표 의석 수가 병립형 비례제 시기보다 줄어들게 되고, 소수 정당이 비례대표 득표율에 가까운 원내 의석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였지만 위성정당을 만들게 되면 명목상으로는 위성정당에서는 지역구 당선자가 없기 때문에 비례 득표율을 손해 없이 고스란히 비례대표 의석수로 전환할 수 있으며 추후 합당으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당으로 가져올 수 있으며, 심지어는 선거 전 일부 의원을 위성정당에 꿔주는 사례도 있다. 창당 과정에 드는 비용이나 기존 정당과의 유사성으로 유권자에게 혼란을 준다. 유권자를 단지 정치 소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하이예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매우 강조했다. 인류 역사의 전 기간에 걸쳐 사회 발전의 일반적 방향은 각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적 활동을 보장할 때이며 관습이나 정해진 방식을 따르게 한 속박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혹여나 이번 선거가 개인의 의지나 민의가 잘못 왜곡되어 집단화·진영화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는 원래 정해진 룰이 없다.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고 진화해 가는 제도다. 며칠 전 우희종 교수는 강연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각을 같은 피사체를 보고 피카소와 달리의 표현이 다름과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폭력이란 공동체의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런 왜곡에 대한 잘못된 개인적인 신념(어리석음)도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보 진영에서 진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원래 이 진화(Evolution)의 개념은 어떤 특수한 종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상황, 위치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말하면 옳고 그름이라는 관념의 선택이 아니라 현장에 맞느냐 적합하냐 하는 선택과 이에 따른 실천이며 행동이라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즉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과 부드러움을 간직하지만 홍수와 같은 대재앙을 일으키는 무서운 힘으로 나타난다는 물의 속성을 도가에선 최고의 선(上善)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대개는 힘이 있는 권력자들, 특히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품성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인품은 70% 이상 물로 이루어진 인체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라 모든 액체, 공기도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른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질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타난 표상을 우상화하거나 신격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작용케 하는 과학적 힘에 집중하면 좋겠다. 청명한 날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시작한 꽃 향기 충만한 4월도 이제 지나간다. 각자가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쓰러지지 않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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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거기 누워 있지만 나 여기 살아 부끄럽지 않으려 열심히 사네.” – 이두수 작가 그림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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