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P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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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사진제공=Proenza Schouler
/그래픽=PADO /사진제공=Proenza Schouler

미국의 유명 시사문예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의 기자 어맨다 뮬은 과거 패션 기자로 일하면서 얻게 된 독특한 ‘직업병’이 있습니다. 바로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핸드백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이한 현상을 눈치챘다고 하더군요.

“패션 업계를 떠난 지도 거의 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강박처럼 남아있는 직업병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들의 백을 보는 것. 이게 아니면 어린 시절 추억이나 향후 병원 예약 날짜 따위나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내 머릿 속에서는 누가 어떤 백을 들고 다녔는지가 엑셀 문서처럼 정리된다. 보테가 베네타 카세트 백, 녹색 패딩 가죽, 소호(Soho) 지역, 20대 여성. 루이비통 포쉐트 메티스 백, 로고 캔버스, 호이트셔머혼 역, 40대 여성. 나는 10년간 이 데이터를 이용해 명품백 시장을 집요하고 상세하게 취재했다. 이제 이 정보들은 그저 쌓이기만 한다.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가방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1~2년 들어 예전엔 거의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사람들의 어깨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래된 백의 귀환이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 상당수가 지난 10여 년간 출시된 디자인을 찾으려고 옷장 깊은 곳이나 중고 시장을 뒤지고 있다.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닌 빈티지 스타일이나 부유한 어미니가 딸에게 물려준다는 클래식 명품을 찾는 게 아니다. 그보단 지금 인기가 바닥이어야 마땅할 그런 가방들을 들고 다닌다. 한 시즌에만 출시했던 상품, 2010년대에 인기 절정이었던 디자인, 혹은 패션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식이라고 평가할 가방들이다. 패션의 기본 규칙 하나는 ‘바로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것보다 멋없는 건 없다’는 건데 마치 지금이 2015년인 듯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멋쟁이들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뮬은 핸드백 시장을 비롯, 현재의 패션 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벌어지는 일이라 진단합니다.

명품 시장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최근 몇년 간 명품 제품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알고 계실 겁니다. 샤넬 백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빨리 사서 보유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라는 ‘샤테크’도 있다고 하니까요.

뮬도 같은 문제를 지적합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수년 간 이런 눈부신 상황을 즐겨왔지만 최근 브랜드와 구매자 사이의 관계는 다소 경색됐다.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게 첫 번째 문제다. 디자이너 핸드백은 언제나 너무 비쌌다(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무 비싸다는 게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즈니스오브패션의 2022년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디자이너 핸드백 평균 가격은 2019년 이래 27% 상승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급 핸드백은 그 가격 상승이 훨씬 더했다. 샤넬 클래식 플랩 백의 경우, 같은 시기에 걸쳐 가격이 60% 올랐다. 이전에도 백 가격은 조금씩 꾸준히 상승했는데 최근의 급등기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일부 제품은 10년에 걸쳐 가격이 두 배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가격이 오른만큼 그 효용도 높아진다면 큰 문제는 아니겠죠. 그런데 본래 그 희소성이 가치였던 명품이 이제 너무나 흔해진 겁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글로벌 패션 시장 내 부유층은 여행, 외식 등 값비싼 취미를 1~2년간 중단해 돈을 절약했다. 상당수가 집에 있느라 지루해 뭔가 자극을 찾게 됐고, 여분의 돈을 고가의 시계나 디자이너 핸드백 같은 걸 구매하는 데 썼다. 하지만 소비시장이 정상화되면서, 특별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흔한 값비싼 핸드백이 쏟아지고 있다. 비싸긴 했지만 흔하지 않고 평생 쓸 수 있는 명품이라 해서 산 핸드백이, 어느 순간 연예인,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는 물론이고 브런치 모임에 나온 여자들 절반이 다 들고 있는 ‘흔템’이 되고, 곧 더 반짝이는 ‘신상’에게 밀려 사라지는 걸 보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뮬은 이렇게 된 원인으로 명품 업계의 ‘대기업화’를 지적합니다. 더 많이,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내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뭔가 혁신적인 아이템은 자연스레 회피하게 되고, 그래서 컬렉션은 쏟아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다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백만 나온다는 겁니다.

“디자이너들은 제품 출시 규모와 빈도를 더 늘리라는 압박을 받는다. 과거에는 봄과 가을 연 2회 컬렉션을 발표하는 게 업계 표준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대형 브랜드가 연간 5~6회 신상품을 내놓는다. 브랜드들도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에 대해 위험회피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다. 백이 영업이익의 핵심이기에, 즉각 인기를 얻기 어려운 혁신적인 발상을 하는 디자이너를 인내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배경을 살펴보면 결국은 업계 내 인수·합병 때문이다(패션 업계만의 일은 아니다). 옛날 옛적에 고급 패션은 유럽 공방에서 숙련된 장인을 고용해 오래된 방식으로 가죽 제품을 만드는 가문 소유 비즈니스였다. 그러나 이제 제품 대부분을 대량 생산하는 럭셔리 대기업들이 주요 브랜드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LVMH와 케링은 대표적인 럭셔리 대기업으로, 루이비통, 디올, 구찌, 보테가베네타, 펜디, 셀린느, 발렌시아가, 생로랑 등 액세서리 업계 대표 브랜드 거의 전부를 거느리고 있다. 회사가 상장기업(LVHM와 케링 모두 상장기업이다) 계열사가 되면 뻔한 기대를 받는다. 주주는 수익과 성장을 바라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생산을 늘리고 리스크를 낮추려고 한다. 판매 실적을 늘리는 데 가격을 올리는 것만큼 쉽고 빠른 방식은 없는데, 이는 가방을 더욱 독점적으로 보이게 하는 이점이 있다. 브랜드들은 환율 변동, 제조 비용 상승, 공급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을 들어 가격을 인상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가장 흔한 이유는 시장이 이를 감당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혁신을 잃고 이익에만 혈안이 된 패션 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유행한 지 10년도 채 안 되었지만 그 대신 지금의 천편일률적인 디자인보다 훨씬 참신한 디자인의 핸드백을 찾아 중고 시장을 뒤지게 만들었다는 것이 전직 패션 기자 어맨더 뮬의 진단입니다.

이런 사례가 비단 패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주식회사’라는 기업 제도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이 단기적 성과에만 매달릴 경우 회사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갉아먹는 사례를 많이 만듭니다. 지금처럼 초거대기업 두 곳이 독식하고 있는 럭셔리 패선 업계가 과연 매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겠습니다.

뮬의 통찰력 있는 분석을 읽고 나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샤넬 신상 오픈런하고 있을 때 유유히 중고 명품 샵을 둘러보면서 할 수 있는 변명은 생깁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요즘 럭셔리 브랜드는 초심을 잃었다니깐. 지난달에 애틀랜틱에 올라온 기사가 있는데…”

PADO 웹사이트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 번역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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