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퀴엠 Requiem’(2024).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전시 〈방문〉엔 아주 오래된 작품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봄 소풍 때 무리에서 빠져나와 그린 뒷동산의 정경이 걸렸죠. 그런가 하면 2025년 제주도에서 완성한 근작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60여 년 화업의 기록 같은 전시입니다
처음에는 최대한 많은 작품을 모으려고 했는데 너무 방대했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전시작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도 모아보니 숫자가 꽤 되더군요. 10대에 그린 그림까지 걸었으니까요. 그 시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뜻깊고 좋았어요.

‘북원’(2002).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서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프랑스 투렌부터 제주 서광동리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 머문 작업실의 모습이었습니다. 투렌에선 18세기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의 정원과 땅을 소재로 8년 동안 작업했고, ‘북원’(2002~2010)을 완성했죠. 무려 4~5m에 달하는 작품입니다
시골집 농가였어요. ‘ㄷ’ 자 집이었습니다. 옛 시골 농가는 술을 짜는 기구도 있고 닭이나 돼지, 비둘기까지 키웠어요. 삶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집에서 자급자족했죠. 그런 농가를 빌렸어요. 큰 그림을 많이 그리는 편인데, 그 집 외양간 천장이 아주 높았어요. 10m쯤 됐죠. 거기서 ‘북원’을 그린 거예요. 큰 그림을 마음껏.
‘북원’을 그리는 동안 실제로 정원과 밭을 갈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땅을 매만지는 일에 집중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외양간을 화실로 고치는 작업은 전부 스스로 해야 했어요. 일해 줄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잡초들(질경이, 엉겅퀴 등)을 없애고 정원을 다듬은 거죠. 곡식 농사를 지으려면 그런 걸 모조리 뽑았겠지만, 나는 그렇지도 않으니까 땅을 정리하다가도 잡초가 예쁘면 남겨뒀어요. 필요에 의해 시작한 일인데 하다 보니 즐겁더라고요. 낫과 붓을 번갈아 들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매일 보는 풍경일지라도 준비돼야 그릴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작가 강명희는 언제 붓을 드나요
지금은 제주도에서 지내는데, 화실이 여러 곳에 있어요. 그림 앞에서 한참 보며 가만히 생각만 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그림을 점점 더 엄격하게 느껴요. 그림의 엄격성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자연을 계속해서 바라봄으로써 내가 나를 보고, 그림이 요구하는 것도 보게 돼요. 며칠 전에는 야외에서 작업했어요. 매화가 막 지고 목련꽃이 피고 있었거든요. 밖에서 작업하면 화실보다 훨씬 더 힘들어요. 그러고 나면 다음날은 완전히 아프죠. 눈으로 관찰하고 그리는 시간 동안 많은 체력이 소진돼요. 외줄타기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몸의 힘과 그림이 요구하는 엄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때 붓을 드는 편이에요. 아프지 않고 계속 그릴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근데 결국 자연스럽게 매일 그립니다. 그 와중에 나를 잘 관찰하죠. 잘못하면 아프고, 아프다 보면 그냥 확 못 할 수 있으니까.

‘북원’을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작품이 ‘서광동리에 살면서’입니다. 2007년부터 10여 년 동안 살았던 서귀포 안덕면 지역이죠. 전시의 주요 맥락 중 하나가 한라산, 산방산, 안덕계곡 등을 다니면서 흡수한 제주의 시간입니다. 작가님에게 제주 생활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죠
제주로 온 데는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어요. 경남 창원에서 큰 전시회를 했고, 그 이후 어쩌다 보니 제주에 정착하게 됐죠. 제주를 가까이서 보고 오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은 지는 오래됐습니다. 그러다 잠시 왔는데 팬데믹이 시작돼 꼼짝없이 있었어요. 그게 옴팍하게 여기를 그리는 좋은 기회가 됐죠. 거의 4년 동안 이어졌으니까.

