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최고의 파격 지도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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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로 선종했습니다. 2013년부터 2025년까지 제266대 교황으로서 임기를 보냈던 그는 가톨릭 사상 가장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를테면 동성애자를 ‘주님의 자녀들’이라 일컬으며 탄압에 반대하고, 혼외정사로 탄생한 아이에게 세례하는 등 오랜 교회법상 관행 대신 소수자 포용을 우선했죠. 때문에 교황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지만 불만을 품은 이들도 적지 않았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바티리크스’를 포함한 각종 스캔들로 퇴임한 상황에서 추대됐습니다. 드라마틱한 추대에는 ‘최초’ 타이틀도 많이 붙었는데요. 그는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라틴 아메리카 태생의 교황입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도 처음입니다. 그 동안은 교황으로 추대될 경우 전임 교황의 이름을 물려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자들의 벗’으로 불렸던 아시시의 성인 이름을 가져왔죠. 선종 당시 궁전이 아닌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숨을 거둔 최초의 교황이기도 합니다. 또 올 초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를 교황청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파격적이었죠. 여성을 장관급 인사에 기용한 것 역시 사상 처음이니까요.

14억 가톨릭 신도들의 지도자였던 교황은 많은 어록도 남겼습니다. 먼저 교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 칭한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전 편집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교황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요. ‘신앙 없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 거리에서조차 들리는 현대에, 신의 한계 없는 자비를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해요.

환경 문제에 있어선 인류의 책임을 늘 강조했습니다. 그는 “신은 항상 용서하고, 우리 인간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때리면, 자연도 똑같이 때릴 겁니다. 저는 우리가 자연을 너무 많이 착취해 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었죠. 또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탐욕에 의해 조종되고 착취되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보살핌의 논리 속에서 존재와 창조물 사이의 신성한 조화가 보존되기를 바랍니다”라고도 말했고요.

교황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한했습니다. 당시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용산 참사 피해자,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했어요. 세월호 참사 유족에게 직접 세례를 내렸고, 추모의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을 패용했습니다. 그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니 리본을 떼라”라고 충고했고요. 그러나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교황의 말들이 수 차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해 비공개 모임에서 동성애자가 신부 교육 과정을 밟는 걸 반대한다고 밝히며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멸칭을 사용한 적이 있었죠.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한 지 이틀 만에 그는 여성 비하적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말라”라는 조언 뒤에 “험담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해 버린 거예요. 이전에는 “교회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결혼한 어머니의 모습”, “유럽이 이제 더는 임신도 못하고 활기도 잃은 할머니가 돼 있다”라는 식의 발언도 했고요.

이처럼 반드시 해야 할 말도 하고, 해서는 안 될 말도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언장에 “무덤은 땅 속에 있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고 단 하나의 비문만 있어야 한다”라고 적은 채 숨을 거뒀습니다. 이제 다음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의 비밀회의 콘클라베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5~6월 중에 열릴 텐데요.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도 참석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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