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그라운드’ 안아라 대표의 여유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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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마다 싱그러움을 더한 방현일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페이지마다 싱그러움을 더한 방현일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첫 책 〈바지런한 끼니〉에는 주변인과의 소소한 해프닝을 비롯해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 대표로서 다채로운 레서피가 담겼다

시장에서 웃긴 사람을 만났던 일, 친구와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처럼 곱씹어볼 만한 일상의 순간을 적어놓고, 그걸 기반으로 생각을 풀어나가는 걸 좋아한다. 상실, 고생, 그런 감정은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라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바지런히 살아라’라는 의미에서 제목을 지은 건 아니다. 다들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가장 애정이 담긴 챕터는

‘시급한 봄’과 ‘남에게 끼니를 맡기다’를 좋아한다. 식당 주방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는데, 막상 일해 보니 현실은 ‘체험 삶의 현장’이더라.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고, 그때의 경험 이후 어떤 식당에 가든 주방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끼니’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사회적 매너고 배려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깨달음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한편 민망한 챕터도 있다. ‘바쁨의 얼굴’이라는 글. 우리 회사 직원과의 사소한 다툼에 대한 내용이다. 이 글을 통해 너무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한 건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을 계속했다. 편집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오히려 그런 글이 용기 있는 글이라더라.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당사자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였을지는 여전히 고민이다.

바쁜 일상의 틈에서 위로가 돼준 사사로운 이야기와 음식 레서피가 담긴 〈바지런한 끼니〉.

바쁜 일상의 틈에서 위로가 돼준 사사로운 이야기와 음식 레서피가 담긴 〈바지런한 끼니〉.

책 속 레서피 중에서 7월의 한여름을 맛있게 맞이할 수 있는 것으로 추천한다면

복숭아 홍차 시럽이다. 만드는 방법도 정말 쉽다. 복숭아, 설탕, 레몬즙만 있으면 된다. 여름에는 과일값이 비싸니까 복숭아가 조금 무를 때나 날씨가 더울 때 만들어보길. 또 하나는 ‘버섯 피클 냉국수’다. 앞서 언급한 ‘남에게 끼니를 맡기다’ 섹션에 있는 레서피로, 버섯을 넣고 끓인 피클액을 국수에 부으면 끝이다. 만들기도 쉽고 맛이 깊어서 ‘반짝 식당’이라는 팝업을 할 때도 매번 인기가 많았고, 몇 년째 여름이면 꾸준히 사랑받는 음식이다.

일상이 바쁘고 지치면 복숭아를 사와서 깎는 것마저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내 마음의 척도이기도 하다. 그럴 땐 마트에 가서 자연물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 자체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올 거다. 예전엔 시장에서 장 보는 걸 즐겼는데, 그때 나는 재래시장의 채소들을 하나의 팔레트처럼 봤다. 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고, 주로 창작 요리를 하다 보니 시장에 있는 식재료들이 죄다 영감이 되더라. 그걸 ‘셀렉트’해서 가져오고, 하나하나 꺼내 닦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부유해진다.

책의 저자이자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 대표 안아라.

책의 저자이자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 대표 안아라.

당신에게 위로가 된 음식은

팬데믹 시절, 모든 행사가 취소돼 홈그라운드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도 흩어지고, 혼자 남았던 시간이다. 당시 델리 숍도 열었지만 결국 그만뒀고. 그러다 친구가 만들어준 아주 단순하고 슴슴한 유부초밥을 먹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렇게 간단한 것도 충분히 훌륭하구나!’ 왜 뭔가를 계속 이루려 했을까? 책에는 ‘훌륭한 유부초밥’이라는 챕터에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을 주고 싶은 이는

바지런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 도시에서 살다 보면 너무 의미를 가지려 하고, 끝없이 인정받으려 애쓴다. 그저 끼니 잘 챙기고, 잘 자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난하게 살아도 충분히 충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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