‘대평바다’(2009~2013).
전시의 한 그림에서 제작 연도와 작가님의 사인이 두어 번 거듭 적힌 흔적도 봤습니다. 이런 작업방식은 작가님의 작업세계 그 자체일 것 같습니다
‘대평바다’란 그림이죠. 2009년에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다시 보니 아닌 거예요. 그래서 또다시 들고 나가 그리고 사인한 때가 2013년이에요. 그때 비로소 진짜 사인을 했죠. 근데 또 몰라요. 다시 보면 또 다를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가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시 그리곤 해요. 모든 그림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시간을 관통하는 연속성이 강명희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네요
과거의 내가 못 한 것들이 계속 보입니다. 좋은 거겠죠. 내 생각이 바뀐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니까요. 그림이 요구하는 걸 못 따라간 적도 많아요.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북원’도 전시회에 걸어야 해서 시간에 쫓기며 가져갔던 거예요. 전시 이후에 그림을 받으면 다시 그려야지 하고 가져갔죠. 물론 아주 상쾌하게 끝나는 그림도 있어요. 그런 것에는 다시 손을 안 대요. 싱싱해서 좋다 싶은 그림이 있으면 그걸 존중하죠.

자신의 거대한 화폭 앞에 선 작가 강명희.
추상 회화처럼 보이지만 구상 회화입니다. 보는 이들은 각자의 눈으로 화폭에서 단서와 형상을 찾고, 그런 시간을 통해 실제 경치를 볼 때보다 더욱 강렬한 힘으로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은 작가님이 자연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방식과 어떤 면에서 닮았나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누군가 자신의 마음에 닿도록 본다면, 그 속의 것들과 소통하면서 볼 수 있다면, 또 다음 그림에서 작가가 달라진 게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그런 걸 바라고 기대하며 그리진 않지만, 보는 분들이 그렇게 자세히 보고 발견하는 게 있다는 사실에 나는 늘 놀랍니다.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요. 자연을 매일 보고 관찰하니 그런 표현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토록 관찰해도 매일 충분하지 않거든요. 무엇을 볼 때, 저걸 미처 못 봤네 싶은 것이 순간마다 있죠.
자유롭게 쌓아 올린 듯한 붓 터치와 파편으로 완성된 작품이 매우 구체적인 자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구체적인 자연 요소에서 출발해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 무엇을 마음의 중심에 두었는지요
비워낸 건 맞아요. 제대로 표현한 게 아니니까. 짧기도 하지만 굉장히 긴 여정이었어요. 대학교 때 그림 공부하라고 하면 미술책만 봤어요. 그러다 먼 여행을 가서 보니 깨달은 것도 있었고요. 책이나 남의 그림에서 답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결국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이 확 새로워지니 사막처럼 아무것도 아닌 곳에 가도 다르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쩔쩔매며 몇 가지를 그려보면서 비로소 이게 내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그린 게 잘 그린 건 아니었어요. 너무 서툴렀지만 결정적 계기가 됐죠.

‘시리아2’(2019).
몽골의 고비사막,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홍콩, 중국, 대만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태초의 풍경을 찾아 자연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해 왔습니다. 무수한 여정을 통해 작가님의 화폭은 점점 크기가 커졌어요. 탐험 그 자체에서 어떤 힘을 얻었습니까
항상 놀랐습니다. 놀라면서도 건방지게 처음 본 걸 그리려고 했어요. 지금 보면 왜 그렇게 그렸나 싶어요. 남극에 갔을 때도 얼음 덩어리가 물에 턱 떨어지는 소리가 있어요. 그 소리가 굉장히 강렬했죠. 없는 죄도 야단치는 것 같은, 천둥 같은 소리였죠. 그래서 그런 모습을 그린 적도 있었어요. 여행하면서 나는 자주 깜짝 놀랐고, 모든 그림은 결국 내가 놀라는 형상이기도 해요. 이걸 어쩌면 좋지 하면서 다시 그릴 욕망이 또 생기고…. 나는 무엇을 봐도 잘 놀라요. 오늘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감나무에 새 잎이 나는 걸 봤어요. 은행나무는 아직인데. 그래서 또 놀랐죠. 보면 볼수록 모든 대상은 새로운 것 같아요. 다시 보이더라고요.
근작에선 화실 옆의 나무, 이웃집 담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요새는 잘 안 갑니다. 그런데도 그때 본 것들은 영상으로 생생히 눈에 담고 있어요. 요즘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려요. 돌과 담을 그리고 다시 그리죠.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는 일도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얼마 전에는 작업하느라 기중기를 탔어요. 큰 그림을 그려야 해서요. 그렇게 사다리랑 기중기를 타니까 몸이 나빠질 수가 없어요. 몸이 좋아서 사다리 타냐 하는데 사다리를 타니까 몸이 좋아져요. 지금 하는 작업은 3m가 넘어요. 눕혀놓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올라가서 그리는 게 좋더군요. 다 올라가서 그려요.

