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최대치의 미감이 담긴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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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디자인 신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를 누비며 독보적 미학을 발전시켜 온 피에르 요바노비치.

프랑스 디자인 신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를 누비며 독보적 미학을 발전시켜 온 피에르 요바노비치.

이야기와 시노그래피를 탁월하게 엮어온 디자이너 피에르 요바노비치의 오페라 데뷔는 지난 2023년이었다. 무대연출가 뱅상 위게(Vincent Huguet)가 바젤 극장에서 선보인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의 세트 디자인에 나선 그는 드라마틱한 클래식 오페라 공연을 현대적이고 대담하게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당시 무대를 디자인하는 일에 인상적인 코멘트를 남겼다. “오페라의 세트는 영혼과 음악, 캐릭터를 반영할 때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압니다. 무대의 세트 디자인은 기능적이어야 하고, 행위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하죠.” 그 피에르 요바노비치가 이번에는 서울의 국립오페라단과 손잡는다. 엄격하면서도 절충적이며, 시적이면서 구조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언어를 성공적으로 통합해 온 그의 디자인을 오는 3월 20일부터 나흘 동안 오페라 공연 〈피가로의 결혼〉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을 총괄했다. 1990년대 패션 브랜드 피에르 가르뎅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을 살린 도전이다. 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와 극작가 로렌초 다 폰테가 손잡고 귀족들의 부조리를 꼬집은 걸작이다. 피에르 요바노비치가 완성한 음모와 통쾌한 복수의 미학은 어떤 모양일까.

어린 시절 피아노를 연주했고, 음악원에도 진학했습니다. 이후 오페라 애호가로서 오페라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죠.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이 당신에게는 어떤 피난처였나요

음악은 언제나 내 안식처이자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고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게 해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어릴 때 피아노를 치면서 스스로 절제하는 법을 배웠고, 지금 내 디자인 작업에 녹여내려는 화음, 조화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장엄한 서사와 깊은 감정 표현이 있는 오페라는 나와 깊이 통하는 예술 장르입니다. 나는 디자인 작업에서 스토리텔링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데, 이는 우리를 우리보다 훨씬 큰 무언가로 이어주는, 예술이 가진 변화의 힘을 떠올리게 해요.

오페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처음으로 확인한 작품이 있다면

푸치니의 〈토스카〉였습니다. 연극적 강렬함이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죠. 유명하고 대중적인 작품임에도 언제나 영혼 깊은 곳까지 울립니다. 항상 오페라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아왔어요. 스무 살 때 살 플레옐(Salle Pleyel)에서 제시 노먼(Jessye Norman)이 노래한 슈트라우스의 ‘네 곡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를 들은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 공연을 계기로 노먼과 우정을 쌓았고, 오랫동안 내 영감의 원천이 된 오페라에 대한 사랑이 확실히 자리 잡았으니까요.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이번 공연의 배경을 1920년대 아틀리에로 설정했다. 인물의 정서적 여정을 따라 내러티브와 함께 변화해 나가는 세트 디자인.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이번 공연의 배경을 1920년대 아틀리에로 설정했다. 인물의 정서적 여정을 따라 내러티브와 함께 변화해 나가는 세트 디자인.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이번 공연의 배경을 1920년대 아틀리에로 설정했다. 인물의 정서적 여정을 따라 내러티브와 함께 변화해 나가는 세트 디자인.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이번 공연의 배경을 1920년대 아틀리에로 설정했다. 인물의 정서적 여정을 따라 내러티브와 함께 변화해 나가는 세트 디자인.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영국의 지휘자 겸 비행기 조종사인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을 언급한 적 있습니다.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온 당신의 미학적 욕구와 음악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음악과 디자인, 모두 내러티브와 경험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심포니를 구성하고 청중으로 하여금 여정을 떠나게 하는 다니엘 하딩의 능력에서 디자인적 영감을 받아왔어요. 나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작곡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요소가 음이나 화음처럼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인 느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음악의 내러티브와 구조, 정서는 공간, 특히 오페라 무대를 디자인하는 내 접근방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2023년 바젤에서 구현한 오페라 〈리골레토〉 무대는 많은 이에게 대담하면서도 미니멀한 스타일로 각인됐습니다. 미학적으로는 매우 현대적이며, 감성적으로는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이었어요. 올해 서울에서 펼칠 〈피가로의 결혼〉이 기대되는 이유죠. 〈리골레토〉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가 뱅상 위게와 협업합니다. 창작자로서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가 있다면

뱅상 위게와 작업하는 건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클래식 작품을 현재와 맞게 재해석하려는 마음을 공유하고 있죠. 뱅상과의 협업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시각적 요소가 공연의 정서적 깊이를 더해줄 수 있다는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합니다. 바젤 극장에서 선보인 〈리골레토〉로 호흡을 맞추며 처음 협업을 했는데, 이 작품은 우리 협업의 기본 토대가 된 프로젝트였어요. 이번에 작업한 〈피가로의 결혼〉도 우아함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현대적 모티프를 더해 계층과 정체성, 변화라는 오페라의 주제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극본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겠죠. 전작 〈리골레토〉에선 리골레토의 저주가 진화함에 따라 점차 구체화될 수 있는, 움직이는 여러 겹의 세트를 만들었어요. 〈피가로의 결혼〉 극본에서 당신이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요