‘뚜렌의 벚나무’(2003~2021).
자연을 보고, 본질에 천착하고, 이를 화폭에 재생시키는 작업을 이어오는 동안 타협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에게 떠오른 질문, 내 것을 항상 고수해 왔어요. 군더더기 안 붙이고 붙들고 늘어졌죠. 사실 그림은 안 봐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림의 세계에 들어오면 이 안에서는 작은 표현 하나를 봐도 그 사람의 뜻을 알 수 있죠. 예술이란 인간에게 참 희한한 종목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러니 미술가들은 각자 충분히, 끝까지 가봐야 해요. 작업을 하면서 끝까지 못 가는 것은 용서하지 못할 일이에요. 나는 그림의 무게에 꼼짝없이 붙들려 도무지 다른 생각을 못 하겠어요. 그림도 그리다 보면 굉장히 느는 것 같아요. 나는 그림이 안 느는 줄 알았는데, 굉장히 변하고 있구나 싶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만의 방법이나 표현방식이 생기고, 굉장히 포용적이고 관대해져요. 젊을 땐 오히려 단호했죠. 이거다 싶은 순간에 그냥 그리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포용해요. 지금 내가 하는 그림이 훨씬 좋을 거예요. 좋은 화가는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가 크고 관대해야 해요. 자신의 문제를 잡는 데도 관대하고, 자신이 풀어내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해야 하죠. 안 그러면 죽어버리게요.
초나라 굴원의 장편 서사시 ‘이소’를 즐겨 필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굴원의 시, 그의 인생사가 가진 어떤 면에 동감하나요
그도 바른 말을 해서 귀양을 간 인물인데,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너 그렇게 살다가는 안 된다.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곤 했어요. 바른말만 하지 말라고, 요령이라는 게 나쁜 게 아니라고 말이죠. 그러니 굉장히 친근했어요. 나는 한자를 전혀 모르는데 따라 쓰는 걸 좋아해요. 못 알아듣는 언어를 필사하는 거죠. 잘 알지 못하는 언어를 볼 때 생경함이 주는 기분이 있거든요. 이런 순간이 나에게는 휴식인 것 같아요.

‘방문’(2013~2015).
〈방문〉을 관람하다가 도슨트를 통해 작가님께서 매일 버스 타고 나가서 걸어 다니며 풀꽃을 뜯어 그날의 꽃을 가져다 둔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제주에서 완성한 근작에선 더욱 사색적이고 명상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자연 만물이 항상 ‘질문’을 던진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진짜 그렇게 해요. 풀을 그날 하나 뜯어오면 썩을 때까지 두고 봐요. 나는 절대로 썩은 꽃을 안 버려요. 썩은 게 너무 아름다워요. 거기에 새꽃을 꽂으면 모든 요소가 바뀌는 거예요. 거기서 그림을 그리죠. 지금은 저쪽에 보이는 박이 하나 있거든요. 오늘 보니까 글쎄 파란 박이 팍삭 썩은 거예요. 동시에 너무 아름다운 거죠. 이걸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또 숙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매일매일 놀랄 일이 생겨요.
제주의 봄은 또 얼마나 요망지겠어요
오늘은 보통 산목련이 피어 있는 모습을 봤어요. 산목련은 아주 야들야들하고 가냘퍼요. 막 꽃봉오리가 열리니까 기가 막힌 거예요. 말도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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