〈피가로의 결혼〉은 모든 요소가 명확합니다. 등장인물이 확실하게 정의돼 있고, 그들의 상반된 사회적 위치는 이원론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죠. 줄거리도 명료해요. 자연스럽게 극적인 진전이 이뤄지죠. 하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완벽하게 연출된 멜랑콜리와 미소 뒤에 숨겨진 균열을 통해 보기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피가로의 결혼〉 줄거리에는 재치와 사회적 논평, 인간다움이라는 여러 층위의 서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에도 이렇게 복합적인 측면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오페라의 배경을 1920년대 아틀리에로 설정해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방식으로 권력의 역학관계와 변화라는 주제를 탐구했습니다. 복장과 세트는 인물의 정서적 여정을 따라 내러티브와 함께 변화해 나갈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디자인했죠.

회전하는 원형 무대로 계획된 국립오페라단 〈피가로의 결혼〉 세트 설계안.

회전하는 원형 무대로 계획된 국립오페라단 〈피가로의 결혼〉 세트 설계안.

동시대의 클래식 오페라 공연으로서 〈피가로의 결혼〉을 준비하며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 이를 눈여겨볼 관객을 위해 디자이너로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디자이너로서 내 역할은 오페라 작품의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와 현대 관객들의 감성, 그 간극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에 대한 진정성이 있으면서 동시대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는 무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디자인을 통해 사랑과 질투, 계층 갈등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개념이라는 생각을 전달하고, 관객들이 오페라에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창작자로서 폭넓은 경험을 해왔어요.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남성복 디자이너로 일했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변신해 결단력 있는 행보를 보여줬습니다. 다른 종류의 공간적 내러티브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실내디자인과 비교해 어떤 의미와 매력이 있을까요

공간 디자인은 주변 환경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게 됩니다. 과거 피에르 가르뎅에서 남성복 일을 하는 동안 디테일과 장인 정신의 중요성을 배웠어요. 지금은 이를 실내디자인과 무대 디자인에 적용하고 있어요. 오페라 무대 작업은 기능성을 넘어 더 많은 것을 고려하게 만들고, 어떻게 하면 공간이 감정을 자아내고 내러티브를 강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보람 있어요.

관객으로서 경험한 오페라 중 당신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언젠가 무대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와 〈살로메〉를 꼽고 싶어요. 모두 아름다운 오페라 작품이죠. 벨라 바르토크(Be′la Barto′k)의 〈푸른 수염의 성〉도 좋아합니다. 한 가지 소식을 예고하자면 올해 로마에서 공연될 바그너의 〈발키리〉를 통해 또다시 뱅상 위게와 협업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작품이죠. 장엄한 스케일과 감정적 깊이가 있는 이 작품의 무대를 디자인하는 것 역시 아주 설레는 도전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스케치. 왼쪽부터 알마비바 백작, 수잔나, 피가로의 의상이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스케치. 왼쪽부터 알마비바 백작, 수잔나, 피가로의 의상이다.

피에르 요바노비치가 구현한 프로젝트의 일면에서 늘 어떤 빛의 질감을 발견합니다. 색채가 지닌 생동감, 예술적이고 흥미로운 터치, 그 모든 것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미적 감각. 당신의 디자인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들이죠. 니스에서 태어나 목가적인 아름다움과 느긋한 프랑스 남부의 기후 속에 자랐다는 사실을 알곤 고개를 끄덕였어요

모든 영감은 항상 예술과 건축, 자연에서 얻습니다. 특히 프랑스 남부의 빛의 움직임과 자연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곤 하죠. 니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빛과 색채,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속 깊이 품게 됐어요. 그 경험은 단순함과 진정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줬고, 디자인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보았던 그곳의 풍경처럼 조화롭고 생동감 있는 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목표예요. 내가 작업한 모든 프로젝트는 이런 영향들이 합쳐져 있고, 거기에 오페라 작품 혹은 내가 디자인하는 공간에 적용돼야 하는 특별한 요구사항이 더해져 나온 결과물이에요.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한 해가 2001년입니다. 이후 오랫동안 타임리스하면서도 동시대적 감각을 선보여 왔어요. 비법이 있다면

진정성에 대한 헌신과 변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나는 비전에 충실하는 동시에 창의적인 측면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도전과 협업을 기꺼이 받아들여요.

피에르 요바노비치의 디자인이 접목된 오페라 작품을 앞으로 더 많이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3월 중 〈피가로의 결혼〉 개막에 맞춰 서울을 방문할 예정인데, 오페라 애호가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극중 가장 기대되는 대목은

제2막의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Voi che sapete)’가 그 작품에서 굉장히 클래식하고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4막의 정원, 결혼식 날의 밤 장면도 또 다른 하이라이트죠! 자존심과 기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야기의 휘몰아치는 반전이 너무 재치 있고 복잡해서 완벽한 마무리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오페라의 테마인 ‘폴 주르네(Folle Journe′e; 광란의 날)’가 아름답게 압축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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